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십 대는 안녕하신가요
죽음이 들이닥쳤어
정확한 나이와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열셋 쯤이었던 거 같다. 그때 저녁에 축구를 했는지 야구를 했는지 어떤 운동을 해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밤은 깊었고,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은 각자의 방에서 불을 끄고 잠을 자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막 감을 때, 그러니까 머리카락에 샴푸를 잔뜩 묻혀서 눈을 뜰 수가 없었을 때 그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죽음이었다! 이름이 죽음이 아니라, 진짜 죽음 그 자체였다. 그의 얼굴색은 새벽녘처럼 푸르스름했고, 이목구비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마치 텅 빈 도화지 같았다고나 할까. 언젠가 <제7의 봉인>이라는 영화에서 본 죽음과는 사뭇 달랐다. 그 영화에서도 죽음이라는 인간이 걸어 나오는데, 거기 나온 죽음보다 훨씬 섬뜩했고 대단히 기괴했다. 아무튼 난 그 죽음이라는 인간을 보고 제발 살라달라며 고함을 질렀다. 그 고함을 듣고 가족들이 일제히 방 밖으로 나와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그 물음을 듣자마자 죽음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양 사라졌었다.
이게 내가 조우한 최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아마 십 대에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죽음을 만나봤으리라. 그게 나처럼 인간의 형태로 아주 구체적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관념의 형태로 다가와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을 수도 있다. 그 형태가 무엇이든, 죽음은 갑작스레 내 방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이십 대가 되면서 그 죽음이라는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삶이 고통스러워서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음에도, 죽음은 자신의 체취조차도 남기지 않았다. 분명 나이가 먹어 십 대에 비해 죽음이라는 단어를 더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했는데도 말이다. 확실히 이십 대의 나는 십 대의 나보다 죽음과 어색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
죽음이란 무엇인가. 적어도 이십 대에게 말이다. 아마 그건 꽤 볼품없는 삶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죽고 싶다는 말을 매 순간 토해내는 것도, 그 볼품없는 삶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