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판점에 가보면 사케 중에는 늘 최고 비싼 술이 닷사이 23 소노사키에(獺祭23 その先へ)다. 술이 없어서 못 구한다기보다 항상 쇼케이스에 자물쇠로 잠겨진 채 판매되는 경우가 많은 아주 고급스럽고 비싼 사케의 대명사다.
그런 사케 진열대에 어느 날부터인가 족보는 모르겠으나 미친 듯이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는 라인업이 있어서 금일 소개해보기로 한다. 사케 한 병에 주판점에서 3만 엔이 넘어가면 도대체 어떤 술이며, 어떤 맛인지 너무 궁금해진다.
그 주인공은 바로 사케헌드레드(SAKE HUNDRED)다.
뱍코, 뱍코 베츠아츠라에, 시린 - 사케헌드레드 홈페이지 인용
일반적인 사케는 양조장이 어디며, 역사가 얼마만큼 되었으며 몇 대째의 당주가 그 가업을 이어왔다든지 하는 스토리가 있기 마련인데, 이 사케는 일반적인 랭킹 사이트에서도 보이지가 않고, 양조장이 특정화되어 있지도 않으며, 고급스럽기는 한데 마케팅 요소가 가미된 이벤트적인 사케인 듯하기도 하고 너무 궁금해서 특별히 다뤄보기로 한다.
사케 헌드레드는 최고의 글로벌 사케 브랜드를 지향하며 'SAKE HUNDRED'로 리브랜딩 해서 전개하는 기획성 브랜드다.
사케에 특화된 사업을 전개하는 '주식회사 CLEAR'가 그 주체인데 2018년에 창업을 하였고, 메인 콘셉트는 '100년을 자랑할 수 있는 한 병을'(100年誇れる1本を)이다.
사케에 있어서의 글로벌한 럭셔리를 콘셉트로 로고마크, 라벨디자인, 브랜드사이트, 상품 라인업, 판매 가격 등을 최고 수준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을 채우고, 인생을 색칠한다' (心を満たし、人生を彩る)는 것을 테마로 하고 있다.
사케의 매력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일체의 타협 없이 사케가 가지는 유일한 가치와 무한한 가능성을 계속 믿고 전개한다는 마음가짐이 예사롭지 않다.
재미난 것은 일본 내 가장 큰 사케 관련 사이트가 사케타임과 사케노와인데, 그 사케타임을 운영하는 주체도 바로 이 회사다. 사케에 대해선 최고의 정보와 노하우, 빅데이터를 가지고 있어서 최고의 사케를 만드는 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었으리라 짐작한다.
사케헌드레드 로고 - 사케헌드레드 홈페이지 인용
사케 헌드레드의 로고는 동판에 H 자를 조각화한 모양으로 세련됨과 모던한 디자인에 제조업의 정신(モノづくりの精神)을 담았다.
그리고 라벨은 사케의 원료인 쌀의 정미된 모양을 모티브로 일본에서 상서로운 문양으로 여겨진 마름모를 채택했으며, 색깔은 쌀의 색이자 청주의 투명감을 강조하는 흰색으로 하며 세련된 품격과 일본의 미의식을 담았다.
그리고 국내보다는 해외를 더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는데, 가장 큰 시장을 미국으로 타깃을 잡았으며, 홍콩, 중국, 싱가포르, 두바이 등에 진출을 꾀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케헌드레드는 품절 - 사케헌드레드 홈페이지 인용
기획성이며리브랜드화시키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사케헌드레드는 일반적인 사케 양조장의 사장이 쿠라모토(蔵元)라는 칭호인데 반해, 사케헌드레드는 사장을 브랜드오너라는 표현을 쓴다. 직접 술을 양조한 것이 아니기에 그런 것 같다.
이 브랜드오너는 이코마 류지(生駒 龍史)상인데 사케 산업의 상식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가치 제공을 계속해 왔다. 그래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는 홈페이지 상에 나와있는 9개의라인업을 따라가 보자. 가격은 일본의 VAT포함 가격으로 홈페이지 상에 나와있는 정가다.
* 뱍코 (百光, びゃっこう, BYAKKO )
/ ¥38,500 Crystalline Sake , 2020
뱍코는 사케헌드레드의 플래그쉽 사케다. 진정한 사케의 최고봉이라 자신한다.
