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라이프 시작
계획한 것도 아닌데, 둘째 임신을 알게 된 지 일주일 후 남편 미국 연수 소식을 들었다.
출산시기와 남편의 미국출국 시기가 짜 맞춘 듯이 일치해서 큰 고민 없이 육아휴직 후 자연스레 미국행에 함께 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주변의 도움 없이 아무도 없는 타지에 가서 아이 둘을 홀로 육아한다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닐 것이라 했다. 오히려 부모님 도움 받으며 몸조리하고 한국에서 육아하는 것이 훨씬 편할 거라고..
하지만 일부로라도 돈을 모아 해외 한달살이, 1년 살이를 하는 와중에 합법적인 비자에 일부 생활비가 지원되는 좋은 조건이고 거기에 미국! 실리콘벨리라니!
해외생활에 동경이 있는 난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5세 딸의 영어교육을 위해서라도 나가는 것이 도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출국날짜는 둘째 100일 잔치 3일 후.
보통 한 달 전쯤 해외이사 짐을 보내기 때문에 나는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세 분류로 짐을 나누었다.
1) 해외이사로 보낼 짐
2) 한국에서 사용하다 직접 가지고 갈 짐
3) 한국에 보관할 짐
신생아를 돌보며 짐을 정리하고 이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예상했던 수준보다 훨씬 힘들었다. 편안하게 미국라이프를 즐길 상상만 하던 나에게 닥친 첫 번째 현실이 자 비움의 시작이었다.
포기할까 싶은 힘듦과 고생스러웠던 해외이사 여정은 뒤로하고, 드디어 우리는 햇볕 하나로 모든 게 따뜻해지는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다. 가성비로 고른 조금은 어둡고 어수선한 레지던스에서 5살 딸과 함께 컵밥을 먹고 파티라며 삼겹살도 구워 먹었다. 고맙게도 신생아 둘째는 낯선 침대에서 낮잠도 밤잠처럼 잘 자 주었다. 낮에는 늘 토끼잠을 자던 아이였는데 시차까지도 감사했다.
미국생활을 시작하며 무겁게만 느껴졌던 회사업무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너무나 가뿐했고 억지로 유지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편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것 같은 아이디로 SNS 계정도 새로 만들었다.
자, 나는 이제 새로 시작하는 거야~~
하고 싶은 거 쉬고 싶은 거 다 하며 '즐기기만 하면 된다'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매일 마트와 공원을 갔고, 핸드폰을 쥐고는 View point와 근교여행하기 좋은 곳을 찾아 리스트업 했으며 동네구경 집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100일 갓 지난 아기를 데리고 팔로알토, 샌프란시스코, 산타크루즈, 허니문베이 많이도 돌아다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본능 때문인 걸까.. 펑펑 논지 몇 주도 채 안 돼서 나는 불안함에 자기 계발이라는 것을 찾아 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영어공부를 시작했고 복직하면 도움이 될 데이터분석 강의를 신청하여 공부를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났으며 같이 공부를 할 여러 커뮤니티에 가입을 했다. 그런데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마음은 무언가 텅 빈 것 같았고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동안 애써 덮어놓고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었던 물음들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내 마음은 왜… 도대체 왜 힘든가....
나에게 주어진 이 귀한 시간 어느 순간보다도 치열하게 나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몰랐다.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아플 줄은.
그리고 나에 대해서 안다는 것이 그 어떤 공부보다도 어려운 것이라는 걸.
이 미국생활이 끝날 때쯤.. 나는 나를 얼마나 챙겨 안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