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구, 소품 _ 아빠 편

그것은 문화이고 사랑이다.

by 젤로

내가 상상 속에 그리던 집은 이런 모습이다.


넓은 정원이 있고 그곳에는 감나무 사과나무 모과나무가 잘 자라고 있으며 집안에 들어 서면 거실 이곳저곳에 조각 소품이 놓여있고 벽 두어 곳에는 큰 액자에 작품이 걸려 있으며 잘 디자인된 편안한 소파와 천연 옥 식탁에 흰 커피 잔, 거실에 난 두세 분, 창 넓은 거실, 장난감과 책과 인형으로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아이들 방. 밝은 조명아래 잘 갖추어진 주방기구, 그리고 3층에 서재 겸 집필실까지 갖춘.


그러나 이 모습은 이루기 힘든 상상 속의 그대였다.

더구나 박봉의 월급쟁이에게는.


그런데 아주 젊은 날 정말 꿈같은 일이 생겼다. 호수와 정원이 생기고 유명 작가의 조각 작품들 뜰에 설치되고 국내에서 가장 큰 작품 갤러리가 선물로 주어졌다. 그것도 자전거로 30분 거리에.

과천 국립 현대 미술관이 개관되었다.

틈만 나면 찾았던 그곳은 나의 집필실이었고 카페였으며 작품으로 가득한 정원이었다. 더구나 넓은 호수까지 옆에 갖추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숲길을 한 시간 산책할 수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갈 때마다 새로웠다. 3층으로 된 전시실은 시대별 작품 구성별로 이루어져 있고 중앙 공간에서는 자주기획전시 가 열리곤 했다. 관람 중 2층 휴게실에서 차를 마시는 것도 즐거움이고 거기서 이런저런 생각을 공책에 쓰는 것도 행복이었다. 아주 가끔은 1층 아트 샵에서 소품이나 작품집 또는 예술 서적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상상 속의 집은 가질 수 없었지만 공공의 것을 최대한 누리자는 생각의 변화는 값비싸고 멋진 예술과 문화를 늘 가까이 즐기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소유하고 싶었던 정원은 호수공원으로, 거실의 갤러리화는 미술관으로, 갖고 싶었던 서재는 도서관으로 바꾸어 누렸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그러는 중에도 은연중에 그 문화들이 몸과 정신에 배어 들고 있었음을 느낀 일이 종종 있었다. 집 서가에 있는 책 하나하나에도, 집안에 있는 물건 하나에도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 책장의 제3세대 한국문학 책들은_이청준 한승원 윤흥길 박완서 이문열 등_당시 마흔 살 전후 작가들 작품으로 첫 월급으로 구입한 것인데 그중 감동적으로 읽었던 몇몆 작품을 독서목록으로 제시해 학생들에게 읽게 하였다. 얼마 후 문학참고서에도 없던 그 작품이 수능지문으로 나왔다고 제자들이 나에게 고마워했던 기억.


- 이 흰색 크고 잘 생긴 메병은 작가가 작품 굽는 날을 알려 주기에 경주까지 가서 작가의 집에 까지 가서 구입한 것. 그 작가의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또래여서 어른들이 작품얘기 하는 동안 낯설지 않게 같이 어울려 놀았던 추억이 묻어있는 것.


- 저 청동 조각은 인사동 여기저기에 오래된 조각작품들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눈에 띄어 구입하고 나중에 멋진 작품대를 가구갤러리에 가서 사다 작품을 올려놓고 만족해했던 것.


- 또 한창 자라던 아이의 방 입구엔 벽지에 연필로 가로 그은 선들이 있었다. 아이를 벽에 서게 하고 책으로 머리를 맞추어 키를 재고 작은 글씨로 날짜를 써 놓은 것이다. 건강하게 잘 크는 아이의 키표시는 작품 이상으로 멋졌다.


주방에 있는 그릇 하나하나에도 스토리가 있었다. 흰 그릇은 청담동 갤러리 갔다가 마음에 들어 구입한 것이고 저 물컵은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하는 기획전시를 관람하러 갔다가 그 전시의 주제를 담은 컵을 판매하고 있어서 두 개사서 거실에 놓았다가 물컵으로 사용하는 것이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입구에 놓인 맷돌처럼 생긴 흰색 돌조각은 미술을 전공하는 제자가 선물로 준 것이어서 볼 때마다 그와의 추억이 생각난다..


장롱, 소파, 침대, 소품 등 크고 작은 작은 가구를 구입할 때도 사기 전에 백화점, 논현동. 헌인릉 부근 세곡동 등을 다니며 유행흐름과 디자인을 보며 눈을 한껏 높이기도 했다. 여행 삼아 다니는 일은 재미도 있고 그렇게 다닌 후 결정한 가구에 또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인간은 비와 바람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추위를 피하기 위해 있을 곳을 만들었다. 주변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기둥도 만들고 벽도 지붕도 만들었다. 너와지붕도 초가지붕도 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산이 가까우면 싸리를 엮어 울타리도 만들고 출입문도 만든다. 주변에 돌이 많으면 그것으로 집을 만든다. 진흙을 개고 볏짚을 섞어 집 칸을 나누는 벽을 만든다.


그러니까 집이란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이다.


거기서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고 배고플 때 끼니를 해결하고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가족이 내일을 위해 쉬는 공간이다. 몸만 쉬는 곳이 아니라 지친 마음도 추스르는 곳이며 영혼의 쉼터이기도 하다.

돌아갈 곳,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곳, 그리고 밖에서 흘린 땀과 눈물을 닦아 주는 귀한 곳이다.

몸을 녹일 따뜻함이 있고 아픔을 보듬어 주는 사랑이 있는 곳이며 자녀들이 보고 배우고 성숙해지는 문화 공간이다.


집에 있는 장롱, 소파, 침대, 옷장, 책장, 식탁, 주방의 가구 하나하나에 벽지 색깔에 까지도 가족 구성원의 생각이 오롯이 묻어 나온다. 문화 이것은 엄청난 힘이다. 눈에 보이는 사회 곳곳의 건축물과 시설들은 구성원에 영향을 미친다. 보이지 않게 구성원들의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집안 이곳저곳에 있는 물건들은 눈도 귀도 없고 따뜻한 온기도 없지만 그것들은 아이들이 크고 머리카락도 희끗해지도록 함께 하며 나이테처럼 켜켜이 문화를 가족들에게 스며들게 하고 있다.


이제 정성과 삶의 흔적이 가득 묻은 집의 물건들과 작품들에 사랑이라는 꽃을 달아보자. 그것은 우주의 힘이 되어 함께 있는 가족을 아침마다 새롭게 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출처 mmc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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