홈페이지에도 오픈되지 않은 정보인데 기획 브랜드이다 보니, 실제 양조장이 당연히 존재할 것이고,
그 양조장의 기존 브랜드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쫓아서 파악해 보는 것도 상당한 흥미요소다.
뱍코는 야마가타현의 타테노카와를 생산하는타테노카와 주조에서 만드는 브랜드다. 타테노카와도 쥰마이 다이긴죠만 만드는 아주 훌륭한 양조장인데 작심하고 만들었으니 그 맛이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뱍코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오리지널과 주문생산이라는 뜻인 베츠아츠라에 (別誂, BESPOKE)가 있다. 상기 금액정보인 38,500엔은 오리지널 금액이고, 베츠아츠라에는27,500엔이다.
뱍코 - 사케헌드레드 홈페이지 인용
뱍코 베츠아츠라에 - 사케헌드레드 홈페이지 인용
* 아마이로 (天彩, あまいろ, AMAIRO)
/ ¥15,400 Ambrosial Sake , 2020
아마이로는 한마디로 농후한 디저트 사케다. 물로 빚어내는 사케가 아니라 사케로 사케를 빚어내는 키죠슈(귀양주, 貴醸酒)다. 벌꿀이 연상될 정도로 농후한 단맛이 나오는 고급 사케에 속한다.
나라현의 하나토모에를 만들어내는 미요시노 양조에서 만들어 낸다.
아마이로 - 사케헌드레드 홈페이지 인용
* 시린 (思凛, しりん, SHIRIN)
/ ¥41,800 Premier Oaked Sake , 2020
시린은 정미비율 18%로 맑디 맑은 맛으로 완성된 원주를 재패니즈 오크통(미즈나라)에 저장한 사케다. 일단 꿈의 술들인 쿠보타 만쥬가 35%, 쿠보타 센신이 28%, 닷사이 23이 23%인 점을 보면 18%의 정미비율은 그 스펙만으로도 정말 꿈의 술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증류주가 아닌 양조주인 사케를 오크통에 숙성하는 발상자체가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겠다.
양조장은 야마가타현의 와가우지(吾有事)를 양조하는 오우지만(奥羽自慢)이다.
시린 - 사케헌드레드 홈페이지 인용
* 겐가이 (現外, げんがい, GENGAI)
/ ¥165,000 Storied Sake , 1995
1995년의 한신 대지진을 이겨낸 29년 숙성의 빈티지 사케로 그 긴 세월 속에서 단맛·신맛·쓴맛·감칠맛이 복잡하게 뒤얽히면서 고차원으로 조화를 이뤄낸 사케다.
2024년 1월 17일 기점으로 정확히 29주년이 되는 날에 120병만 한정판으로 출시가 되었다. 지진을 맞고 모든 것이 무너진 양조장에 아직 주조가 진행 중이던 탱크가 그대로 자연 숙성이 되어버렸고 그 술이 겐가이로 부활한 것이다.
2019년에 24년 숙성으로 10병을 한정판으로 출시가 된 적이 있었는데, 12시간 만에 매진을 기록했다. 5년 전에 비해 75%가 인상된 가격으로 출시가 되었다.
양조장은 고베의 나다에 위치한 사와노츠루다.
겐가이 - 사케헌드레드 홈페이지 인용
* 하쿠소 (白奏, はくそう, HAKUSO)
/ ¥30,800 Gossamer Sake, 2022
백금의 색상에 병내 2차 발효에 의한 미세한 미발포 스파클링 와인이다.
6도의 온도로 해서 마실 것을 권하며, 다른 스파클링도 마찬가지겠지만, 따자마자 바로 마셔야 한다.
복잡한 요리보다 과일 같은 심플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18%로 정미한 후쿠오카산 야마다니시키가 주원료이며, 쿠마모토 효모를 쓴다. 양조장은 쿠마모토의 '오구니구라 잇봉지메'(小国蔵 一本〆)를 양조하는 카와즈 주조다. 솔직히 외부에 비치는 양조장의 브랜드파워는 많이 떨어지는데 사케헌드레드가 손을 잡았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파워나 비결이 있을 거라 본다.
