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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재 Sep 05. 2020

15. 지식인은 가오로 산다

어쩌다 언론은 공공의 적이 됐고 기자는 기레기라는 멸칭으로 불려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시드니의 이 두 명물은 공공 건축물이 어떻게 국민적 자부심이 되고 나아가 상품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전범이다. 스토리의 보고인 오페라 하우스는 1973년 당초 예산의 15배가 투입돼 14년 만에 완공됐다. 캥거루와 더불어 호주를 상징하는 이 건물은 세계인들의 뇌리에 문화국가 이미지를 심어줬다. 1920년대 대공황의 타개책으로 만들어진 하버 브리지는 공사비가 예산의 두 배가량 들었다. 이 철교를 걸어서 등반하는 하버 브리지 클라이밍은 1998년 콜 케이브라는 사람이 상품화했다. 호주 여행자들 사이에 번지 점프와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 두 가지로 통한다. 7년여 전인 2013년 봄 내가 철제 골조를 타고 이 다리에 오르기까지 15년 간 이 미친 짓을 한 사람이 300만 명에 달했다. 당시 나는 호주 관광청 초청으로 일주일 간 시드니, 호주 동북부 근해의 세계 최대 산호 군락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광활한 아웃백이 펼쳐진 동북부 퀸즈랜드 등을 둘러봤다. 

 내 생애 가장 낙낙한 해외 출장이었다. 날마다 좋은 곳을 구경했고 좀 과장하면 산해진미를 먹었다. 귀국해서는 달랑 기사 한 꼭지 썼다. 기자들끼리는 “기자가 기사만 안 쓰면 할 만하다”는 농담을 한다. 그러나 막상 이런 저런 사정으로 기사가 안 나가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쓰는 사람으로서 존재 의미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밥벌이는 본래 지겹다.”

 김미경 더블유인사이츠 대표가 나와의 멘토링 인터뷰 때 한 말이다, 그는 밥벌이 수단, 입에 풀칠하는 호구지책으로서의 꿈은 그리 달콤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도 그 일을 구성하는 것의 30%가량만 좋습니다. 나머지 70%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에요.”

 전적으로 동의한다. 피겨 여왕 김연아가 스케이팅을 즐기기만 했을까? 역도 여제 장미란이 과연 역기를 들어올릴 때마다 즐거웠을까?  

 나는 기사가 잘 안 나가거나 아예 쓰기가 싫을 때 이렇게 최면을 걸곤 했다. ‘이 기사가 내가 쓰는 마지막 기사일지도 모른다.’ 현직 기자와 기자 지망생들에게 기사 쓰기가 지겨울 때 대처법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지난 4월 나는 내가 종사하던 이코노미스트에 마지막 기사를 넘겼다. 한국 현대사진 대표작가인 구본창씨와의 인터뷰 기사였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 

  멘토링 책 <너답게 살아갈 너에게-위로 아닌 직설로 응원하는 20대의 홀로서기>를 내기 위한 인터뷰 시리즈 취재를 할 때 나는 멘토들에게 직업 선택의 기준에 대해 이렇게 물었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안정적인 일, 남들이 선망하는 일 중 어느 것을 해야 할까요?” 멘토들이 권한 것은 좋아하는 일이거나 잘하는 일이었다. 잘하는 일을 하라고 권한 공병호 공병호연구소장은 직업적인 일은 잘하면 보상이 크고 좋아하는 일은 취미생활로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벤처 CEO로의 전직은 실수였다는 그는 젊은 날에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발견한다면 큰 행운이고 축복이라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건 어쩌면 환상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잘할 수 있는 일도 사람에 따라 좋아하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잘하는 일에 주어지는 다양한 보상 덕에 그 일이 좋아질지도 모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않는가? 프리랜서로 사노라면 입금이야말로 고래도 춤추게 할 거 같다. 퇴직을 하면 절대 갑은 사라지지만 도처에 갑이다.   

 세계적인 디자인 구루인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면 일을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고 어쩌면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부추겼다. 결국 직업적으로도 안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대표 꿈쟁이를 자처하는 김수영 작가는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거라고 단언했다. 결정하기 힘들면 이렇게 자문자답해 보라고 권했다. 

“만일 시한부 선고를 받아 1년 후에 죽는다면 난 지금 뭘 할까?” 

