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루트 'Crying in H Mart' 원서 읽기 북클럽 후기
미국에 온 첫날 내가 갔던 곳은 H마트였다. 이민가방에 캐리어, 유모차, 카시트를 가득 들고 한 손엔 4살 딸의 손을, 태어난 지 갓 100일 된 둘째는 아기띠에 매고 캘리포니아에 왔다. 아이 둘을 어르고 달랜 비행의 피곤함과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이라는 막막함으로 내디딘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낯선 공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이런 나의 불안했던 마음은 H마트에 들어선 순간 안도감으로 가득 채워졌는데 코인육수, 미역, 된장, 고춧가루 등을 캐리어 한가득 들고 온 내가 괜한 고생을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이곳엔 필요한 모든 게 있었다.
미국생활에 적응이 될 즈음 영어로 작아지기 시작했다. 일도 쉬고 신용카드 하나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언어의 벽은 나를 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 찾게 된 곳이 테이크루트였고 여러 프로젝트 중 원서 읽기 북클럽은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성인 ESL수업을 다녀보려고도 했지만 어린 둘째 때문에 시간 내기 쉽지 않았고 혼자 공부하는 것도 며칠 가지 않았다. 난이도의 문제였는지 번번이 원서 읽기는 실패하곤 했었는데 새벽 6시 같이 모여 오디오북을 듣고 모르는 표현을 배운다는 게 좋았다. 게다가 이민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어 느끼는 감정을 나누는 시간까지. 북클럽에 참여하는 동안 공부를 하려고 갔는데 마음까지 채워지는 경험을 맛봤다.
FOR 엄마
목차가 시작되기 전 'For 엄마'라고 적혀있는 페이지를 마주할 때부터 마음이 지릿했다. 책을 읽는 내내 엄마가 떠올랐으며 딸을 생각했다. 엄마라는 단어는 나이를 불문하고 아니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마음 깊숙이 도달하는 아림의 정도가 커지는 것 같다. 엄마가 된 후에야 엄마를 더 이해하기 시작해서인지 아니면 나이 든 만큼 엄마에게 미안한 게 많아서인지는 모르겠다. 과거 죽음에 관련된 책을 읽은 적은 있지만 나에게 죽음이란 여전히 남의 일이었다. 하지만 'Crying in H Mart'를 읽으면서는 마음이 절절하게 아파 울었고 내 삶에 엄마가 없어지는 순간이 올까 봐 무서웠으며 오래도록 내 딸을 지켜줘야겠다는 책임감은 커졌다.
저자 미셸자우너는 25세에 엄마를 잃었다. 책을 한번 읽은 후 오디오북으로 다시 듣고 있는데 머릿속에 갑자기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외. 할. 머. 니. 엄마가 외할머니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보내드렸을 때가 아마 내가 두 살 즈음 엄마는 25살 정도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내 눈에 엄마는 항상 밝았고 예뻤고 씩씩해 보여 엄마에게도 슬픔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감히 못했던 것 같다. 외할머니 이야기도 자세하게 해 주신 적은 없는데 한 번씩 나를 참으로 예뻐하셨다는 말과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예뻐하셨겠니 라는 말을 하시곤 했다. 짧고 담담했던 이 말은 사실 '네가 커가는 시간들을 나도 엄마와 함께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잘 키우고 있다고 보여드리고 싶은데 왜 이렇게 일찍 돌아가셨을까.. 참으로 보고 싶고 외롭고 그립다'라고 말씀하시고 싶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여태껏 엄마에게 '그러게'라는 말 외에 별다른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했다. 엄마는 잔치국수를 참 좋아하셨는데 미국에 와서 엄마생각을 하며 종종 멸치로 육수를 내 잔치국수를 만들어먹었다. 어렸을 땐 잔치국수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점점 엄마 입맛을 닮아간다는 것과 엄마가 잔치국수를 드실 땐 '외할머니가 잔치국수를 정말 맛있게 잘해주셨는데~'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는 것도 북클럽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떠오르게 되었다.
FOOD was how my mother expressed her love
미국에 있으면서 더 음식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타지에서 구할 수 있는 한정된 재료로 한국의 맛을 최대한 내기 위해 우리는 '이 고구마는 어디 마트 거예요? 오이는 무슨 종류로 사야 해요? 청양고추와 같은 비슷한 맛은 serano인가요 할라피뇨인가요?'같은 것들을 묻는다. 또 국적이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음식은 편하게 나눌 수 있는 대화를 시작하기 좋은 주제이다. 친해진 인도 친구들에게 한국음식을 대접한 적이 있는데 영어로 세세하게 음식을 소개하고 특징을 묘사하기란 쉽지 않았다. 'Crying in H Mart' 책에서는 된장찌개, 갈비, 잣죽, 산 낙지, 곱창전골, 한국식 중국요리 등 외국인의 시선에서 한식을 세세하게 맛깔나게 표현했는데 나중에 꼭 써먹고 싶어 밑줄을 그어놓은 문장들이 한가득이다.
Tender short rib, soused in sesame oil, sweet syrup, and soda and caramelized in the pan, filled the kitchen with a rich, smoky scent.
참기름, 물엿, 소다에 재운 부드러운 갈비가 팬에서 구워지면서 내뿜는 달큼한 냄새가 부엌에 가득했다.
A perfect soft powder of snow slathered in sweet red beans and garnished with pristinely cut strawberries, perfect squares of ripe mango, and little cushions of multicolored rice cakes. A fine web of condensed milk drizzled over the sides, and vanilla soft serve towered high on top.
완벽하게 부드러운 눈가루 위에 단팥을 수북이 얹고, 생딸기 조각과 큐브모양의 잘 익은 망고와 몰캉몰캉한 색색의 떡조각을 고명으로 올린 후 가장자리에는 연유를 거미줄처럼 뿌려놓고 꼭대기에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덩이를 얹어놓았다.
From a child who couldn't bear to sleep without her mother into a teenager who couldn't stand her touch
'엄마 없이는 잠도 못 자는 아이에서 엄마 손끝이 닿는 것조차 못 견뎌하는 10대로 변해버린..'
이 책은 구석구석 나를 후벼 팠지만 특히 사춘기 시절의 딸과 엄마의 갈등이 마음 아팠다. 결혼 후 미국땅에서 부족한 언어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한국말로는 세세한 감정표현이 어려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낀 딸. 그 간극이 덜했다면 조금은 덜 안타까웠을까. 한국에서는 아이의 영어교육만을 고민했었는데 미국에 와서 보니 한국의 뿌리를 어떻게든 심어주고자 하는 부모의 노력,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해지는 아이와의 소통을 준비하는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당신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하다'라는 책에서는 달콤한 초콜릿을 함께 먹으면 유쾌한 감정이 증폭되는 실험결과가 나온다. 구성원들이 같은 책을 읽거나 TV프로그램을 봤을 때 대상에 더 집중하고 세세히 기억한다고도 한다. 그래서일까 혼자 책을 읽는 것보다 함께 나눌 때 문장, 감정 하나하나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인디팝 보컬인 저자의 매력적인 저음의 보이스, 오프라인에서 만나 몇 시간이고 함께 얘기하고픈 북클럽 멤버들, 매일 선물처럼 보내주는 단어장과 표현까지. 완벽한 3박자와 나의 성실함이 더해져 완독이라는 작은 성취감을 맛보았고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