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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젬툰 Jul 02. 2017

사귀고 나면 노잼이 되는 남자. 그게 나야

흔한 연애의 종말

태어나서 지금껏 한 여덟 번 정도의 연애를 했다. 이 이야기는 곧 최소 일곱 번의 이별을 했다는 얘기다. 원래 연애와 이별은 세트다. 그러다 마지막 연애는 보통 결혼과 세트가 되지. 연애는 여덟 번인데 이별은 한 번 이면 이상하잖아. 아무튼, 그 열 번이 채 안 되는 연애 경험 중에 얼마 전 여덟 번째인가 아홉 번째 연애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에 대한 그녀의 마음에 발전이 없기 때문에. 이제까지 들었던 그 어떤 이별 사유보다 명확했고 논리적이었다고 생각했다. 마음과 뇌가 동시에 설득당하는 느낌. 이러기가 진짜 쉽지가 않은데 온 몸으로 설득당했다. 그것은 곧.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해왔다는 이야기. 좁혀지지 않는 그녀와의 간극이 나 역시 참기 힘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별을 했다. 썸 탄 기간 약 두 달, 사귄 기간 약 세 달, 그리고 헤어지는데 3분. 잘 살아.라는 말을 던져 놓고 커피숍을 나와 일단 담배 한대를 폈다. 그녀와 사귀는 동안 담배를 끊으려고 부단히 도 애를 썼기에 그 담배는 더 달콤했고 더 고소했다. 스쿠터에 시동을 걸어 한 1 킬로미터 정도를 멀어져 또 담배에 불을 붙였다. 스으으으읍 후 우우우우. 마치 세상에 태어나 처음 호흡을 배우는 사람처럼 신중하게 숨을 내뱉고 또 들이마셨다. 몇 번 심호흡을 하니 금방 담배 한 대가 꽁초가 됐다.


집에 와 생각해봤다. 너와 나는 왜 이별했을까. 보통은 한 번 정도는 매달렸었는데 나는 왜 이번엔 그러지 않았을까. 이 연애를 더 이상 지속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세상을 살다 보면 같은 일을 여러 번 겪게 된다. 입학, 졸업, 취직, 퇴사, 만남, 헤어짐. 같은 일이 반복되면 피곤하다. 그리고 익숙해진다. 나는 이제 드디어 이별에 익숙해진 것이다. 뭐 그까짓 이별. 뭐 그까짓 연애. 어차피 끝날 거 질질 끌지 않고 여기서 끝내는 게 다행이지 뭐. 그런 마음인 거다. 반복의 지루함. 반복의 무의미함. 거기서 나는 이번 이별을 완전히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별이 마냥 자연스럽지는 않은 이유. 종종 이별의 이유들이 중첩되기 때문이다. 자주 듣는 이야기는 이거다. "사귀기 전에 알던 너와 사귄 후의 네가 달라." 너를 만나고 내 키가 너무 커버려서 저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초강력 지성이었던 내 피부가 너를 만나고 갑자기 보송보송한 중성 피부가 되어 존슨즈 베이비 로션을 마음껏 바를 수 있게 된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혀 아니었다. 나의 신체적인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의 태도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대개 그것은 나의 유머 감각에 대한 것이었다.


남을 웃긴다는 것은 보통 아주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움은 편안함에서 나온다. 불편한 관계에서 남을 웃기려는 시도는 불편한 웃음으로 귀결된다. 담배를 피우다 걸려 선생님에게 몽둥이찜질을 받기 직전 "선생님 그 몽둥이 오동나뭅니까?"라고 묻는 따위의 유머. 외려 매를 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못생긴 남자들이 100% 맹신하고 있는 근거 없는 통계 "여자는 잘 생긴 남자보다 웃긴 남자를 좋아한다."라는 명제 때문에 나를 포함한 숱하게 많은 남자들이 구애와 함께 유머를 구사하려고 한다. 나도 그랬다. 어차피 이번 생애에 잘생기긴 글렀으니 웃긴 남자라도 되어 보려고 애쓴다. 그리고 제법 타율이 높기도 하다. 하지만 유머를 구사한다는 것은 매우 높은 수준의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한다. 기관총을 난사하면 총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처럼 유머 폭탄을 쉴 새 없이 투하하다 보면 뇌가 과부하가 걸려 거의 한 3일 정도는 아무런 유머도 구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그랬다. 유머 폭탄으로 결국 구애에 성공하고 나면 나는 이제 전쟁을 끝내고 자연스러운 웃음 휴전 상태로 들어갔다. 하루에 수십 개씩 터뜨리던 웃음을 포기하고 소소한 미소를 짓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야만 장기전이 가능했기에. 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상대방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은 나의 이런 태세 전환이 "알고 보니 노잼이었네."라는 결론으로 귀결될 때가 있었다. 나는 언제든 출격 가능한 유머 용병인데, 지금이라도 너의 배꼽 절도범이 되어 전과 19범이 될 수 있는데 기다려 주질 않았다. 아니, 그동안 너무 침묵으로만 나의 유머가 폭발하길 기다린 걸 지도. 아무튼, 그렇게 여자들은 비슷한 이유로 떠나갔다. "사귀기 전에 알던 너와 사귄 후의 네가 (유머 감각이) 달라"


그렇다고 내가 지난 과거를 되씹어 연애 전에도, 연애 후에도 강력한 웃음을 장착한 폭격기가 되기로 결심했느냐?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점점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갈 바에는 점점 재미있는 사람이 되어가자. 초반에 오히려 편안한 웃음으로 촉촉하게 적시고 연애 후에 웃음 폭발력을 터뜨리자. 다만 예전처럼 마구잡이 카미카제로 터뜨리지 말고 적재적소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썼을 때마저도 빙그레 웃음 지을 수 있는 강력한 웃음 한방을 매번 하나씩만 터뜨리는 사람이 되자. 그러면 나도 들 피곤하고 그녀도 더 이상 내가 노잼으로 변신했다고 욕하지 않겠지. 물론 이렇게 계획만 세웠을 뿐, 그 어떤 여자에게도 써먹지 못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오늘도 이렇게 못 생긴 남자의 연애 못하는 이유에 대한 변명은 아주 찌질하고 지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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