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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인숙 May 28. 2017

글자가 없는 편지를 적습니다 -바틱 1  

바틱과 마주치다


누구든 좋아하는 나라가 있을 것이다. 그 나라를 기억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눈빛, 도시의 냄새, 혹은 길거리의 표정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단지 고유명사가 아니라 자신만의 이미지로 어떤 장소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당연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이라면  하나의 기억만으로 수십 가지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바틱 문양을 찍어내는 짭Cap/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자체 제작한 한글 Cap)




 18년 전 처음 내가 인도네시아에 와서 백화점이란 곳을 갔을 때, 나는 이 나라에 이리 오래 살게 될 줄은 모르고 앞으로 내가 인도네시아를 기억할 때는 이 백화점을 이야기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시시하게 도시마다 흔해빠지게 늘어선 백화점이 뭐냐고 퉁박을 줄 사람도 있겠다. 그리고 사실 그 백화점은 건물 외관이 그리 근사하거나 멋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백화점의 좁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바틱(Batik) 때문이었다면 아마 나를 이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곳은 매장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방대한 전시장 같은 느낌이었는데, 바틱으로 만든 스카프부터 옷, 침대 시트, 혹은 예술 작품으로서의 바틱에 이르기까지 실로 어마어마해 보이는 바틱 제품들이 백화점 한 층을 꽉 채우고 있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 모든 바틱의 색깔과 문양들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서 수십 만 장의 제각각 다른 바틱 문양과 마주친 순간에 느꼈던 놀라움과 곧이은 경외감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제 막 30여년 간의 수하르토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지난 해(1998년)의 5월 항쟁이 수습되고 있었고, 길거리엔 아직도 불 탄 건물들이 그때의 혼란을 말해주듯 여기저기 을씨년스럽게 방치되어 있던 도시. 그러나 자카르타의 주택가에서 가끔 마주치는 원색의 벽들과 세월의 때를 그대로 품고있는 나무 대문들을 힐끗거리면서, 나는 인도네시아가 예사롭지 않은 문화와 깊은 예술적 정취를 가진 나라일 거라 짐작만 하던 터였다. 그런데 내 짐작에 대답이라도 주듯 바틱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바틱은 단지 염색이 아니다.


바틱은 원래 밀랍을 사용해서 천에 그림을 그리거나 색을 입히는 염색 기법을 칭하는 말이었다. 짠띵(Canting)이라는 일종의 펜 역할을 하는 도구에 뜨거운 밀랍을 부어 천에 그림을 그리고 염색을 한다. 그러면 밀랍으로 그린 선들은 염색이 되지 않아서 하얗게 남고 나머지 부분들에 색이 입혀진다. 그런 후엔 칼로 긁거나 천을 삶아서 밀랍을 벗겨낸 후에 바람과 볕이 잘 드는 곳에 말린다. 새로운 색과 문양이 필요한 부분마다 다시 밀랍으로 선을 그리고 벗겨내는 과정이 수 차례 반복된 뒤에야 비로소 원하는 색과 문양을 갖춘 한 장의 바틱이 완성된다.


(자무 파는 여인과 바틱 그리는 여인 /  바틱 제작 도구들)




이처럼 전통 바틱은 고난한 작업 과정과 인내의 시간을 통과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탄생하는데 제작 과정만 짧게는 한 달에서 일 년이 넘어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금은 실크스크린 기계로 바틱 문양만을 찍어 대중화된 제품들이 흔하게 널려 있고 덕분에 인도네시아 거리 어디에서나 바틱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바틱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모든 과정에서 철학적 의미를 만들고 예술로서의 가치를 발휘한다.





지금 ‘바틱’이라는 단어는 단지 염색 기법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바틱 기법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옷과 지방마다 다른 바틱 문양 등등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거기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바틱을 만들면서 기울이는 정성과 인내의 시간, 그리고 신을 향한 명상과 기도의 정신적 의미까지도 포함한다. 원래 바틱(Batik)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점을 찍거나 방울을 떨어뜨리다’는 뜻의 Titik에서 왔다. 짠띵에서 떨어지는 밀랍을 방울방울 이어 선을긋고, 그 선으로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는 그 모든 과정들 속에 바틱은 단순한 염색 기법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영혼을 상징하는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바틱 염색 과정을 나타낸 액자




수없이 반복되는 작업 과정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시간과 장소를 탓하지 않고 원하는 마지막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바틱의 정신에는 신이 주신 운명과 뜻을 거역하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인도네시아 인들의 기도와 인내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더구나 신은 바틱의 색을 단단하게 입혀 줄 적도의 뜨거운 태양을 그들에게 선사하지 않았는가.





