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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재 Aug 16. 2020

남자에게, 아들은 존재 자체가 도전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물려주지 못한 신앙 ... 권하는 게 능사일까

 남자에게 아들은 그 존재 자체가 도전이다. 미수를 바라보는, 함께 사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육군 소위로 군복무 중인 아들과의 관계에서 수시로 나는 이렇게 느낀다. 

 아들은 세월호 세대이다. 세월호에서 희생된 안산 단원고 2학년 아이들과 동갑나기이다. 초등학교 시절 아들은 비만형이었다. 집 앞의 동산 세심천도 안 올라가려 들었다. 당시 함께 일했던 직장 선배가 아들과의 한라산행을 권했다. 얼마 전 한라산에 올랐는데 아빠와 아들이 동반 산행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더라고 했다. 나는 아들에게 아빠와 한라산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날 반복해 ‘주입’한 결과 아들은 이 산행에 따라나서야 하는 거로 받아들였다. 

 인천에서 밤배를 타고 새벽 미명에 제주도에 내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바로 세월호 코스이다. 버스로 이동해 한라산 등반을 시작했다. 명색이 4월이었는데, 휴게소에 이르자 눈발이 날렸다. 여행사에서 준 차가운 도시락을 먹었다. 눈물 젖은 빵이 아니라 봄눈이 녹아 눈물에 젖은 도시락이었다. 정말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만 보고 올라 백록담에 다다랐다. 지나가는 어른들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나는 디지털카메라로, 수시로 아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하산 길엔 북쪽으로 내려왔다. 말 그대로 노스페이스. 여행사가 귀띔해 준 대로 미리 준비한 아이젠을 난생 처음 착용했다. 도중에 아들이 너무 힘이 드는지 눈물을 흘렸다. 대학 1학년 때에 이어 40대 중반에 두 번째 오른 한라산 산행은 아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나로서도 힘겨웠다. 나는 아들에게 보는 사람도 없으니 소리 내어 울어도 괜찮다고 했다. 

 여행사에서 대기시킨, 부두로 가는 버스를 과연 탈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나는 하산을 서둘러 이 버스에 오를 수 있으면 택시비를 특별 용돈으로 지급하겠다고 아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결국 버스를 놓쳤고 택시를 타야 했다. 

 ROTC 2년차이던 지난 해 가을 아들은 입대를 앞두고 열심히 운동을 했다. 그 바람에 살이 빠져 입던 바지를 입을 수가 없었다. 버리게 생긴 아들의 청바지를 내가 물려받았다. 한 벌은 찢청이다. 요즘 내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찢청’을 걸치는 배경이다. 과거 가출한 아들에게 ‘아버지 바지 줄여 놨으니 돌아오라’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들이 입던 바지를 물려 입다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든다. 

 내가 두 번 인터뷰한 대학 7년 선배 고 김덕상 OCR Inc. 전 대표는 첫 인터뷰 때 “자식이 편지든 문자든 서면으로 존경한다고 쓴 것을 봤을 때 그 행복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가까운 친구와 후배에게 “부러우면 지는 거니 자식에게서 존경한다 소리 한번 들어보라”고 자랑질을 한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누군가에게 존경한다고 할 땐 보통 그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전제가 된다. ‘존경하는…’이라는 말을 앞세운 인사치레에 약한 걸 보면 나도 존경이라는 평판에 주린 듯싶다. 

 김 전 대표는 IMF 체제 당시 투자에 실패해 큰돈을 날렸다. 파산지경에 막대한 빚까지 지게 됐다. 결국 호주에 유학 중이던 두 자녀도 귀국시켜야 했다. 그때까지 그는 유학 시절을 비롯해 두 아이에게 2000통가량의 편지를 썼다고 했다.(자녀들이 한 답장은 100여 통이었다고 한다). 

 그 무렵 영국 출장길에 일을 보고 나서 그는 눈에 익은 한 고층빌딩 옥상에 올라갔다.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망설이느라 한참을 어슬렁거렸다. 마침 양복저고리 안주머니에 딸이 호주에서 보낸 편지가 있었다. 

“아빠. 그동안 어려운 여건에서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줘 고마워요. 나 나름대로 한국에서 열심히 해 볼 게요. 그러니 아빠도 힘 내세요.” 

 그는 이국 땅 남의 빌딩 옥상에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이렇게 격려해 주는 딸이 있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빌딩에서 내려온 그는 귀국 길에 올랐다. 그 후 자신이 세운 상환계획을 2년 앞당겨 은행 빚을 다 갚았다. 

