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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재 Aug 29. 2020

11. 아재 개그 즐기는 할배

현장에서 신발 신은 채 눈감고 싶어 ... 현장이라야 책상 머리겠지만

“강화에서 나는 세계적인 제품은?” 

 답은 강화유리다. 지금은 인천광역시가 된 강화의 특산품은 예나 지금이나 화문석이라고 한다. 물들인 왕골로 꽃 모양을 놓아 짠 돗자리. 네이버 국어사전엔 화문석에 대해 아예 강화도에서 만든 것이 유명하다고 풀이돼 있다.

 여전히 화문석으로 유명하다는 건 강화에 내로라할 만한 다른 특산품이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강화유리를 강화해 보라’는 이야기는 이 정체감을 안타까워하는 강화군수에게 강화에 사는 림태주 시인이 던진 아재 개그다. 림 시인에게서 얼마 전 직접 들었다. 

 나도 아재 개그를 즐긴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음식은? 산채비빔밥, 같은 것이다. 듣는 사람들이 아재 개그라고 놀리면 할배가 아재 개그 했으면 선방한 거라고 응수한다. 우기면 회춘이다. 이런 언어유희가 아재 개그라 불리는 건 재미가 없어서이니 재미가 없었는지 반성은 한다. 

 나는 평생 언어노동자로 살았다. 기자 및 기자 지망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지만 나의 정체성은 직업적인 글쟁이다. 프리랜서 기자로서 기사를 쓰니 여전히 현역이다.  

 페이스북은 나의 글쓰기 연습장이다. 글이라고 해야 대부분 몇 줄짜리 잡문이다. 자기 생각을 견고하게 만들고 다듬는 데는 글쓰기만한 게 없다. “글이란 다듬어진 생각이다.”(스티븐 킹)

 페이스북에서 ‘#이필재의 실전 글쓰기’와 ‘#이필재의 공공 메시지 손보기’란 해시태그를 달아 남이 쓴 글에 대해 수시로 무시로 지적질도 한다. 약도 없는 거의 난치병 수준의 직업병이다. 어느 대학교수가 댓글 달기가 조심스럽다고 댓글을 달아 댓글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지 않는다고 대댓글을 단 적도 있다. 주로 미디어에 실린 글에 대해 이런 저런 지적을 하는데,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 데는 남의 글 흠잡기만 한 게 없다. 모든 라이팅은 리라이팅이다. 아니, 라이팅 이즈 리라이팅이다.  

 문학은 아니지만 기자적 글쓰기도 습작기에 흔히 필사(筆寫)를 권한다. 잘 쓴 남의 글을 베끼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어느 분이 다시 글을 쓰게 됐는데 글이 잘 안 써졌다고 한다. 그는 휴가를 내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끼고 여행을 떠났다. 거기서 방에 들어앉아 열심히 그 책을 필사했다. 그렇게 해서 글 감각을 회복했다고 한다.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대학 후배도 초년생 시절 장르별로 잘 쓰는 선배의 기사를 갖다 놓고 베꼈다고 말했다.  

 나는 글 실력 향상 목적이 아닌 성경 필사가 아니라면 필사보다 리라이팅을 권한다. 남의 글을 베끼는 것보다 남의 글이든 자기 글이든 고쳐 써 보는 게 더 큰 도움이 된다. 거의 절대적이라 할 만큼 가성비가 높다. 퇴고도 일종의 리라이팅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진료실로 들어가실 게요." 

 요즘 병원에 가면 많이 듣는 말이 ‘…하실 게요’이다. 이런 병원 병신체(이른바 보그 병신체를 의도적으로 패러디했지만 병신체라는 말 자체는 부적절하다) 내지는 간호사 화법이 듣기에 불편한 건 이유가 있다. 우선 주어와 술어 간 주술 호응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본래 “(제가) 빨리 갈 게요” 식으로 쓴다. ‘ㄹ 게요’는 1인칭 주어와 호응한다. ‘결코’란 말 뒤에 부정하는 서술어, ‘제발’ 뒤엔 청원을 담은 서술어, ‘아마’ 뒤엔 추측의 뜻을 지닌 서술어가 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병원 병신체는 (비록 생략됐지만) 주어가 2인칭인 문장에 쓴다. 

“(고객님은) 지금 진료실로 들어가실 게요.”

 이처럼 주술 호응이 이뤄지지 않는 문장이 대표적인 비문이다. 말 그대로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 그러니 듣기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2인칭 주어와 함께 쓰다 보니 'ㄹ 게요' 앞에 ‘시’라는 존칭보조어간을 삽입했다. 이 '시'가 듣는 이의 불편함을 가중한다. 병원에서 태어난 듯한 병원 병신체는 유통업을 비롯해 전 서비스 업계로 확산 중이다. 거의 전방위적이다.

 ‘바라겠습니다’로 끝나는 문장도 무조건 비문이다. 어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바란다는 것은 말 그대로 기원이다. 말하고 글로 적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완성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다. 그러니 헤어진 여자친구가 결혼 소식을 전할 때 “부디 행복하기를 바랄 게”가 아니라 “진심 행복하기 바라”라고 말해야 한다. 진심이라면. 프로포즈를 하면서 '(열렬히) 사랑합니다'가 아니라 '(어떻게든) 사랑하겠습니다'라고 하면 구애 상대가 접수하겠는가? 사랑하는 게 아니라 흑심을 품었다고 뺨 맞기 십상이다. 

