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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재 Aug 26. 2020

9. 음악도, 인생도 해석에 달렸다

노래 취향은 70년대 포크 음악 ...  기타 메고 노래 부를  날 꿈꿔

“그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죠.”

 김민기가 만들고 양희은이 부른 노래 ‘작은 연못’은 고교 시절 이래 10여 년 간 나의 18번이었다. 김민기는 이 노래의 가사도 썼고 직접 부르기도 했다. 어느 맑은 여름날 깊은 산 오솔길 옆 작은 연못에서 동거하던 붕어 두 마리는 무슨 일 때문인지 서로 싸웠다. 이윽고 한 마리가 물위에 떠오른다. 정말 박터지게 싸웠던 모양이다. 물고기 사체 탓에 물도 썩어 연못은 마침내 오염됐고, 싸움의 승자인 나머지 한 마리는 물론 결국 이 생태계는 아무도 살지 않는 아니 살 수 없는 죽음의 못이 되어 버린다. 서로 싸운 두 물고기는 남한과 북한을 상징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교 시절 음악을 가르친 온규탁 선생은 저음의 바리톤이었다. 온 선생은 악기 연주하는 시험을 보게 했다. 대부분 배우기 쉬운 기타를 연주했고 나도 기타로 비교적 만만한(?)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연습해 연주했다. 들은 이야기지만, 그 시절 누군가 김민기의 작은 연못을 연주했다고 한다. 클래식 곡을 연주하게 돼 있는 악기 연주 시험에서 이 노래를 골랐다는 건 대담한 모험이었다. 연주를 듣고 난 온 선생이 물었다고 한다. 

“으음, 곡명이 무언고?” 

“리틀 폰드입니다.” 

“으음…”

 선생은 이 곡이 대중가요인 걸 몰랐던 듯싶다. 

 오래 전 양희은과 인터뷰를 한 후 나는 기사에 이렇게 썼다.      

-금지곡으로 묶였던 노래가 몇 곡이나 되나요? 

“스물댓 곡 될 겁니다. ‘늙은 군인의 노래’는 사단장이 선임하사 퇴임식날 부를 곡을 지으라고 해 김민기씨가 만든 곡이에요. 군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국방부장관이 못 틀게 해 금지곡이 됐고, 그 바람에 같은 음반에 실은 상록수까지 78∼84년 방송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느냐’, 이런 식이었어요.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고…, 작심하고 묶어두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아요.”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걸쳐 군대생활을 한 기자는 정치군인들에 대한 반감으로 군인들을 ‘삐딱하게’ 봤었다. 그런 시각을 교정해 준 게 바로 ‘늙은 군인의 노래’였다. 이 노래를 듣고 부르며 기자는 비로소 “(직업)군인들도 민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같은 시대를 살며 같은 노래를 보는 시각이 이렇게 달랐다. 그녀 말대로 의도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노래 취향은 70년대 통기타 가수의 포크 음악에 고착돼 있다. ‘하얀 손수건’, ‘웨딩 케익’, ‘모두가 사랑이예요’, ‘내 마음의 보석상자’ 등 트윈 폴리오, 해바라기 같은 남자 포크 듀엣이 부른 여성 취향의 고운 노래들을 좋아한다. 지금도 어쩌다 노래방에 가면 이런 노래를 즐겨 부른다. 기타는 못 치지만, 그럴 기회가 없어 아쉬울 뿐 기타 반주에 맞춰 그 시절 노래를 부르면서 노는 것을 여전히 가장 좋아한다. 대학 시절 서클을 한 신촌 다락방에서 열린 엠티 때 밤새 아침이슬 같은 노래를 부르고 놀던 일이 어쩌다 소환하는 그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다. 양희은의 ‘네 꿈을 펼쳐라’는 우리 클럽(서클) 아람 3기의 럽가였다. 어쩌다 라디오 CM에 삽입된 이 노래가 들려오면 치기 넘치고 불안정 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밤새 노래를 부르다 보면 CM 송에 동요도 불렀다. 나는 잔디밭에 둘러앉아 기타 좀 치는 친구들의 반주에 맞춰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구 내지는 욕구불만이 있다. 기회가 오면 3도 높여 제대로 화음을 넣으리라.  

 다락방은 고 김활란 이화여대 총장이 창립한 다락방전도협회가 있는 건물이다. 우리는 모임을 마친 후 보통 굴다리를 지나 이대 입구에 있던 음악다방 아메리카로 자리를 옮겨 애프터를 했다. 남자 회원이 전원 고교 동문들이었던 서클 회장을 했을 때 광고시간에 나는 이렇게 애프터 장소에 대해 어나운스했다. 