물론 지금은 전통적인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바틱 뚤리스(Batik Tulis. 쓰다 혹은 그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구리로 만들어진 도장으로 똑같은 문양을 찍어내는 바틱 짭(BatikCap), 혹은 위 두 가지 방법을 혼합하여 제작하는 바틱 콤비나시(Batik Kombunasi)가 모두 바틱으로 통용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왕조의 바틱, 금지된 8가지 문양


 바틱은 주로 중부자바의 족자와 솔로, 쁘깔룽안, 찌레본 등에서 지역마다 다른독특한 문양들이 개발되면서 발전해 왔다.


 

족자는 청색(Indigo)과 흰색 그리고 갈색(소가 Soga)으로 대표되는 우아하고 기품있는 왕조 중심의 바틱 문양이 철학적 의미를 담고 발전한 반면, 쁘깔룽안은 해안도시이면서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자유롭고 이국적인 문양의 바틱이 발달하였다.


(솔로의 대표 문양)



특히 쁘깔롱안에서는 외국인들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상업적 바틱을 제작하고 이를 산업화하여 유럽 등으로수출하는데 힘썼다. 그러면서도 바틱이 단순히 상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바틱 디자이너의 서명을 문양마다 새겨 넣는 작업을 1800년대에 이미 시도하였고 이로써 바틱이 예술적 가치를 잃지 않도록 했다.





솔로는 중부 자바 인들의 성품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 부드럽고 잔잔한 문양이 주를 이룬다. 찌레본은 해안 도시이면서도 왕궁이 있고 이슬람이 강한 곳이어서 종교적인 특성이 바틱 문양에서 많이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구름(메가믄둥 MegaMendung)이나 이슬람 경전의 내용을 바틱에 새겨넣었는데, 주로 남성들이 바틱 제작에 참여하면서 좀더 힘있고 대담한 문양들이 개발되었다.


(찌르본의 메가믄둥)



 한편 18세기 족자와 솔로 왕궁에서는 왕조들만이 입을 수 있는 8가지의 바틱 문양을 지정하여 계급적 의미를 부여하면서엄격한 왕궁의 권위와 질서를 유지하려고 했다. 지금도 족자의 왕궁에서는 일반인들에게는 착용이 금지된여덟 가지 문양의 철학적 의미를 기억하며 그 전통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금지 문양을 착용할 수 있게 되었다.



금지된 8가지 문양은 아래와같다.


1.    까웅(Kawung) : 4개의 타원형과 중심의 + 모양은 우주의 근원적 힘을 상징한다. 타원을 이루는 마름모 문양은힌두에서 우주를 이루는 5가지 원소를 의미한다.

2.    빠랑(Parang) : 인도네시아의 전통 검, 끄리스(Keris)를 상징한다. 문양에 어떤 흠도 있어서는 안 되며 완전하고 신비로운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겼다.

3.    빠랑 루삭(Paramg Rusak) : ‘적을 무찔러 패배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빠랑 문양이 대각선을 이루도록 하여 우아하면서도 강한 힘을 나타내었다. 또한 파도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파도처럼 쉼없이 이어지는 고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용기를 듯하기도 한다.

4.    쯔무끼란(Cemukiran) : 연꽃에서 유래된 문양으로 주로 바틱 천의 가장자리를 장식한다.

5.    사왓(Sawat) : 가루다(Garuda)를 상징한다. 힌두교에서 창조의 신 비쉬누(Bisnu)가 타고 다녔던 신화 속의 새로 최고의 권력을 상징하는 큰 날개 문양이다.

6.    우단 이리스(Udan Iris) : 비옥한 땅을 만드는 가랑비와 자연의 다양한 형태를 혼합하여 대각선으로 이어 그렸다. 풍작을 기원하며 신이 내리는 자연의 은총과 풍요, 번영을 상징한다.

