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으로 본 세상_동생 편

by 젤로


지금 봐도 아름답지 않은가.


이 감성 그대로 애틋한 멜로영화 아닐까 하는 궁금증만 가진 채 이 영화를 봤다. 영화가 끝나자 가슴이 먹먹해져가눌 길이 없었다. 어렸을 때라 더 그랬다. 차라리 슬퍼서 엉엉 울면 속이라도 후련했을 텐데 먹먹함이라는 감정은 내 안에서 어떻게 다뤄야 할 감정인지 알지 못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영상미는 왜 그렇게 아름다운지.. 이때 처음으로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확히는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 삿포로에 가고 싶었다. 설국을 보고 싶었고, 영화 속 장면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렇게 몇 년이 훌쩍 지나,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회사생활 3년 차를 지나던 어느 날 과장님이 내게 물었다.


"OO 씨는 휴가 안 가? 여름에도 안 가고 가을에도 안 가네"


쌀쌀한 기운이 감돌던 11월 중순이었다. 무더운 여름, 하나 둘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우와 이렇게 더운데 다들 어디를 가는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집순이에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더운 여름엔 에어컨 빵빵 나오는 회사가 최고지'라는 마인드였다. 하지만 날이 쌀쌀해지고 겨울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잠들어 있던 마음이 눈을 떴다.


겨울이 오고 있어. 삿포로에 가야 해.


며칠 동안 삿포로 오타루에 대해 알아봤고, 실시간으로 비행기표를 검색했다. 겨울 삿포로행 비행기는 꽤 비쌌다. 원 없이 설국을 볼 수 있는 한겨울이 살짝 지난 2월 말 삿포로행 비행기티켓을 예매했다.


처음 마주한 일본, 삿포로 오타루는 영화처럼 아름다웠다. 도착한 첫날 내리던 진눈깨비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도, 작게 늘어선 선술집도.. 모든 게 러브레터였다.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일본 특유의 감성이 신기했는데 와서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고즈넉하고 어쩐지 아련한 감성이 거리마다 녹아있었다. 일본은 일본 특유의 감성을 짙게 간직한 나라였다. 특히 삿포로 오타루는 더 그랬다. 첫날 빼놓고는 일부러 한참을 가야 하는 시골에 숙소를 잡았는데 그것 또한 신의 한 수였다. 이러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행방불명이 될 것만 같았다.(좋은 뜻) 너무 행복해서 맛집 같은 건 찾아볼 생각조차 못했다. 걸어 다니다 마음 가는 곳에 들어갔다. 영화에 나올법한 선술집에도,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온천 같은 곳에도, 주방장으로 미스터초밥왕이 나올 것 음식점에도. 음식은 어쩜 그렇게 맛있는지. 사람들도 영어는 잘 못했지만 정말 친절했다. 우니가 다 떨어졌다는 식당에서 나와 무작정 걷다 발견한 허름한 시장에서 우니를 사 와 숙소에서 먹기도 했다. 마지막에 묶었던 오래된 료칸이 정점이었는데, 내가 간 시기가 눈꽃축제가 다 끝나고, 사람이 빠질 시기였어서 그런지 노천탕에 아무도 없었다. 개인 료칸이 있는 객실은 하루 70만 원 정도 했기에 아쉽지만 포기했었는데, 이건 개인 료칸이나 다름없었다. 찬 바람과 달빛이 들어오는 따뜻한 유황온천탕 안은 정말이지 황홀했다. 이것만도 행복한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분위기 탓이었을까 사르르 사르르 눈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혼자 떠난 첫 여행이자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동생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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