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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재 Aug 27. 2020

10. 평가에 연연하지 않겠다

비본질적인 것엔 자유를 ... 코로나 시대 교훈은 모든 피조물과 공존하라

“사장에겐 계급장 떼고 얘기해 보자고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은사와는 안 되더라고요.”

 모교에서 언론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취직하겠다고 했을 때 만류하는 선후배들에게 호기롭게 던진 말이다. 막상 다녀보니 회사도 그런 조직은 아니었다. 

 내가 대학선생의 꿈을 접은 건 어쩌면 성취동기가 박약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취직하겠다고 했을 때 한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형, 10년 고생하면 평생이 보장되는데 왜 그만둬요?”

 유학파인 그도 대학에 몸담지는 못했다. 

 7년 전 부국장 전문기자로 정년퇴직하기 전 나는 한국외국어대학 등에서 언론 실무에 대한 강의를 했었다. 어느 대학이든 캠퍼스는 회사보다 편하게 느껴졌다. 2016년 가을엔 모교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 초빙교수를 지냈다. 임기 만료 후에도 2년 간 모교 강단에 섰다. 모교 강단에 서는 게 공부하는 사람들의 꿈이라면 돌고 돌아 꿈을 이루기는 한 셈이다. 지난해 봄엔 모교에 윤상삼기념강좌(과목명은 저널리즘의 지평)를 만들어 여덟 명의 전현직 언론인 동문들과 팀 티칭을 했다. 고 윤상삼 기자는 나의 학과 2년 선배로 1987년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시절 박종철 고문치사 및 은폐조작 사건을 동료들과 함께 보도했다. 그는 당시 박종철 열사를 부검한 의사를 설득해 사망 원인이 물고문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영화 <1987>에서 배우 이희준이 연기한 동아일보 기자가 윤 기자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대학생을 경찰이 고문해 죽게 했다는 이 보도는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나는 모교 언론홍보영상학부 동문회 윤상삼추모사업분과위원장을 맡아 윤상삼의 기자정신을 기리는 윤상삼기자상과 윤상삼장학금을 만들었다. 윤상삼은 동아일보 도쿄특파원으로 근무 중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소송 끝에 첫 언론인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다.  

 지금도 인터뷰 기사를 쓰고 나의 직업적 정체성은 여전히 기자이지만 요즘 내가 주로 하는 일은 강의이다. 한국잡지교육원에서 기자 및 기자 지망생을 대상으로 인터뷰 강의를 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 등에서도 같은 강의를 한다. 이른바 산업 강사로서 공공기관과 기업에서 글쓰기 강의, 홍보직을 대상으로 미디어 트레이닝도 한다. 일회용 강사로서 나는 한 번 강의하고 나면 다시 요청 받는 강의를 하려 한다. 일종의 재구매이다. 고문을 맡고 있는 홍보대행사에서의 역할도 글쓰기 교육이다.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자세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다. 상대방을 가르치는 한편 그에게 배우면서 결국 함께 성장한다고 믿는다. 수강자는 또 선생뿐 아니라 동료들에게서도 배운다. 좋은 조직이란 곧 좋은 동료 집단이다. 셋이 길을 떠나면 그 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게 마련이다(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나머지 한 사람은 반면교사일 수도 있다. 요즘 세상에 전인격적인 스승이 얼마나 되겠는가? 부분적으로 배울 게 있다면 결국 모두가 스승이다. 

 지난 봄 자동차 매거진 <탑기어> 편집장으로 있는 한국잡지교육원 제자가 여의도에 있는 잡지교육원으로 찾아왔다. 스승의 날에 즈음해 유튜브 촬영 차 페라리를 몰고 나타났다. 원생 시절 "내가 컨버터블이 로망"이라고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고 했다. 오래 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취재 차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전시장에 있는 거의 모든 컨버터블 운전석에 앉아 봤다. 동행한 후배에게 인증샷을 부탁했다. 귀국 후 나의 두 아이에게 농반진반 나중에 컨버터블을 선물로 사 달라고 얘기했다. 

 어쨌거나 제자 덕분에 나는 3억원짜리 빨간 페라리에 올랐다. 영화 '여인의 향기'의 알 파치노처럼! 알 파치노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이고, 여인의 향기는 특히 좋아하는 그의 영화이다. 나와 그의 공통점은 신장이 같다는 것이다. 170센티미터. 알 파치노가 연기한 슬레이드는 괴팍한 성격의 예비역 미 육군 중령이다. 사고로 시력을 잃어 전역한 그는 크리스마스에 고향에 가기 위해 추수감사절 연휴 동안 그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찾아온 찰리와 뉴욕 여행을 떠난다. 둘은 뉴욕 시내에서 페라리를 시승한다. 앞을 못 보는 슬레이드가 운전석에 앉고 조수석의 찰리가 길을 안내한다. 이 위험한 질주는 교통경찰의 저지로 막을 내린다. 찰리의 귀띔을 받아 슬레이드는 미모의 젊은 여성과 탱고도 춘다. 뉴욕의 최고급 호텔인 월도프 아스토리아에서 권총 자살하려던 계획을 찰리의 만류로 접은 슬레이드는 집으로 돌아온 후 찰리가 다니는 명문 베어드고등학교를 찾는다. 강당에서는 교장을 골탕 먹이려 그의 차에 페인트 세례를 베푼 학생들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사건을 목격한 찰리와 그의 친구는 교장으로부터 범인에 대한 밀고를 강요당한다. 친구는 이 학교 동문이자 부자인 아버지 백을 믿고 모호하게나마 범인들을 지목하지만 찰리는 끝내 친구를 고발하지 않는다. 교장이 명예롭게 밀고하라고 강요할 때 슬레이드가 단 위에 올라 일장연설을 한다. 

