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_ 막내 편

by 젤로

어렸을 때 가장 처음 가졌던 내 방은 베란다였다. 아마 한 5,6살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니 방이 생긴 걸 본 난 잔뜩 시무룩해져서 물었었다.


"내 방은..?"


그러자 엄마 아빠가 말했다.


"oo 방은 여기야! 엄청 넓지?"


그렇게 보여준 공간이 바로 베란다였다. 거실 문과 바깥 창문 사이에 있는 작은 여유 공간. 그때 난 너무 기뻐 거실, 안방, 아빠 서재, 언니 방에 각각 자리 잡고 있던 내 모든 인형들을 바리바리 가져오며 말했다.


"이제 너네가 있을 곳은 여기야. 여기가 내 방이거든!"


아빠를 따라 하고 싶었던 걸까, 어렸을 때부터 난 인형들을 모아두고 선생님놀이를 자주 하며 놀았다.

"자, 구연동화 시간이에요. 어, 거기 멍순이 떠들면 안 돼! 자꾸 떠들면 선생님한테 혼나!"


언니가 학교를 간 틈을 타 언니 방에 있던 언니의 인형도 몰래 가져와 숨겨놓으며 말했다.

"언니 방은 답답하지? 내가 여기 몰래 숨겨줄게!"


그렇게 난 한겨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내 방에서 보냈다. 언니가 갖고 있는 거면 지우개 하나마저도 다 내 것보다 좋아 보였지만, 방만큼은 예외였다. 베란다인 내 방이 너무 근사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oo 방은 언니처럼 초등학교 들어가면 만들어줄게'라고 했을 법도 한데 엄마아빠는 방 3개인 아파트를 방 4개짜리로 만든 것이다. 엄마아빠는 집을 알아보러 다니고 이사를 결정하고 도배를 새로 할 때부터 내 방에 대해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베란다가 그렇게 아름답고 근사할리 없었다. 거실의 유리문을 열고 나갔을 때의 베란다 바닥은 거실바닥과 동일했고 포근한 촉감의 매트도 깔려있었다. 내가 아끼는 장난감과 인형들이 앉아있을 수 있는 귀여운 수납장도 있었다. 창문은 춥지 않도록 이중창으로 되어 있었으며 무슨 수를 썼는지 초겨울까지는 찬 바람의 기운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때는 같은 아파트에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많이 살았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다른 집 베란다는 베란다였지만 우리 집 베란다는 명백하게 방의 구조와 느낌을 갖추고 있었다. 난 내 방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땐 근사한 방을 준 엄마아빠를 사랑했지만 지금은 이토록 지혜롭게 사랑과 온기만을 가득 담아 키워주신 엄마아빠를 사랑한다.


몇 년 후 나에게도 방이 생겼었다. 그러니까 안방이나 서재, 언니 방 같은 느낌의 방 말이다. 엄마와 아빠는 내게 벽지 컬러는 무슨 색으로 하고 싶은지, 소재는 어떤 느낌이 좋은지, 포인트 벽지는 캐릭터로 하고 싶은지 나뭇잎 모양으로 하고 싶은지, 천장에는 야광별을 잔뜩 붙이는 게 좋은지, 별자리 스티커를 붙이는 게 좋은지 등등을 끊임없이 물어봤다. 덕분에 난 초 1, 2학년 때부터 내 방의 벽지와 소재, 인테리어, 가구들을 직접 고르는, 내 취향을 존중받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베란다에서 놀던 나에게 미안한 마음에, 그렇게 나만을 위한, 내 취향을 잔뜩 반영한 예쁜 방을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물론 나도 기뻤다. 내가 원하는 벽지를 내 맘대로 고르는 일도 무척 재밌었다. 하지만 원래 사람이란 게 처음의 감흥이 가장 큰 법이지 않은가. 난 이미 내 방을 소유하고 있었다. 벽지가 아무리 예뻐도 처음 내 방을 갖게 된 그때의 설렘과 기쁨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때 엄마 아빠가 왜 그렇게 설레는 눈빛으로 나를 인테리어 매장에 데려갔는지 난 미처 이해하지 못한 채 덤덤하게 내 취향에 대해서만 심사숙고했던 것이다. 네모난 방들과 다르게 길고 넓은 내 방(베란다방)만의 유니크함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 내심 아쉽기까지 했다. 영하로 떨어진 지금 생각해 보면 어우 베란다 꽤 추웠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의 추억만큼은 더없이 따뜻하다. 직장에서 사람에 치여 다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이런 기억을 떠올리며 대화를 나눌 가족이 있다는 것, 돌아올 집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든다. 집, 인테리어, 가구, 소품들은 단순히 예뻐서, 구하기 어려워서, 비싸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나눈 시간과 마음들이 묻어있기에 말이 없어도 표정이 안 보여도 온기가 가득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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