 그런데 방송에서 각광 받는 방송인은 말할 것도 없고 상당수의 아나운서들이 이렇게 ‘바라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앵커 시절 손석희씨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메일을 보낸 적도 있다. 씹혔다. 더 거슬리는 건 방송에 나온 교수들이 겸양의 표현으로 “저희 나라…” 라고 하는 것이다. 저희 나라라고 하면 본의 아니게 시청취자들을 외국인 취급하는 것이다. 식자층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마음적으로’, ‘일적으로’라고 하면 화악 깬다. 적(的)은 한자어와 결합해 쓰는 말이다. 굳이 적을 넣어야겠다면 ‘심적으로’, ‘업무적으로’라고 써야 한다. 

 내 또래의 남자가 식당에서 서빙하는 젊은 여성에게 ‘언니’ 하는 것도 꼴불견이다. 아줌마, 아가씨가 사실상 죽은 말이 돼버려 이럴 때 호칭이 마땅치 않지만 그래도 언니는 영 아니다. 적당한 호칭이 없으니 ‘여기요’, ‘저기요’ 한다. 어쩌다 일로 만난 사람이 ‘저기요’ 하면 나는 슬며시 “우리가 왜 적이냐”고 아재 개그를 친다.  

 이모는 또 어떤가? 식당 앞을 지나는데 “이모 구함”이라고 써붙인 것을 보고 실소를 머금은 적이 있다. 대한민국은 혈연관계에 있는 이모도 구할 수 있는 사회다. 있을 수 없는 일도 일어나고 안 되는 일도 없는 다이나믹 코리아!

 동무는 북한이 이 말을 불순하게(?) 사용한 탓에 어깨동무에만 남은 죽은 말이 됐다. 배낭이란 말은 백팩에 밀려 죽어가고 있다. 여행에 달라붙어 배낭여행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염두하다, 애정하다는 본래 없는 말이다. 염두, 애정 둘 다 명사만 있다. 그러나 네이버 오픈사전에 오른 애정하다는 나도 어쩌다 작위적으로 쓴다. 말이란 흐름이기 때문이다. 

세절기 이름이 종이의 친구이다. 엽기적인 브랜딩이다. 오래 전 찾은 한 식당의 정수기에 '정숙이'라고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정수기를 여성으로 의인화함으로써 사랑스럽게 다뤄달라는 뜻을 담은 것으로 읽었다. 


 기자 지망생들에게 기사에 이모티콘을 쓰지 말라고 하지만 이모티콘은 이미 생활 언어이다. 인터뷰 기사는 언젠가 이모티콘을 섞어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 우리 집을 방문한, 미국에 살던 사촌 여동생에게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영접할 게^^”라고 문자를 보낸 후 아무런 이모티콘이 없는 “영광이네요”란 답문을 받고 문자적인 의미 외에 다른 함의가 있나 음미해 본 적이 있다.    

 수시로 지적질을 하다 보니 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도 문장에 신경을 쓴다. 띄어쓰기도 엄격히 하는 편이다. 그러나 바쁠 땐 띄어쓰기 무시하고 메시지를 보낸다. 그래도 초성, 중성, 종성이 어울려 음절을 구성하도록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 덕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알파벳을 사용하는 언어로 쓴 글을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보냈다고 생각해 보라! 한글은 디지털 시대에 더 위력적인 글자이다.   

 탁월한 글쟁이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세상사 거의 모든 일의 끝에는 글쓰기가 있다“고 말했다. 궁극에 가면 글쓰기 싸움이라는 것이다. 메시지 싸움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정치도, 연애도 결국 메시지로 벌이는 전쟁이다. 생업도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야 한다. 미디어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글쓰기 능력은 조직생활의 필살기다. 학술 논문도, 사내 보고서도 결국 글이다. 치킨집을 차리더라도 전단지의 카피를 잘 써야 한다. 이메일, 카톡 메시지도 글이다.

 전기보 행복한은퇴연구소장 겸 술빚는전가네 대표는 교보생명상무 출신이다. 49세에 늦깎이로 국제경영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자격증도 땄다. 동기생 중 1호로 ‘별’을 달았지만 그는 타의로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50대 후반에 양조장 ‘술빚는전가네’를 차렸다. 자신이 빚은 가양주(집에서 빚은 술)를 팔아 보려 경기도 포천 산정호수 자락에 있는 양조장 건너편에 주막을 함께 열었다. 라면밖에 끓일 줄 몰랐지만 안주를 만들기 위해 8개월 만에 한식·일식에 사찰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가 한참 잘나가던 시절 미국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기조연설자가 “언젠가 신발을 신은 채로 죽고 싶다”고 말했다. 나와 동갑인 그는 인터뷰 때 이렇게 털어놓았다. 

“사람들은 흔히 투병을 하다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상상을 합니다. 눈을 감는 장소로는 대개 양로원·병원·고향집 같은 곳을 떠올리죠. 그날 이후 나도 좋아하는 일을 하다 현장에서 신발을 신은 채 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칭송받는 피터 드러커는 96세에 영면했다. 69세에 자서전을 냈고 그 후로도 근 아흔 살까지 한 세대 더 현역으로 살았다. 세계적인 석학인 그에게 사람들은 "그동안 쓴 책 가운데 어느 것을 최고로 꼽느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그는 웃으면서 답했다.

"다음에 나올 책이죠."

 이렇게 말할 때 그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를 떠올렸다고 한다. 여든여덟에 눈을 감은 베르디는 여든이 되어서도 늘 자신을 피해 달아나는 완벽을 추구하며 오페라를 작곡했다고 한다.

 나도 현장에서 신발을 신은 채 눈감고 싶다. 직업적인 글쟁이에겐 현장이라고 해 봤자 책상머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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