“오늘 애프터는 미국에서~”

 아메리카는 고교 방송반 2년 선배네 집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고교 졸업 후 방송반 동기들과 이 집에 몰려갔을 때 선배가 비엔나커피를 한 잔씩 돌렸다. 어떻게 마시는 건지 몰라 다른 친구들을 살핀 기억이 있다.  

 중학교 때 기타를 장만하고도 이 악기를 제대로 못 배운 건 내가 광장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광장과 밀실을 오가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악기를 제대로 익히려면 밀실의 시간이 길어야 한다.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은 주로 밀실에서 이뤄진다. 글쟁이는 물론 분야를 막론하고 내공의 원천인 독서도 밀실에서 하는 활동이다. 구자홍 전 동양그룹 부회장은 은퇴 후 기타를 배웠다. 나도 언젠가 기타를 메고 노래 부를 날을 꿈꾼다. 

 교회 찬양대를 꾸준히 한 덕인지 나는 목소리가 젊다는 소리를 더러 듣는다. 윗몸일으키기를 꾸준히 하다 보니 호흡이 길어지고 소리는 기름져 졌다. 오드리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잉그리드 버그만, 까뜨린느 드뇌브, 메릴 스트립의 더빙을 전담하다시피한 성우 장유진은 해방동이 올해 75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FM에서 장유진의 음악편지라는 프로그램의 디제이를 했다. 어쩌다 택시에서 그녀의 방송을 들으면 경탄이 나왔다. 미인에 음성도 빼어났던 리즈 테일러를 목소리로 연기하려 그녀는 공복으로 더빙을 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나도 그녀처럼 오래도록 탄력 있는 목소리를 유지하고 싶다. 

 나는 운전할 때 보통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연가곡 겨울나그네를 작곡한 슈베르트는 기타에 의지해, 머릿속으로는 피아노 소리를 떠올리면서 작곡을 했다고 한다. 피아노를 들여놓을 형편이 못 됐기 때문이다. 그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아픈 몸을 누이며 외로움에, 다음 날 깨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평생 단 한 번도 여인의 사랑을 얻지 못한 이 위대한 음악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성병에 걸려 몸이 망가져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첫 마디가 “배가 고프다네”였던 궁핍한 천재는 예술 가곡으로 이름을 알려 비로소 피아노를 장만할 수 있게 됐을 때 눈을 감았다. 

“나는 이방인으로 왔다가 다시 이방인으로 떠나네.”(겨울나그네 첫 곡 ‘안녕히’의 첫 소절) 

 나는 운전을 할 때 주로 클래식 FM을 듣는다. 광고를 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트로트가 좋아진다는데 나는 뽕짝을 즐기지 않는다. 국악도 좋은 줄 모르겠다. 그래서 클래식 FM이 국악 프로그램을 하는 시간이면 다이얼을 돌린다. 

 몇 년 전 아내와 우리 교회에서 하는 친밀한부부학교의 스태프를 맡았을 때 바리톤 김동규 덕에 국민가곡이 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부르는 약식 플래시몹을 전체 스태프들과 함께 시도한 일이 있다. 부부학교 수료식 날이었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결혼식 축가로 가장 많이 불린다는 이 노래는 본래 봄을 찬양하는 곡이다. 이탈리아 라스칼라극장 주역 출신인 김동규는 라디오 PD에게서 우리말 노래를 만들어 보자는 제의를 받고 봄처럼 밝은 가을 노래가 좋겠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이렇게 의기투합한 덕에 뉴 에이지 그룹인 시크릿 가든의 ‘봄을 향한 세레나데’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로 옷을 갈아입었다. <남자의 클래식-음악을 아는 남자, 외롭지 않다>를 낸 바리톤 안우성은 이 에피소드를 책에서 소개 한 후 “음악은 해석의 문제다”라고 썼다. 

 나는 인생도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저마다 중심을 잡고 나름대로 살아갈 뿐이다. 어차피 인생에 정답이란 없다. 그러니 정답을 찾고 정답대로 살려 애쓰는 건 파랑새를 찾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일이다. 마테를링크의 동화극에 등장하는 어린 남매는 성탄 전야에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다 깨어나 자신들이 기르던 비둘기가 바로 파랑새였음을 깨닫는다. 행복은 이처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다. 인생의 해답도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그저 내가 제대로 사는 걸까 수시로 회의하면서 나름의 답안 어쩌면 대안을 작성할 뿐이다. 그렇다고 오답도 없는 건 아니다. 오답의 전범들은 교도소에 있다. 대표적으로 대통령을 지내고도 감옥에 간 사람들이다. 학교 때 정답을 잘 맞혔다고 인생 답안을 제대로 작성하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학벌인 서울 법대 출신 중엔 감옥 간 사람도 많다. 단일 학과 출신으로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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