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살아보는 건 재밌다
한국에서는 타운하우스라고 불리는 마당 있는 단독주택에 살았다. 집과 집이 붙어있는 땅콩주택은 아니지만 75개의 단독주택들이 하나의 단지처럼 같이 있는 형태이다. 처음부터 주택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고.. 아니 생각조차 한 적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내 아파트에 살았고, 결혼 2년 후 남편과 내 회사의 중간지점에 30평 아파트를 매매했다. 내 집 마련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았고 이 집에 입주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고 있었다. 이사 한 달 전쯤 어느 토요일, 인테리어를 위해 살고 계신 분께 양해를 드리고 들어갈 집의 치수를 재러 가는 길이었다. 집 도착하기 직전 큰 사거리 신호등에서 도로에 걸려있는 현수막 하나를 보았다.
[마당 있는 집 분양 중]
집 보러 다니는걸 좋아했기에 남편에게 가볍게 말했다.
"마당 있는 집이라는데~ 궁금한데 잠깐 들려서 한번 보고갈래?"
잠깐 들리자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현수막에 쓰여있던 곳으로 가보니 언덕부지에 샘플로 집 한 채가 지어져 있었는데 우리 부부는 그네와 야외 테이블로 꾸며진 마당 있는 집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집 치수재러 가야 한다는 것도 잊고 한참을 그곳에 머물러 집을 봤으며 그 이후로도 몇 번을 방문해서 집을 보고 분양담당자와 상담을 했다. 그렇게 고대했던 우리의 첫 집에 들어가기 한 달 전인데... 아파트는 머릿속에서 완전히 밀려버렸고 마당을 즐기는 로망만이 있을 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첫 집에 입주하기도 전에 이 타운하우스를 홀린 듯이 계약을 하고 만다.
2년 후 나는 첫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이 집에 입주를 했고 5년간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즐겼다. 타운하우스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층간소음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윗집 아랫집에 아무도 없으니 아이가 뛰어도 상관없고 윗집의 소음으로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었다. 실제로 첫째는 (집안에서) 맘껏 뛰놀고 돌 전부터 계단을 오르고 내리며 대근육 발달이 빨랐다. 여름엔 수영장을 만들었고 시원한 저녁엔 연기냄새 고민 없이 고기와 와인을 즐겼으며 뒷마당엔 작은 텃밭을 꾸몄다. 코로나가 심각했던 시기에도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우리만의 외부공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
보통 한국에서는 아파트생활이 미국은 싱글하우스가 보편적인 주거생활이다. 하지만 뭐가 뒤바뀐 듯 미국에 오면서는 아파트를 구하게 되었다. 아파트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집 계약이 개인과의 거래보다는 건설회사와 하는 편이 깔끔했으며 집을 수리해야 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도 더 빠를 것이라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예산이었는데 우리의 예산으로는 싱글하우스를 구하긴 힘들었고 작은 타운하우스를 가자니 계단 있는 집에서 신생아 둘째를 키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산호세지역은 미국 내에서도 집 값 높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미국 오기 전부터 질로우사이트에서 살다시피 하며 최대한 예산 안에서 구할 수 있는 집들을 뽑는데 시간을 많이 들였다. 성격이 급했던 나는 한국에서 이미 아이 학교를 컨택해 입학금까지 결재한 상태였다. 아이 학교와 남편 회사 출퇴근을 고려해 1차 지역을 추린 후, 아래 3가지 기준으로 집들을 써치 했다.
1) 차 없이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수 있도록 마트, 카페, 공원, 도서관이 가까울 것
2) 안전한 동네
3) 건물이 너무 오래되지 않을 것 (평점중시)
6개 정도의 집들을 미리 투어예약했고, 우리는 미국 도착 다음날부터 바로 하우스투어를 시작했다. 집투어를 하다 보면 여기가 내 집이다!라고 느껴지는 곳이 있다. 꼭 여기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지는 그런 집.
지금 살고 있는 이 아파트가 그랬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예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주변 동네도 아기자기했으며, 도서관과 공원 그리고 대형마트와 카페가 있는 plaza까지 걸어서 5분이었다. 거기다 뻥 뚫린 뷰까지~ 한국에서는 항상 앞집뷰였기에 확 트인 뷰는 더더욱 끌리는 포인트였다. 당연히 2bed 집을 구하려 하고 있었는데 이 아파트의 렌트비는 비쌌다...어떻게든 갈 수는 있었지만 높은 생활물가에 첫째 프리스쿨비용, 간간히 여행까지 다니려면 여유가 없었다. 고민고민하다 그날 밤 남편에게 말했다.
"나 1 bed 여도 상관없어. 우리 그 집으로 가자!"
우리의 급한 성격과 미국아파트의 계약 시스템은 아주 찰떡이었다. 온라인으로 apply를 하면 바로 관련메일 받아 서류를 작성하고 보증금을 입금하면 이사날짜를 확정 지을 수 있었다. 미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이사를 들어갔고, 2주를 잡았던 레지던스는 일주일치 환불을 받았다.
이 집에 산지도 벌써 6개월이 되었다. 짐을 줄이고 줄였는데도 수납공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방 한 칸엔 우리 침대와 첫째 싱글침대를 넣었더니 둘째 신생아 침대는 넣을 공간이 없어 어떻게 자야 하나 고민이 되기도 했다. 가끔씩은 내 방에 방문을 탁 닫고 들어가 조용히 음악을 듣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집에서의 나는 집안에만 있어도 주변을 걸어 다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감을 느낀다. 온 가족이 복작복작 붙어있고 아이들이 항상 내 시선 안에 들어와 있는 게 좋다. 물건에 대한 집착이 줄어들었고 남편과 서로 불편하지 않게 배려해 주는 눈치도 늘었다.
한국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방 한 칸짜리 집에서 산다면 가난하게 느껴지고 슬펐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만족감을 느끼며 작은 공간을 즐겨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글을 쓰다 느낀 건데...
나는 이 집의 좋은 점에 대해서만 글 한 편을 쓸 수 있을정도로 애정이 가득하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에 쏙 드는 집에서 지내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도 무엇을 비워야 집이 깔끔해질까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