하쿠소 - 사케헌드레드 홈페이지 인용
* 신세이 (深星, しんせい, SHINSEI)
/ ¥35,200 Celestial Sake, 2021
* 신세이도 하쿠소와 마찬가지로 스파클링 사케다. 단 정미비율과 가격을 비교해 보면 신세이 또는 이 술을 양조하는 야마나시 양조의 파워를 느낄 수 있다. 주조호적미의 왕이라는 야마다니시키를 무려 18%로 깎아서 만든 하쿠소보다 들어보지도 못한 유메산스이라는 주조호적미를 그것도 겨우 67%로 깎아서 만든 신세이가 더 비싸기 때문이다. 이 신세이를 만들어 내는 야마나시 양조는 1750년에 창업하여 시치켄이라는 브랜드로 야마나시현의 1위일뿐더러 전국적으로도 상당히 유명하다. 야마나시현은 비교적 그렇게 뛰어난 사케가 많이 있는 동네가 아닌지라 단연 시치켄이 군계일학이다. 하쿠소와 마찬가지로 2차 발효를 하며, 물이 뛰어나 생수공장이 몰린 하쿠슈의 물로 빚어낸다.
신세이 - 사케헌드레드 홈페이지 인용
* 쿄카 (響花, きょうか, KYOUKA)
/ ¥34,100 Harmonious Sake, 2022
일본 오크통(미즈나라)에서 숙성된 블렌딩의 완성형이다. 시린과 텐우의 블렌딩이며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사케들의 조합으로 새로운 개성을 이끌어냈다.
블렌딩 비율은 '텐우'가 86%, '시린'이 14%이다.
외관은 빛나는 크리스털 빛이고 향은 서양배나 비파와 같은 과일향이 난다. 거기에 오크통의 스모키 한 향이 그윽하게 배어 동양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음용 권장 온도는 조금 차가운 느낌의 10~12도 정도이고, 페어링은 도미나 가리비 같은 어패류 종류가 좋다. 어패류의 감칠맛과 쿄카의 감칠맛이 조화를 이뤄낸다.
시린과 텐우를 양조하는 오우지만(奥羽自慢)에서 빚어낸다.
쿄카 - 사케헌드레드 홈페이지 인용
* 라이히(礼比, らいひ, RAIHI)
/ ¥165,000 Cherished Sake, 2010
얼음창고에서 빙온 13년 숙성된 사케로 이 중 3년은 프렌치 오크통에서 숙성되었다. 비할 데가 없는 빈티지 사케다. 2010년에 병입 되어 13년이 지난 2023년에 출시되었다. 글라스 잔을돌려서 공기에 노출시키면, 버번을 연상시키는 바닐라와 버터의 달콤한향이 들어온다. 음용권장 온도는 6~8도다. 양조 중에 물이 아닌 사케로 사케를 빚는 키죠슈(貴醸酒, 귀양주) 방식으로 양조해서 농밀하고 단맛이 우러난다.
양조장은 미즈바쇼(水芭蕉)를 빚어내는 군마현의 나가이 주조(永井酒造)다.
라이히 - 사케헌드레드 홈페이지 인용
* 텐우 (天雨, てんう, TEN’U)
/ 27,500円
지금은 판매중지된 품절 라인업이다.
야마가타현의 주조호적미인 유키메가미(雪女神)를 18%까지 정미하여, 열처리하지 않은 나마자케였다.
IWC 2022에서 골드메달까지 딴 최고의 사케였으나, 2022년 10월로 판매가 중지되었다. 텐우도 야마가타현의 와가우지(吾有事)를 양조하는 오우지만(奥羽自慢)이다.
텐우 - 사케헌드레드 홈페이지 인용
사케 헌드레드가 가장 현재 공들이고 있는 미국시장에서는 거의 그랑크뤼급 와인 레벨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 세계 최고급 프라이빗 클럽인 'The Chicago Club'에서 공식으로 제공되었고, 파리 에펠탑 인근의 셀럽들 행사장에 출품하는 등 전 세계 부유층을 상대로 최고급 사케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일본 내 가장 비싼 쇼핑지역인 긴자 내 백화점에서도 사케헌드레드는 빈병뿐이고 거의 장식에 가까울 정도로 귀하다. 주문이라도 하려 하면 최소 2주에서 한 달은 걸린다는 답을 듣게 되고, 그 마저도 단 1병에 한한다고 할 정도로 극강으로 귀한 사케다.
이 한 병을 손에 넣는다는 건 가격도 가격이지만, 정말로 운이 좋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웃돈을 주고라도 살 수 있는 사케가 아닌 것이다. 사케헌드레드로 부유층이 되는 사치를 누려보는 것이 사케마니아들의 작은 바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