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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인숙 Mar 27. 2016

우붓(Ubut)을 걷는다는 것

  

  우붓을 걷는다는 것



  뭔가 새롭게 시작된다는 건 가슴 뛰는 일이다.  인생을 뒤죽박죽으로 만들만한 사랑이라도, 불투명한 미래를 제시하는 어떤 불온한 일이라도,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흥분시킨다. 하지만 그런 행운이 몇번이나 우리 인생에손을 내밀어 줄지.....

  그러니 아주 소소하고 작은 일들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내는데 몰두한다. 더구나 계절의 변화도 없는 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살다보면 그 날이 저 날 같고 저 날이 또 오늘 같은 시간들이 지루하게 흐르기 마련이다. 하여 어떻게도 내 인생을 신선하게 만들 뭔가를 찾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기껏해야 새로 발간된 책을 인터넷에서 찾아 눈으로 훑어보거나 (해외배송은 늘 배보다 배꼽이 더 크므로 책을 맘대로 사 볼 수도 없다), 다행히 인도네시아에는 정말 많은 갤러리들이 있으니 그림을 보러 쏘다니거나, 하다못해 아주 특이한 문양의 장신구나 비치 원피스를 로컬 시장 한구석에서 싼 가격에 찾아내는 일, 혹은 전혀 맛본 적 없는 새로운 인도네시아 음식을 먹는 일들에 만족하는 것이다.




 

  계절이 있는 나라에 산다는 건 정말 어마어마한 행운이다.  18년이 넘도록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시간이 갈수록 더욱 절절하게 그리운 건 계절의 변화다. 그래도 나는 아주 느리게 걸으면서 살아야 하는 인도네시아를 사랑한다. 아니 사랑해야 한다. 앞으로 20년 쯤은 더 이 나라에 살아야 할 것 같아서다. 그 긴 세월을 내가 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고 어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아무튼....... 나는 인도네시아 어느 곳보다 발리의 우붓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고 너무 길게 왔다. 우붓은 위에서 열거한 그 소소한 새로움들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주 매력적으로 유혹한다. 오늘은 인도네시아를 걷는 첫 날이니, 내가 발리에 가면 꼭 치루는 간단 의식부터 열거하자. 지금부터 여행가이드 흉내를 내 보겠다.

 


발리의 어느 갤러리에서나 맛보는 웰컴쥬스- Selamat datang


 1. 베벡벵일에서 오리 고기를 먹자


  우붓에 도착하자 마자 내가 가장 먼저 찾는 식당은 Bebek bengil 이라는 오리 요리 전문점이다. 이름에서 알다시피 오리 고기가 가장 중요한 메뉴다.  우붓과 누사두아, 짐바란 등에 지점이 있다. 물론 자카르타에도 지점이 있긴 하다. 그러나 모름지기 전주비빔밥은 전주에서 먹어야 더 맛있는 법. 베벡벵일은 메가와티 전 대통령이 식사를 해서 더 유명해진 곳인데 아름다운 정원과 친절한 미소의 종업원들을 보는 순간, 내가 이 독특하고 묘한 매력으로 가득 차 있는 우붓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절감할 것이다. 바싹 튀긴 오리 고기 반 마리와 흰 밥(Nasi Putih), 그리고 약간의 야채(Sayuran)가 딸려 나온다. 3가지 종류의 삼벌 소스도 입맛을 자극하고 전혀 기름지지 않은 특유의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도시 생활에 지쳐 온 우리를 고소하게 유혹하는 듯 하다. 물론 시원한 빈땅(Bintang)맥주 (인도네시아의 대표 맥주다. Bintang은 별이라는 뜻이다. 내가 끔찍하게 사랑하는 맥주다) 한 잔도 곁들여야 한다.     

* Bebek Bengil;  Jl, Hanoman, padang tegal, Ubud, Bali.  

