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기대만큼만

by 젤로

1. 언니 편

새벽 6시 15분 알람이 울린다. 반사적으로 눈을 떴는데 온몸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깨질 것만 같다. 겨우 몸을 일으키니 숨이 막히고 어지럽다.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토를 했다. 직장인에게 치명적인 이 병은 바로 숙취..

손끝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지만 샤워를 하고 천천히 옷을 입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출근을 하긴 한다.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부서원들이 괜찮냐며 쳐다보더니 몰골을 보더니 "안 괜찮군" 웃음을 보낸다. 컴퓨터를 켜고 앉아있는데 그룹장님이 조용히 숙취해소제를 갖다 주신다.


_ 괜찮니? 오늘 일찍 들어가라

_ 앗 감사합니다 ㅜㅜ


회식만 하면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업되서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어제는 유독 심했던 것 같다. 술이 꽤 들어가서는 웃고 오버하다가 그룹장님 앞에서 힘들다며 우는소리도 한 것 같다. 너무 창피하다. 기억이 명확하진 않지만 이런 말도 했던 것 같다.


_ 한강을 보면 예전엔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요즘엔 저기 빠지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하 저런 말을 왜 했을까 정말 후회스러운데, 사실 저런 마음이 가끔 들었던 적이 있다. 이런 자신에게 놀라서 우울증의 시작인가, 마음건강을 챙겨야겠다라고 생각했었다. 1월 첫 주를 수치스럽고 시끄러운 회식으로 오픈했다. 올해는 힘들겠지만 이런 작아지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아지는 마음이 어디서 시작된 걸까 내내 고민이었다. 육아휴직을 하며 미국에 있는 동안 이 마음을 많이 들여다보고 편안해지려 노력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작아지는 순간은 '기대보다 부족할 때'이다. 이상이 높은 건지 내가 정말 부족한 건지.. 오히려 학창시절보다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나이가 들면서 현실에 안주하는건지 자연스레 마음이 더 편해졌다. 25년 나는 첫째 출산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회사에서 좋은 고과를 받았다. 이게 뭐라고 매번 받던 노말 고과에서 벗어나 인정받는 것 같아 너무 기뻤다. 그래서 올해도 더 잘해서 한번 더 고과를 받겠다는 의지를 생겼다. (어쩔 수 없는 K직장인이다)


며칠 전 집에 있는데 남편이 회사전화를 받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미국 조지아주로 2년간 주재원 자리가 났는데 가겠냐는 제안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회라 둘이 쳐다보며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번엔 아니지 라는 결론을 냈다. 예전 같으면 미국 2년?!!! 무조건 가자! 했을 텐데 예상외로 내 커리어가 제일 마음에 걸렸다. 겨우 이렇게 자리 잡았는데 떠났다 오라고? 다시 돌아와서는 회사생활이 정말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년부터 보너스 호황이라는데 돈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좋은 선택을 한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최선을 다하고 나의 쓸모를 인정받는 게 지금의 나에겐 의미 있나 보다. 26년은 조금 더 한 발짝 기대에 다가가는 해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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