<여인의 향기>에서 실명한 퇴역 장교 알 파치노는 소년의 안내로 페라리를 몰고 질주한다. 


“난 판사가 아니라 찰리의 침묵이 옳은 건지 그른 건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어요. 찰리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누구도 팔아넘기지 않을 겁니다.”   

 징계위원회는 마침내 이렇게 결정한다. 찰리의 친구가 모호하게 지목한 학생들 근신, 친구는 어떤 포상도 받을 수 없음, 찰리는 더 이상 답변할 필요 없음. 강당을 메운 전교생은 환호하고 강당을 나선 슬레이드는 향수냄새를 풍기는 한 여선생으로부터 인사를 받는다. 

 찰리는 슬레이드의 좌절을 진심으로 이해했고 슬레이드는 고립무원인 그의 징계를 막는다. 이 장면에서도 나는 세대를 뛰어넘는 인간적인 우정과 교학상장을 읽는다.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계약법을 가르치는 킹스필드 교수는 “이번 학기 종강”이라고 말하고 강의실을 나서다 학생들의 느닷없는 기립박수에 흠칫한다.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의 한 장면이다. 이 노교수처럼 나름대로 열심히 가르치고 평가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게 선생으로서의 나의 마음가짐이다. 

 강의를 할 때마다 강의 평가를 하는 시대에 이렇게 살기란 쉽지 않다. 서울의 어느 대학에 출강하던 때의 일이다. 그 학교 교수로 강의를 주선한 언론계 선배로부터 강의 평가 점수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 학교는 시간강사의 경우 하위 몇 %에 대해 출강을 제한했다. 전 학기보다 열심히 가르쳤고 강의 평가가 낮은 적이 없었기에 내심 언짢았다. 다른 땐 들어가보지도 않던 강의 평가를 읽어봤다. 한 학생이 이렇게 적었다. 

“교수님, 저희는 철인이 아닙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강의 평가를 의식해 수업 강도를 조절할 생각은 없다. 열흘에 걸쳐 60시간 강의하는 잡지교육원 ‘실전인터뷰 기술-섭외 노하우부터 취재원 관리 스킬까지’는 1일 1실습의 강행군이다. 셀프 인터뷰, 동료 인터뷰, 지인 인터뷰, 포트폴리오 인터뷰, 취재원을 초청해 기자회견 형식으로 시도하는 집단 인터뷰 등이다. 내가 한 인터뷰의 음원을 듣고서 인터뷰 기사로 작성하는 실습도 한다. 인터뷰 수업에 대해 한 원생은 ‘인터뷰 지옥 주간 시작’이라고 썼다. 원생들이 쓴 실습 기사를 공개적으로 리뷰할 때면 사시미 칼 쓰듯 기사에 대해 미시적 난도질을 한다.   

 강의 평가를 떠나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처럼 살고 싶다는, 나로서는 족탈불급의 소망이 있다. 카잔차키스는 일찍이 이 묘비명을 생각했고, 사후에 이대로 묘비에 새겨졌다고 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기독교 환원운동(restoration movement)을 하는 사람들의 구호대로 살고 싶은 또 다른 소망이 있다. “본질에선 일치(unity)를, 비본질적인 것엔 자유(liberty)를, 그리고 모든 것에 사랑(charity)을.”

 기독교인으로서 복음의 본질이 아닌 것에서 자유롭고 싶다. 음주 문제가 대표적이다. 예수의 일행은 술꾼 소리를 들었다.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의 주장과 달리 나는 대면 현장 예배는 교회의 본질이 아니라고 본다. 

 대학 후배인 손원영 서울기독대 교수(목사)는 3년 전 개신교 신자에 의한 불당 훼손에 대해 대신 사과하고 불당 복구를 위한 모금운동을 벌였다 파면 당했다. 법원이 파면 처분은 무효라고 판결했고 이사회가 복직 결정을 내렸지만 그는 자신의 연구실 출입조차 거부당했다. 학교는 그를 이단으로 몰고 있다. 이단 프레이밍이다. 상당수의 이단 시비가 복음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며 살고 싶다. 사랑과 희생야말로 기독교의 본질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서 모든 피조물과 공존하라는 게 코로나 시대 기독교인들이 얻어야 할 교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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