                 tel. 0361.975489. 977675




2. 우붓 시장을 돌자


 배도 부르겠다, 이제 우붓 거리를 쏘다닐 시간이다. 단연코 우붓에선 갤러리들을 돌아보는 일이 일순위지만, 그 이후엔 우붓 라야를 따라 걸으며 작은 디자이너 숍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유니크한 디자인의 장신구들과 발리가 아니라면 절대 구할 수 없는 멋진 문양의 원피스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길거리의 숍들에서 나는 당연히 눈요기만 한다. 진짜 쇼핑은 우붓 시장에서 즐기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숍들보다 몇 배는 저렴한 가격에 온갖 발리 특산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 물론 냉방 시설이 거의 없는 좁은 시장을 돌아다니려면 약간의 인내와 편한 운동화가 꼭 필요하다. 그리고 가격 흥정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치고 빠지는(?)밀당 실력도 좀 필요하다. 나는 이곳에서 얇고 시원한 발리 원피스와 밴딩 스타일의 배기팬츠를 10만 루피아 안팎에 각각 구입해서 발리에 있는 내내 입었다. 물론 원래 부른 가격에서  40% 이상을 깎았다. 그리고 나무에 알파벳을 조각해 만든 까만색 반지를 4만루피아에 사서 끼었는데, 불행히도 발리를 떠나는 날 손가락에 힘을 주다가 툭 부러지고 말았다...흑.

* Pasar Ubud; Jl, Ubud Raya  (우붓 왕궁 건너편)




3. 갤러리 투어를 마친 후에는 달콤한 폭립을 먹자


  다음에 발리의 갤러리들을 천천히 소개할 생각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네카 갤러리 맞은 편에 이부 누리가 운영하는 와룽(작은식당)이 있다. 우붓의 갤러리들을 차례대로 돌 때는 네카(Neka)갤러리를 오전이건 오후건 마지막 코스로 두는 것이 좋다. 왜냐 하면 갤러리 건너편에 있는 누리 와룽에서 폭립 바베큐를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덥고 비좁은 식당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뉴요커였던 남편 브라이언 (3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과 족자 출신의 부인 누리가 발리에서 만나 세운 식당이니 만큼 모든 음식들이 두 나라의 맛을 절묘하게 결합해 놓은 듯 하다. 손님들이 많아 바깥에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고, 같은 식탁에서 전혀 낯선 사람들과 바베큐 립을 뜯어야 하는일도 허다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즐거운 표정들이다. 주인장이 직접 만들었다는 달콤한 소스를 듬뿍 발라서 야자 껍질을 태운 불판 위에 구워 내놓는 폭립은 이 식당 최고의 인기 메뉴이다. 제법 큼직한 사이즈의 폭립 뿐 아니라 온갖 야채와 두툼한 패티를 끼운 햄버거도 일품이다. 살얼음이 살살 녹는 맥주 한 잔, 혹은 평소에 즐기지 않는 차가운 탄산 음료를 곁들여도 좋다. 한 잔쯤은 어떠랴 싶다. 그래도 건강이 염려된다면 좀 달다 싶긴 하지만 시원한 아이스 티 종류를 권한다.

* Nuri's Warung; Jl, Raya Sangginan,Kedewatan, Ubud, Bali.

                tel, 0361. 977547





4. 코코 수퍼마켓에서 발리 와인을 사자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다. 날도 어두워졌으니 우붓의 바에서 맥주 한 잔을 나누며 친구와 밀린 수다를 떨거나 낯선 외국인들과 친구가 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제법 비싼 돈을 치룬 리조트에서 잠만 자고 나온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 하여 발리 와인 몇 병을 사들고 리조트의 수영장에서 우붓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한다. 발리 와인은 솔직히 그다지 뛰어난 맛은 아니지만, 여행자들의 하룻밤을 유쾌하게 적셔줄 만은 하다. 특히 저렴한 가격이 매력적이다.(10만루피아-한국 돈 만 원 이하의 와인도 있다) 와인은 발리 어디서나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코코 수퍼마켓에서 구입했다. 슈퍼 안에 와인 숍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생각보다 발리 와인의 종류가 많아서 좀 놀랐다. 세 종류의 와인을 사들고 와서 마치 시음회를 하듯이 조심스럽게 마셨는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물론 맛이 아주 엉망인 것도 있었지만, 사람의 입맛은 제각각이니..) 중간 가격대의 와인 정도면 아주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코코 슈퍼마켓에서는  와인 뿐만 아니라 발리의 깜보자 꽃잎 모양을딴 향초나 갖가지 종류의 오일, 자연 재료로 만든 바누 등이 다양하다. 발리를 다녀 온 기념으로 지인들에게 선물로 나눠주는 것도 좋다.  

* Coco Supermarket : Jl, Raya Pengosekan,Ubud, Bali




사진: 조현영, 채인숙  



글: 채인숙(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하였다. 1999년부터 자카르타에 거주하며 인도네시아 문화예술에 관한 글을 쓴다. 인도네시아 인문창작클럽 <인작>과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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