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나의 집

이사는 나의 도파민

by 젤로

1. 언니 편


결혼 후 벌써 다섯 번째 집에 살고 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이사를 앞두고 있다. 거쳐간 집들을 보면 당시의 우리의 가치관, 경제 수준이 그대로 드러난다. 학생인 남편과 신입사원이 만나 단출하게 얻은 빌라 신혼집은 나름 아늑했지만 빌라 입구에 고양이가 들쑥 나타나서 동물을 무서워하는 나에겐 지나다니는 매일이 스트레스였다. 깨끗한 환경을 찾아 조용하고 산책을 위해 광교호수를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한 아파트를 선택한 우리의 첫 매매. 하지만 30분을 걸어가야 나오는 광교호수는 찍고만 돌아오는 운동 코스였다. 그 후 로망을 실현하겠다며 고른 마당이 있는 집. 미국에서의 수영장이 있는 아파트. 그리고 지금은 집값 상승과 학군이라는 기준점을 알게 된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 새로운 지역을 선택했다.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을 시점으로 계획했던 이사는 기존집의 매매 및 자금이슈로 한차례 미뤄졌고 올해는 갈 수 있나 노력을 해보았지만 최근의 대출규제까지 겹쳐 포기에 이르렀었다. 집을 사놓고도 움직일 수가 없고 이사 갈 집 앞에 있는 중학교는 과밀인데 이사가 늦어지면 우리 딸은 코앞을 놔두고 멀리 떨어진 중학교를 가야겠구나.. 싶어 슬퍼지려는 찰나, 매일 밤마다 핸드폰으로 검색하고 골똘히 컴퓨터에 엑셀차트를 켜놓고 고민하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한마디를 꺼냈다.


“우리 이사 갈 수 있을 것 같아”


짧지만 힘 있는 한마디에 “어? 어떻게?” 되물었다. 남편이 자신의 계획과 방법을 브리핑했다. 듣다 보니 가능성이 있어 갑자기 도파민이 솟구친다. 다음날 남편과 나는 각자 회사 내 주거래은행에 상담을 하러 갔고 이사 각이 나올지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내가 남편을 좋아하는 점 중에 하나는 추진력이 있다는 것이다.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주고 나와 남편 중 누구의 이름으로 대출받는 게 가계에 이득인지를 따져보았다. 은행업무가 마무리하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두 달 뒤 이사로 방향을 틀고는, 그렇게 기대했던 3주간의 뉴질랜드 여행도 비행기 위약금을 물며 취소했다. 여행비를 아껴 이사비용에 보태야 한다. 남편은 부동산에 연락하고 인테리어 업체를 알아보고 이사 갈 집에 어떤 공사가 필요할지 집상태를 살피러 갔다. 나는 아이들의 유치원과 학원에 전화를 돌리고 설명회와 대기 자리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사 가려는 지역은 경기 남부이긴 하나 지금보다 통근거리도 멀어지고 친정집과도 멀어져 육아도움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나은 지역으로 옮기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걱정이 태산인데 일단 부딪쳐보기로 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안건은 인테리어 공사 준비이다. 구축아파트라 거실확장, 샷시 교체, 주방 싱크대, 화장실까지 풀인테리어 수준인데 자금도 부족하고 3월 학기 초 입학시점에 맞추기에 공사시간도 부족하다. 열 곳이 넘는 업체들에게 견적을 받고 그중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업체들과 상담을 했다. 인테리어 상담 및 견적담당은 남편이다. 우리에겐 미감보단 예산이 중요하기에, 남편과 인터넷에 있는 인테리어 사진들을 보며 무몰딩은 비싸고 실용적이지 않으니 제외, 다운라이트는 전기공사비용이 많이 드니 방은 직부등으로 거실 주방에만 힘을 주자, 화장실은 덧방과 철거 각각 나눠서 견적을 받아 비교해 보자, 중문은 필요할까? 남편은 직배수 로보락은 꼭 설치하고 싶다고 한다. 의논할 거리들이 넘친다. 예산을 줄이기 위해 가성비 인테리어 이미지들을 찾다 보니 모두가 비슷한 집들인 것 같아 잠시 현타도 온다. 그래도 남편은 내가 바라는 집의 느낌과 원하는 마루, 도배지의 스펙을 알려주면 한정된 예산 안에서 최대한 맞춰주려고 노력한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와이프의 니즈에 맞춰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 이런 모습에 내가 결혼했지 싶다. 여러 업체 중 계약할 업체를 선택할 시간이 왔다. 이 업체는 소통이 잘 안 될 것 같아, 이 업체는 포트폴리오들이 별로야, 대화하는 게 재미있다. 결혼 10년 차. 아직 소통은 잘 되고 있으니 다행이다.


이사와 인테리어 공사를 준비하고 있자니 옛 추억이 생각난다. 어렸을 적 이사를 꽤 다닌 편이고 이사 갈 때마다 그중 몇 번은 인테리어 공사를 해서 예쁜 집에 살았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사 간 아파트가 첫 인테리어였던 것 같은데 내 방 벽지는 위에는 핑크 아래는 하늘색으로 중간에 띠벽지가 둘러져 있었다. 동화 같았던 이 방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예뻐 감격스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엄마 아빠는 물건 하나를 살 때 매장을 여러 군데 계속 돌아다니며 아이쇼핑을 즐기셨는데 나와 동생은 큰 가구매장을 놀이터처럼 뛰어다녔다. 옥식탁과 옥 테이블 세트, 스웨이드 같은 부드러운 소재의 브라운 소파, 집 군데군데 놓여있는 미술작품과 도자기들. 그러고 보니 경주여행에서 항상 도자기를 구경하시고 하나씩 구매하시는 게 엄마아빠의 소소한 재미셨던 것 같다. 이렇게 가구, 인테리어에 나름의 돈을 들이셨던 아빠는 지금의 나에게 분명 이렇게 말씀하실게 뻔하다


“인테리어에 돈 쓰지 마라”


그래도 집의 느낌, 잔상이 오래 기억되는 걸 알기에 예쁜 집을 만들어 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어린 날의 오해 - 동생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