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언니 편)

로망과 현실 사이

by 젤로


고등학교 친했던 무리 중 한 명이 가장 먼저 수시 대학 합격을 했다. 합격하자마자 친구는 학교 앞 베스킨라빈스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아직 입시결과가 나오지 않은 우리들은 친구가 일하는 시간에 베스킨라빈스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고민을 나눴다. 유니폼을 입고 아이스크림을 퍼는 친구가 부러웠고 아르바이트는 대학생의 특권 같았다. 이제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아르바이트의 로망을 실현해야겠다 마음먹었다. 해보고 싶은 게 참 많았다. 에버랜드, 영화관, 바리스타 등등..


나의 첫 알바는 강남역 이탈리안 레스토랑 서빙이었다. ‘일마레’라는 곳이었는데, 일마레는 좋아하던 영화 시월애에서 전지현이 편지를 주고받는 집 이름이었는데 이 이름이 맘에 들어 지원했다. IL MARE에서는 처음부터 서빙이나 주문을 받게 하진 않았다. 냅킨을 깔고 손님들의 물 잔이 비면 돌아다니며 물을 채워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빈 물 잔을 채우기 위해 옆으로 쓰윽 가 조용 주전자를 기울인다. 신경 안 쓰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주는 분들이 있었다. 그땐 그런 분들이 그렇게 매너 있어 보이고 하찮은 위치도 배려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레스토랑엔 주말이면 소개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친하게 왁자지껄 대화를 하는 테이블과는 다르게 경직되어 있고 질문과 답으로 대부분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소개팅하는 테이블의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를 보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면서 나도 저렇게 앉아서 친구들이랑 얘기하며 파스타를 먹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구석에 서서 보고 있는 게 힘들었다. 앉아서 먹고 싶다는 이유로 나는 몇 달 유지하지 못하고 첫 알바를 그만두었다. 지금도 괜스레 난 파스타를 먹으러 갈 때 몽실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두 번째 알바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뭐니 뭐니 해도 카페에서는 꼭 일해봐야겠다 생각했다. 일마레 레스토랑 옆에 있던 3층건물을 모두 쓰는 대형카페였다. 1층 손님맞이하는 카운터에는 매니저급의 언니가 있었고, 아르바이트생들은 각 층을 맡았다. 나는 보통 2층이나 3층을 맡았다. 메뉴 하나를 시키면 커피 한 번이 무료 리필이 가능했던 카페였는데 리필을 하지 않는 손님이 있을 땐 내가 대신 리필 신청을 해서 몰래 마셨다. 분위기 보다 리필을 내가 이미 쓱 마셨는데, 혹시 손님이 늦게라도 리필을 주문하면 어쩌나 가슴 졸이기도 했다. 이 외엔 여러 단기알바들을 했다. 일산 모터쇼에서 하루 자동차장난감 팔기, 여행비를 모으기 위해 이마트에서 3주 샴푸 매대 행사, 학부연구생 신청을 해서 방학 때 교수님 연구실을 나가며 월 15만 원 정도 되는 돈을 받았었다. 아르바이트를 길게 지속하진 못했지만 재밌는 경험들이다. 사실 내가 대학시절 내내 내가 끊이지 않고 메인으로 했던 돈벌이는 과외였다. 사실 과외를 하면서부터 최저시급 수준인 일반 알바는 시간당 효율이 나오지 않아 지속하고 싶은 의욕이 떨어졌다. 서서 힘들게 일해봤자 과외 한 번이면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과외에 시간투자를 많이 한 걸 후회한다. 생계에 대한 책임감이 약했던 시절에 하고 싶은 거 다양하게 도전을 해봤으면 좋았을 텐데. 경험, 커리어보다는 용돈벌이에 더 급급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데이트하고 가끔은 엄마에게도 선물을 줄 때 행복감이 컸다. 취업을 한 이후 나의 아르바이트생활도 끝이 났다. 취업을 하고 좋았던 건 더 이상 돈벌이를 위해 이곳저곳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 과외도 끊기면 다시 수업을 채워야 한다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고용불안에서 해방된 것이 좋았다.


벌써 세월이 흘러 나는 과장 5년 차, 곧 부장을 바라본다. 회사 생활의 끝도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과거의 이야기인 것 같았던 아르바이트가 다시 나에게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다시 파트타임 job을 구한다면 돈에 급급하지 않고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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