 그러나 좋아하는 일도, 하고 싶었던 일도 막상 직업이 되면 괴롭기 마련이다. 당연히 고달프다. 

 나는 종강 날이면 내 인생의 오답 노트를 공개한다. 우선 인생에 정답이란 없지만 잠정적인 해답은 있다고 말한다. 가치투자처럼 ROI(투자자본수익률 Return on Investment)가 높도록 사는 것이다. 그러자면 바르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 

 "역사의 현장에 알리바이란 없다"는 말도 한다. 촛불집회도 나가 보고, 여행 등을 통해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치를 쌓으라고 권한다. 

 또 생각대로 살고 싶으면 독서, 사색, 토론을 통해 내공을 쌓으라고 말한다. "여행이 길 위에서 하는 독서라면 독서는 책상에 앉아 떠나는 여행이다"(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이 이야기에 생각대로 클릭하지 않으면 클릭하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인다. 

영화 '암살'에서 변절자 염적진을 연기한 이정재는 "해방될 줄 몰랐기에 배신했다"고 말한다. 


 교보문고의 캐치프레이즈를 패러디해 '사람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한다.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일단 몸에 배면 끌려다니게 마련이다. 나쁜 글 습관 등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할 이유이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영화 베테랑에서 광역수사대 베테랑 형사로 나온 황정민이 내뱉은 말이다. 이 말은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강수연이 부산국제영화제 심사를 맡았을 때 했던 말이라고 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침을 겪어 영화판 사람들이 풀죽어 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하며 다독였다고 한다. 베테랑을 연출한 류승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강수연 선배의 이 말이 마음에 박혀 언젠가 대사로 써먹으려 했다”고 밝혔다. ‘가오 있게’는 영화인들뿐 아니라 지식인이 사는 법이다.

 나는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드러났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 떼고 관저 대통령으로 남는 게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탄핵은 리스크가 너무 커 보였다. 내 판단은 보기 좋게, 아니 기분좋게 빗나갔다. 

 영화 ‘암살’에서 학생 시절 조선총독 암살을 시도했던 변절자 이정재는 왜 배신했느냐는 전지현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몰랐으니깐, 해방될 줄 몰랐으니깐..."

 합리적인 전망도 때로는 믿을 게 못 된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합리적 전망을 믿지 않은 불합리한 사람들이다. 그랬기에 일제에 항거했고 가족들마저 희생시켰다. 그 후손들을 국가가 돌봐야 할 이유다. 

 퇴임한 대통령의 롤 모델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엔 인기가 없었고 재선에도 실패했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대위 시절 핵잠수함 요원 선발을 위한 면접을 치렀다. 면접관은 훗날 미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해군 제독을 지낸 레코버 대령이었다. 대령이 “귀관은 해사 생도 시절을 성공적으로 보냈는가”라고 물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카터는 자신 있게 “예써”라고 답했다. 대령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당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가?” 

이번에도 “예써”라고 답하고 나니 의구심이 생겼다. 잠시 후 카터는 “최선을 다한 거 같지는 않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자 대령이 엄숙한 말투로 다시 물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Why not the best?)

 레코버 대령이 던진 질문-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느냐는 그의 인생 질문이 됐다. 그는 핵잠수함 요원에 선발됐고 전역 후 정치에 투신해 조지아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에 당선됐다.  

 최선이란 최고의 성과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제대로' 일하는 것이다. 나는 제자들에게 높은 수준에서 일 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일머리는 공부 머리와는 다르다. 사실 기자는, 법률가가 그렇듯이 좋은 머리가 필수인 일이 아니다. 판사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듯이 기자는 양심과 직업 정신에 따라 기사 쓰면 된다. 기사에 진실을 담아내겠다는 직업적 결심과 정의롭게 살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한다. 자기 검열을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 머리 좋은 사람들이 언론에 들어와 물을 흐려 놓았다. 과거 정치를 하기 위해 언론에 입문했다는 선배도 있었다. 이제 좋은 시절은 지나갔고 기자는 더 이상 머리 좋은 사람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아니다.  

 어쩌다 언론은 공공의 적이 됐다. 기자들은 기레기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구시대의 막내로서는 서글픈 일이다. 이렇다 보니 기자를 정계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가수요가 줄어들었다. 안 좋은 일에도 좋은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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