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젤로 Jan 14. 2024

육아에 유머를 담고 싶은데

죽어! 살아!

만 6세를 향해가는 딸이 사춘기 십 대처럼 눈을 내리깔고 흘긴다. 처음에는 어머? 얘 봐라? 신기했는데 한 달 두 달 반복되면서 벌써 이러면 커서 어쩌려고 그러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양치하자, 옷 입어야지 등의 잔소리를 할 때면 '하 진짜--'라고 짜증을 내거나 '나 알거든?'이라며 말대답을 하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딸에게 감정 조절을 못하고 화를 내는 나 자신에게 더 화가 난다. 아직 애기이고 귀엽게 여기며 너그럽게 넘어갈 수 도 있는데 하나하나 지적하며 화를 내는 나의 부족함이 싫은 거다.


1. 죽어? 살아!


이렇게 신경이 예민해진 요즘, 하루는 한글 배우기에 한창인 딸이 두 글자 단어 말하기 게임을 하자며 의기양양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엄마 내가 먼저 시작할게~'하더니 재밌는 표정으로 '죽어' 이러는 게 아닌가. 나는 예상치 못한 단어에 정색을 하고 짧은 시간 얘가 이런 말을 어디서 배웠을까, 알고 하는 말일까, 나쁜 친구를 사귀었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 딸에게 그런 말은 쉽게 내뱉는 게 아니라며, 정말 죽었으면 좋겠어? 라며 눈물 쏙 빠지게 혼을 내고 게임은 끝이 났다. 유치원 문제로 남편과 대화를 하다가 'Aria가 유치원에서 자꾸 나쁜 말을 배워와. 며칠 전에는 글쎄 나한테 게임을 하자며 '죽. 어' 이러는 거야!'라고 얘기했다. 남편은 어? 나한테도 그 게임하자고 했는데. 똑같이 말하길래  '살아'라고 이어 말했더니 엄청 웃었다고 말하는 남편을 보며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이 감정은 뭐였을까ㅜ  같은 상황을 내가 너무 다큐로 받아들였나. 딸은 재미로 얘기한걸 너무 오버해서 반응한 건가 싶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서 살. 어 라고 반어법으로 딸을 웃겨주는 남편의 재치가 부럽기도 했다. 하. 재미없는 엄마인가 싶다가도 그래도 죽어가 뭐야 알려줄 건 알려줘야지요 결론 내리는 나는 FM 엄마이다. 



2. 하나 둘 셋 넷.. 십일십이십삼십사 슈슈슈슉 


'싫어! 내가 이긴 거야. 다시 할 거야'

'그럼 안되지 정정당당 다시 외쳐봐. 규칙 안 지킬 거면 게임을 할 수가 없잖아'


딸이랑 보드게임을 할 때면 반복되는 상황이다. 유아기의 아이들이 그렇다지만 정말 승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칙을 할 때면 매 번 화가 난다. 계속 져주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울더라도 규칙과 결과를 받아들이도록 알려줘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느 날 하루도 딸과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카드를 더 많이 획득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게임이 끝나고 각자 카드를 세는 시간. 대부분 딸이 이기도록 하는데 이번엔 하나 둘 셋넷 카드를 한 장씩 뺴면서 서로 세다 보니 내 카드가 몇 장 더 많았다. 게임은 딸의 짜증과 울음으로 역시나 끝났고 나는 화가 나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딸을 달래주러 다시 나가봐야 되나 싶은데 밖에서 아빠와 딸의 까르르 까르르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건지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쫑긋 집중해 보는데 아까 나와하던 보드게임을 아빠와 하고 있었다. 카드는 딸이 더 많이 땄는데 아빠가 세는 과정에서 카드를 넘기는 척하며 카드숫자가 많게끔 입으로 숫자를 세고 있었다. 분명 자기 카드뭉치가 더 많은 것 같은데 이상함을 느낀 딸은 '아빠 다시 세봐' 하는데 남편은 하나 둘 셋 십삼십사십오십육십칠 하며 카드를 넘기는 제스처만 과장하며 반복하고 있었다. 아빠의 사기극을 눈치챈 딸은 재밌는지 까르르 웃으며 아빠 또세봐 아빠 또세봐 이러며 보드게임의 승자는 잊고 카드 넘기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3. 사실 매 번 옳은 것을 알려줘야 하는 것은 아닌데. 

요즘 딸과 갈등을 겪으며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나의 문제의 정점엔 너무 올바르게 해야 하는 것들을 알려주고 시키려는 나의 욕심이 가득 들어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게 엄마말은 잔소리고, 세대차이를 불러일으키는 것일 텐데.. 나는 술은 많이 마시면 안 돼. 취하는 건 싫어. 게임하는 건 정말 싫고 욕하는 사람도 싫어. 빈둥빈둥 노는 것보단 책을 읽거나 생산적인 일을 해야지 등등의 고리타분한 기준을 잔뜩 가지고 있다. 가끔은 힘을 빼고 유들유들 유머 있는 대응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 센스와 유머는 어디서 배울 수 있는 거죠? 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