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는 30대가 되면 누구보다 단단하고 안정적이며 성숙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삶이란 주어지지 않은 게 아닐까 싶은 요즘이다. 내 묘비명에는 이렇게 쓰여있을 것만 같다.
'유약하고 불안하며 미숙한 존재로 평생을 살다 감.'
아빠가 추천한 책 '팡세'에서 파스칼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갈대지만 생각을 하는 갈대이다.' 이런 문장들을 보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연약함이 내 단점이 아닌 인간의 본성인 것 같아서.
30대 중반이 되어도 속상한 일이 생기면 엄마를 찾고,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눈물을 참으며 괜찮은 척 해도 엄마는 이미 안다.
"OO야 왜 울어. 니가 뭐가 부족해서 울어. 속상해할 필요 없어. 결정했으면 내려놓고 나오면 돼.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언니도 있는데 뭐가 문제야. 울지 마."
그때 갑자기 마음속에서 스위치가 켜지는 듯했다. 나에겐 엄청난 백이 있다. 무려 세명이나. 잔뜩 구겨졌던 난 조금 펴졌다.
어제는 촬영이 끝나고 감독님과 한잔했다. 단단해 보이는 감독님이 참 부럽다고, 요즘 난 내 유약함과 불안정함, 미숙함이 새삼스레 힘들다고, 삶은 대체 언제 괜찮아지는 거냐고, 이 와중에 김치짜글이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거냐고 물어봤다. 감독님은 별 고민을 다한다는 듯, 창작자는 본디 그래야 한다고, 안 그럼 감각을 잃은 거니 지금이 정상인 거라고 했다. 다행히 위로하려고 한 말 같지는 않았다.
구겨진 사람은 힘들더라도 스스로를 자꾸만 펴야 한다. 나의 진짜 모습이 구겨지지 않도록, 사람들이 망가뜨린 모습대로 살아가지 않도록, 당당하고 깨끗한 마음의 나를 잃지 않도록 말이다. 다행히도 난 굉장히 아름다운 부모님 밑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덕분에 철이 없긴 하지만 구김도 없고, 모난 곳도 없다. 다 먹은 빈 그릇을 설거지통에 넣어놓았을 뿐인데 "어머 우리 OO 너무 예쁘네, 잘했어. 고마워!"라고 말해주는 엄마와, 일식집에서 외식 중 간장종지를 엎은 나에게 "오우 드디어 엎었네! 이제 맘 편히 먹을 수 있겠다ㅎㅎ"라며 작은 실수에 연연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는 아빠 밑에서 크고 작은 칭찬을 잔뜩 받으며 컸기 때문이다. 그 작은 칭찬들은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만들었다. 초딩 때 왕따 당하던 어느 날엔 언니가 포스 쩌는 친구들을 데리고 우리 반으로 찾아왔다. 내가 3학년, 언니가 6학년이어서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였다. 점심시간에 갑자기 찾아와선 "얘가 너 동생이야?, " "응! 내 동생이야. 예쁘지!?" "응, 넘 예쁘다" 등등 쓰잘데기 없는 얘기들을 잔뜩 하고는 우르르 사라졌다.
얘 언니 있다. 언니 친구들도 장난 아니다. 얘 함부로 괴롭히지 마라.
는 일종의 경고였다. 너무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던 언니는 그 무엇도 묻지 않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내 특별함은 이토록 아름다운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의 사랑과 배려 안에서 자라나 독해지고 싶어도 독해지지 못하는 유약 하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마음이 아닌가 싶다. 언젠간 이 유약함과 철없음이 특별함으로 빛날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