 그는 지난해 1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와 소액기부 활동을 하는 페이스북 그룹 ‘나눔2900’, 국내 유일의 민간 교도소인 소망교도소 재능기부 글쓰기 강의 등을 같이 했었다.  재소자 대상 강의 때 그는 ‘존경받는 부모는 누구나 될 수 있다’고 말한다고 했다. 

“출소해 인생 후반전을 다시 시작해 보라고 해요. 쓰러져 못 일어나지 않는 한 인생의 실패자란 없습니다. 패자 부활전에서 올라가 우승하면 기쁨이 두 배가 되죠.”

 정작 자신은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나는 그와 친한 다른 선배와 생전의 그를 문병했다. 그 선배에게 문병을 권하면서 나는 ‘조문보다 문병이 낫다“고 문자를 했다. 영면하기 열흘 전 문병 간 사람에게 그는 생전에 보고 싶은 사람이 200명가량 더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나는 그의 딸에게, 사전에 의사를 타진한 후 그와 한 인터뷰의 음원-어쩌면 흔치 않을 그의 육성 녹음을 보냈다. 

 장례 후 형수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아들과 딸이 누가 제일 보고 싶으냐고 묻자 그가 예수님이라고 답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이제 다시 만날 소망이 생겼다고 받아들이셨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너무 일찍 가셔서 애통하지만, 형처럼 살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후배들이 형에게서 좋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예수님 곁으로 가신 거죠.” 

 신자로서 나는 상을 당한 사람들에게 ‘나중에 다시 만날 소망이 생겼다’고 위로를 한다. 이 인사가 더러 공허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그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오래 전 100일도 안 돼 떠나보낸 나의 첫 아이와 더불어.  

 오늘 아침 식탁에서 나는 아버지와 격한 대화를 나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134명 나온 서울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 때문이었다. 앞서 전 목사는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건 외부 바이러스 테러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비신자의 입장에서는 방역 당국에 협조하지 않은 신천지나 전 목사 교회 등 일부 개신교회나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기독교 신앙을 물려줬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처럼 모태신앙인 아들은 어느 날 자신은 신앙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요즘 같아서는 교회에 나가라고 아들에게 권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시지만 신실함으로 응답하는 신자들이 한국 교회에 드물기 때문이다. 이 은혜의 비상응성 자체가 어쩌면 은혜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근 20년 전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과 나는 한라산에 올랐다. 그때 찍은 사진으로 아들에게 앨범을 따로 만들어 줬다. 


 정의여고 강당을 예배실로 빌려 쓰는 우리 교회는 지난 일요일 5개월 만에 처음으로 현장 예배를 드렸다. 그랬다가 교회 발 확진자 급증으로 1주일 만에 오늘 다시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다. 담임목사는 온라인 설교를 통해 예의 은혜의 비상응성을 강조했다. 나는 은혜의 비상응성을 부자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사랑이야말로 상호적이지 않은 부모 자식 관계를 상징하는 말 아닌가? 예배 후 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다. 아내는 부모 자식 간의 이 은혜의 비상응성을 강아지를 키워 보상 받자고 말했다. 

 오래 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선배 집에서 데려온 강아지가 있었다. 윙키는 지랄견 수준은 아니었지만 부산스런 강아지였다. 거실에 깐 요 위로 천방지축 달려들면 아내가 질색을 했다.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악역을 맡아 쥐어박아도 윙키 하고 부르면 다시 달려왔다. 결국 며칠 만에 돌려보내면서 울고불고하는 아이들을 이렇게 협박했다. 

“엄마를 선택할래? 아니면 윙키를 선택할래?”

 돌려주러 가는 길에 윙키는 차 뒷자리 시트에 쉬를 했다. 뜬금없지만, 사람에 대한 강아지의 맹목적인 로열티야말로 은혜의 비상응성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하다.      

 기독교 신자로서 나의 자부심은 내가 믿는 예수가 지상에서 약자 편에 섰다는 것이다. 유중근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홀부모·조손가정 등의 취약아동, 독거노인, 다문화가정, 북한 이주민 등을 4대 취약계층으로 꼽은 것을 봤는데 성경이야말로 일찍이 이들 4대 취약계층에 주목했다. 바로 고아, 과부, 가난한 사람 그리고 나그네 곧 이주민이다.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주 여성, 북한 이주민은 현대판 나그네이다. 예수의 참 제자라면 이들 약자 편에 서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예수쟁이는 진보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진보는 약자의 자리에 서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진보가 기득권 수호적 처신으로 도덕적 권위를 상실했지만 약자 지향성마저 잃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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