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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사마 jemisama Oct 05. 2024

히라가나다라 1 - 쿠사마 야요이

세계적인 천재 아티스트는 정신질환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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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케를 중심으로 일본을 풀어가지만 문화에도 관심이 많다보니 한번씩 사케와 전혀 다른 주제로 글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접점을 중심으로 써나가면서 민간교류에도 살짝 기여하고픈 마음도 있어서 별도의 매거진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어의 기본인 히라가나와 한국어의 기본인 가나다라를 합쳐서 '히라가나다라' 라고 작명을 해봤습니다. 이 매거진 역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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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을 넘어서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이며 전위예술가, 시인, 소설가였던 쿠사마 야요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쿠사마 야요이 -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 홈페이지 인용


쿠사마 야요이는 2014년 영국 미술전문지 아트뉴스페이퍼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티스트'로 선정하기도 했고, 2016년에는 타임지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도 선정되기도 하여 일본에서 문화훈장까지 받았습니다.


아시아 5곳, 중남미 6곳에 개인전을 순회개최한 2014년에만 200만 명 이상이 관람을 하였고 브라질 상파울루에서는 36시간이나 대기하는 줄이 생겨 24시간 체제로 일 개관까지 하게 만들었던 그녀의 인기는 미술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명화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살아있는 현역 아티스트에 이렇게까지 열광적인 것은 정말로 이례적인 일로 각 분야에서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옥션이 시작가 54억 원에 선보인 쿠사마 야요이의 1981년작 '호박' /사진제공=서울옥션



쿠사마의 작품은 포스트 모더니즘과 미니멀리즘의 특징을 보이면서도 완전히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했습니다. 그녀의 설치 작품인 '무한의 거울 사이' 시리즈는 전 세계 많은 미술전에서 주요 전시 작품이 되어 대중들에게 강한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은 시각적인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의 심리에도 깊이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이 가지는 예술적 가치가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음과 동시에 경매 시장에서도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추정가 13억~20억 원에 출품된 쿠사마 야요이의 1989년작 'Dots Universe'. /사진제공=서울옥션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들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로는 다음의 3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심리적 탐구

쿠사마 야요이는 자신의 정신적인 체험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개인적인 고뇌와 두려움 그리고 희망을 그려내며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물방울이나 그물 등의 반복되는 모티브는 무한이나 자아의 확산을 상징하고 있어 깊은 사색을 하게 하기도 합니다.


둘째. 혁신적인 표현방법

그녀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설치 작품이 특히 유명한데 거울이나 빛, 색채를 사용하여 창조하는 공간은 보는 사람을 완전히 다른 감각의 세계로 이끕니다. 이 작품들은 예술과 관객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직접적인 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의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문화적 그리고 시장에서의 영향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은 미술관이나 갤러리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대규모 전시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예술은 문화적인 아이콘으로도 연결이 되어 패션, 디자인,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또한 시장에서도 작품 가치가 매우 높고 경매에서의 기록적인 낙찰 가격이 그녀의 높은 평가를 말해줍니다.


케이옥션 경매에 추정가 1억 2,000만~1억 5,000만 원에 나온 쿠사마 야요이의 '붉은 호박' /사진제공=케이옥션


쿠사마 야요이는 1929년 일본의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나가노현 마츠모토시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의 통영에서 박경리, 김춘수, 윤이상, 유치진, 전혁림 등의 시인, 작가, 공예가, 칠예가 등 예술인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가 그 뛰어난 자연경관 덕분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곳 마츠모토는 국보로 지정된 마츠모토성을 비롯하여 이름자체가 아름다운 들이라는 뜻의 우츠쿠시가하라, 에어컨 브랜드로까지 채택된 키리가미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명승지인 카미코치를 중심으로 한 국립공원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 예술인이 나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의 천혜의 환경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시계 하면 스위스와 일본인데 일본의 시계 대명사 세이코 공장이 마츠모토 바로 남쪽의 스와시에 있습니다. 즉 정밀공업을 줄인 말인 정공(精工)이 일본어로 하면 세이코인 만큼 이 지역의 뛰어난 손재주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쿠사마 야요이가 출생한 마츠모토의 마츠모토성


다만 집안이 부유했지만 아버지의 외도와 어머니의 폭력이 점철된 집안사정에다,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침공하는 등 전쟁이 한창이던 그 시기에 낙하산 재봉 일을 하며 전쟁에도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집 안팎으로 상당히 어수선한 탓인지 어릴 때부터 조현병을 앓으며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며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증상을 주위로부터 보호받기는커녕 어머니로부터 매를 맞는 등 정신적,  육체적인 상처로 인해 조현병은 더욱 심화되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물방울로 보이고 개나 꽃이 사람의 언어로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극단적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공포의 대상들을 그림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필사적으로 그림을 그려낼 때에만 그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하며,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적인 모티브인 물방울은 그녀에게는 강박이자 극복의 대상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녀의 왕성한 작업활동은 이 강박과 극복에 기인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주쿠와 마츠모토를 운행하는 고속버스에 그려진 쿠사마 작품 - 마츠모토시 미술관 인용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28세인 1957년에 뉴욕으로 건너간 당시에는 추상표현주의의 회화가 대세였습니다. 이때 그녀가 그린 10미터 길이의 그물처럼 이어진 물방울 그림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전위적인 작품이라고 극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 대 후반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쿠사마의 예술의 재평가가 진행되는데 방전체에 물방울 모양의 대형풍선을 가득 채운다거나 야외에 호박 등의 퍼블릭 아트도 많이 제작되면서 물방울은 곧 쿠사마 야요이의 아이콘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1977년에 일본으로 돌아온 그녀는 48세부터 지금까지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작품활동을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있던 쿠사마 야요이 - 아트인사이트 인용