7.    스멘(Semen) : 우주의 질서에 대한 자바인들의 믿음과 다산을 염원하는 상징들로 이루어져 있다. 신이 살고있는 산, 명상과 철학의 장소인 사원, 영혼의 세계를 상징하는 날개, 세계를 이루는 여러 동물들과 다산을 의미하는 덩굴 손 등의 식물들이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다.

8.    알라스알라산(Alasalasan) : 태초의 원시림을 상징하며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인내와 염원을 담고있다. 스멘과 비슷한 패턴을 이루고 있지만 신화적 문양이 좀더 강하게 드러나 있다.


(족자 왕조의 대표적 금지 문양)





 바틱,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다


 2009년 10월, 바틱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바틱이 언제부터 인도네시아에서 만들어졌는지 그 기원은 확실치 않다. 바틱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자바의 서남부의 갈루(Galuh) 지방에서 야자 잎으로 만든 두루마리 문서에서 처음 발견되는데, 약 1520년 경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바틱이 처음 시작된 기원 역시 인도에서 전파되었다는 설과 중국에서 왔다는 설,수마트라 등지의 오지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설 등이 나름의 근거를 들며 전해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7세기에 이미 바틱을 통한 외국과의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1972년에 이르러서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모든 국가적인 공식 행사에 바틱을 입을 것을 권고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바틱 전시회에서 내 맘대로 제작한 솔로 바틱 문양 드레스 입고 문양 설명 중인 나, 채젬마)




 중요한 것은 유네스코가 바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바틱의 오랜 역사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바틱이 인도네시아 인의 정신적, 문화적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 주기 때문이고 실생활에 끼친 영향 또한 크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정치인들은 바틱을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적, 정신적 상징으로 부활시키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초대 수카르노 대통령은 외국의 정상들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할 때마다 대통령 궁에서 바틱 전시와 시연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1950년대 후반에는 바틱 협동 조합(GKBI,Gabungan Koperasi Batik Indonesia)과 족자카르타 바틱 연구센터를 설치해서 바틱 산업을 국가적 산업으로 일으키고 바틱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했다.





1968년 쿠데타를 일으키며 제2대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 취임한 수하르토(Soeharto)는 급기야 바틱을 인도네시아 인들의 일상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연구하기에 이른다. 그 대표적 정책으로 인도네시아 남성들의 공식 복장으로 바틱을 선포한 것이었다.  나라 안팎의 공식적인 행사나 모임에서 공무원을 비롯한 남성들이 바틱 셔츠를 입기를 권장하였고 이는 바틱이 일상복으로써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즉각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현재는 인도네시아의 정부 기관과 학교를 비롯하여 많은 기업들도 매주 금요일을 ‘바틱의 날’로 지정하여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바틱을 입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바틱으로 만든 사룽들)




사실 바틱은 예로부터 일상 속에 있는 예술이었다. 물론 자바 왕조의궁궐에서는 그들만의 문양으로 만들어진 바틱을 특별히 제작했고 일반인들이 입지 못하는 금지된 문양을 지정하면서 계급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러나 민중들은 아기를 둘러업는 슬렌당을 만들기 위해, 사원에 기도하러 가면서 입을 사룽을 만들기 위해, 혹은 죽은 가족의 시체를 감싸는 지상의 마지막 옷을 짓기 위해, 자신들이 흘린 눈물처럼 짠띵의 밀납을 떨어뜨리며 바틱을 완성해 나갔다. 그 과정 속에서 바틱은 그저 한 장의 천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정신을 대변하는 아름다운 예술로 탄생할 수 있었다. 유네스코가 바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이런 일상성과 예술성의 가치를 높이 산 것이리라 짐작한다. 바틱은 인도네시아 인들의 예술적 감각, 삶의 철학, 종교적 명상을 아우르는 아름답고 위대한 예술로,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탄생과 완성을 거듭하고 있다.





(가믈란 연주단인 Sukra Kasih Group)




* 참고자료: 한,인니문화연구원 <Batik the soul of Indonesia>,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커뮤니케이션

* 사진: 한,인니문화연구원 1st 하이라이트 족자 바틱 전시회 중



글: 채인숙(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하였다. 1999년부터 자카르타에 거주하며 인도네시아 문화예술에 관한 글을 쓴다. 인도네시아 인문창작클럽 <인작>과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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