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 가지 시선
돌아보면 나의 삶에는
대한민국이 지나온 과정이 새겨져 있는 것 같다.
전쟁의 폐허 속에 끼니조차 해결하기 버거운 삶을 살고 있던 1950년대, 대한민국의 국가 경제순위는 전 세계 국가 중 154위였다. 지금 우리나라에 외인노동자로 돈 벌러 오는 방글라데시 보다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 한 사람이 하루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평균 소득이 2.8달러였다. 가장이 하루 4천 원 정도를 벌어 4-5명 정도의 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던 시기였다. 각 가정마다 아이들도 많아서 영유아들은 우유는 구경도 하기 어려웠고 쌀을 끓여 미음을 만들어 먹이며 이유식을 대신하던 시기였다.
초등학교는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2부제 수업을 하는 곳도 많았다. 도시에서 조금만 떨어진 곳의 초등학생들은 산고개 넘어 한 시간씩 걸어서 학교를 오가는 일도 많았다. 급식은 당연히 없었다. 자정이 넘으면 전등을 꺼야 했고 집집마다 양초 준비는 필수였다. 기름을 사용하는 호롱도 있었다. 거리엔 쓰레기가 많았고 하천에 가정쓰레기를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화장실 아니 변소는 푸세식이어서 도시에서는 큰 통을 묻고 그 위에 널빤지를 세로로 놓아 변을 보고 모이면 돈을 주고 퍼가게 했다. 공중화장실은 더 열악했다. 악취, 널브러진 휴지들, 여기저기에 가득 한 저급한 낙서들까지.
학교나 군부대에서는 폭력 구타 등 비인격적이고 불법적인 일이 흔히 일어나도 그저 몸으로 감수하는 게 일상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25% 정도만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시기였으니 스무 살 넘으면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노동하러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환경에서 보낸 청소년기는 매일매일 고뇌의 연속이었다.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주변과 사회 속에서,
_나는 누구인가?
_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_나는 사회에 대해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또 얼마나 넓고 깊게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자신과 주변을 이해하고 있을까?
당시 나이에 맞지 않게 늘 심각한 나의 모습에 가까운 사람들이나 식구들은 내가 혹 일을 저지르는 건 아닐지 걱정하는 수준이었다. 답도 없이 오래 지속된 고뇌의 돌파구는 책 읽기였다. 특히 소설은 작품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게 하였다. 작품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동서양의 시대와 환경을 마주하고 그들의 갈등과 결말을 작품마다 보며 간접경험의 폭을 넓혀 갔다.
그러니까 '나의 책 읽기'는 재미나 취미가 아닌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경험하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통로였다.
자신을 모르고 막연히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던 것에서 나아가
이제 글 읽기를 통해 사회를 알자, 시대를 경험하자, 사람을 이해하자, 인간관계와 갈등을 간접적으로 체득하고 당시의 문화도 느껴보자로 방향을 바꾸었다. 소설을 비롯한 많은 분야의 책을 통해 간접경험한 내용들은 어렴풋이 삶의 큰 기준으로 정리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도 그리고 나이가 든 지금도 큰 틀에서의 기준은 변함이 없다.
시간은 흘러 1990년대 2000년대로 넘어오며 대한민국도 엄청나게 바뀌었다.
경제 수준도 높아지고 거리도 깨끗해지고 인권도 많이 생각하는 나라가 되고 있었다.
국가의 지도자와 기업운영자들이 앞을 보고 혁신하고 달려온 결과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나고 있었다. 무상 교육도 하고 급식도 하며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사람답게 사는 환경을 생각하는 시대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소득이 높아지고 국가 예산도 늘어나면서 교육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진행되었다. 문체부는 열악한 공공 환경을 바꾸기 위해 문화로 아름다운 학교 만들기 사업을 시행하였다. 일단 응모를 해서 선정이 되면 예산을 받아 시범 사업을 진행하는 형태였다. 당시 나의 학교는 화장실 개선사업에 선정되어 직원들이 중지를 모아
공사를 진행하였다. 그동안 틈만 나면 다녔던 국립현대미술관, 럭셔리 백화점 그리고 이름난 호텔의 화장실을 모델로 그리고 사진을 찍어 사업자에게 제시하였다. 열린 공간으로서의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밖에서 훤히 보이도록 통유리로 벽을 만들고 손 씻는 곳도 성장을 고려해서 높이를 세 가지로 달리 배치하였다. 물론 안에 미술작품도 걸었다. 지하 200미터에서 끌어올린 물로 정수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화장실에서 물을 마실 수 있게 하였다.
유리 벽 유리 출입문시공은 반대도 있었다. 안전 문제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나의 일관된 생각은 문화가 사람의 행동도 변화시킬 거라는 것이었다. 5성급 호텔처럼 고급스러운 환경에 있으면 학생들의 행동에도 품위가 생길 것이라는 기본 생각이었다. 담배를 몰래 피우고 폭력을 행사하는 으슥한 공간이 아니고 투명하게 열린 공간에서 물을 마시고 쉴 수도 있는 휴게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공사 완료 후 학생들에게서도 관련 기관들에서도 긍정적 반응이 쏟아졌다. 광화문 문체부 청사에서 사업시행에 대한 브리핑을 하였다.
"고급스러운 문화 환경이 있어야 생활하는 학생들도 저절로 그에 걸맞은 행동이 몸에 배게 될 거라는 믿음으로 사업을 진행하였다. " 는 취지로 의견을 말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중파 TV방송국에서 취재요청이 왔고 오전 내내 촬영한 내용이 10분가량 분량으로 방송이 나갔다. 두 달 정도 지난 시점에서 문체부에서 전화가 왔다. 문화로 아름다운 학교 만들기 심포지엄이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리는데 거기에 발제자로 나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의 발표 요지는 우리나라의 발전과 화장실 시설의 변화를 예로 들며 "문화는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예산을 투입해서 학교와 사회의 화장실을 바꾸는 문화사업은 우리나라 국격을 높이는 일이며 폭력 등 사회적 비용을 줄여주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요즘 유튜브에서 외국인 방문자들이 우리나라 공중화장실을 극찬하는 있는데 30년 40년 전 모습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시대도 바뀌고 사회도 변화한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삶에 대한 나의 기본 생각이다.
1. 아래를 보자.
더 낮은 데를 보자. 더 힘든 일과 마주할지도 모르지만 절망하지 말자. 더 낮은 곳에서라도 감사하자.
1. 옆을 보자.
가슴으로 보자. 현실을 보고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자.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자.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귀하게 생각하자.
1. 위를 보자.
하늘의 뜻이 있을까? 행복한 결과에도 자만하지 말고 힘든 상황에서도 눈물 흘리지 말고 더 먼 곳.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고개를 숙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