쿠사마 야요이는 나도 물방울, 너도 물방울, 모든 생명과 지구마저도 모두 물방울이라며 각자가 유일무이한 존재로 공존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녀의 물방울은 곧 과거의 강박과 극복의 대상에서 표현이라는 무기로 그리고 사랑의 메시지, 영원한 영혼으로 계속 발신되고 있으며  '나는 나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유년 시절에 시작되었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예술을 추구할 뿐이다.'라는 말은 가슴 아프면서도 본인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 또한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술적인 접근에 이어서 이제는 시장적인 접근을 해보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미술작품의 재테크를 아트테크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원하는 미술작품을 소장하고 렌털 및 전시 등을 통해 부가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으며 향후 작품가격이 올랐을 때 매각 차익을 얻어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경주 플레이스 씨에서 개최되었던 무라카미 타카시 작품전 포스터


세금에 대한 부담이 없고 수익성이 비교적 높으며 매번 시장변동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아주 큰 장점이며 일반 대중들은 좋아하던 취향의 미술품을 소장하게 되고, 이를 통해 부가적인 수익을 기대함과 동시에 중견 유망 작가들에게는 새로운 창작 활동의 기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불황기의 새로운 시장의 확대와 재테크의 수단으로써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2022년 한국 경매사 10곳의 낙찰가 총액을 보면 약 2천360억에 이르며 쿠사마의 작품은 2022년 한 해 동안 약 276억 7천436만 원어치가 팔려서 작가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개별 작품에 있어서도 1위가 서울옥션에 출품된 '호박' 그림이 기록한 64억 2천만 원이었습니다. 그리고 2022년 최고 낙찰가 1위부터 6위까지를 쿠사마의 작품이 휩쓸었습니다.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76억 원에 낙찰된 쿠사마 야요이의 초록 '호박' / 사진: 서울옥션 제공

히스콕스 아티스트 Top 100 리포트에 따르면 2023년에도 경매 낙찰총액이 가장 높은 작가 역시 쿠사마 야요이였습니다. 쿠사마 야요이의 낙찰 총액은 약 1100억 원이며 최고가 작품은 크리스티 홍콩 11월 경매에서 약 136억 원에 낙찰된 ‘A Flower’입니다.  


이처럼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은 초기 작품일수록 가격이 더 비싸고 현재 나오고 있는 작품 또한 꾸준한 판매와 상승세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예술작품이라는 개념을 뛰어넘어 소장 가치가 높은 재테크의 일환으로서의 역할 또한 톡톡히 해내고 있는 중입니다.


크리스티 홍콩 11월 경매에서 약 136억원에 낙찰된 '꽃' (A FLOWER). - 출처 크리스티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은 해외에서는 1994년 일본 나오시마에 설치된 대형 '노란 호박'과 2021년 루이뷔통과의 협업, 뉴욕 보태니컬 가든에서 열린 야외 조각전 등으로 상설 또는 임시 전시회로 전 세계적으로 만날 수가 있고 한국에서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호박), 제주 본태미술관 (무한거울의 방 - 영혼의 광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 (호박)에서 만날 수가 있습니다.  




작가의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이해하고 후원하며 작품을 소장하는 아트테크는 작가와 대중의 재테크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트테크를 진행하기 전에 작품의 가격, 판매 현황 등 모든 정보가 수치화된 객관적 정보로 공개화되어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위작과 관련된 이슈입니다.


카가와현 나오시마의 노란 호박


최근 들어 위작은 그 수법이 대단히 교묘하고 입체적이어서 업계 전문가까지도 속을 정도입니다.

쿠사마 야요이 작품의 위작을 제조하는 업체들은 시중에서 특히 잘 팔리는 중간 크기 호박 조각과 컬렉터블 아이템 등을 모조해 이커머스나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특히 SNS를 통해 외국 작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송금하기 전에 이중, 삼중으로 체크해야 합니다. 작품 거래 시에는 보증서와 작품의 경로를 철저히 살펴야 하며, 작가의 소속갤러리나 메이저 옥션회사처럼 믿을 수 있는 거래처를 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중국 장사시에 전시된 쿠사마 야요이의 위작 - YTN 인용


쿠사마 야요이의 위작으로 중국 장사시에서 전시회를 버젓이 가진 단체가 있기도 했으며 이곳 외에도 충칭, 청도, 천진, 광저우 등에서 비슷한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아주 큰 대형 작가라 해서 만나기가 마냥 어렵지만도 않은 듯합니다.

쿠사마 야요이의 여러 개별 작품들이 전시된 곳이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많이 산재되어 있습니다만 가장 핵심적인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은 한인들이 많이 사는 신주쿠에서 지하철 두 정거장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재미난 사실은 지금은 재건축으로 잠시 장소를 옮기긴 했지만 그녀가 거처로 쓰고 있는 정신병원이 바로 미술관 바로 앞에 있습니다.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 - 사진출처 河合 理恵

최근 한국인들이 많이 찾아가는 카가와현의 나오시마에도 쿠사마 야요이 작품 호박이 두 점이나 전시되어 있는 등 세계적인 거장이 의외로 우리와 가깝게 있다는 점이 또 다른 면에서 설레게 하는 듯합니다.


살아가기 각박해져 가고 있는 요즘일수록 예술적인 면에서도 경제적인 면에서도 놓쳐서는 안될 쿠사마 야요이를 주목해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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