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를 구독하고 있습니다.
어딘가에 취미를 기재하는 란이 있다면 '음악 감상'이나 '독서'가 1, 2위를 다투던 때가 있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같이 세상 재미있는 SNS 따위 없던 시절, 누군가 취미를 물어오면 으레 음악 감상이나 독서 둘 중 하나로 답을 했던 것 같다. 실제로 음악을 즐겨 듣는다거나 책을 손에서 못 놓는다던가 하는 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딱히 취미라고 얘기할 만한 것이 없었으니 별 수 있나.
지금이야 대놓고 취미를 물어보는 사람이 없지만, 혹시 물어봐 준다면, "아침 수영에 푹 빠져 있고요, 시간이 나는 틈틈이 '브런치'에 글을 쓰고요, 그리고 퇴근 후 저녁 시간이면 EBS의 '세계테마기행'을 빼놓지 않고 시청해요."라고 답을 할 텐데.
그리고 이제 진짜 취미가 되었으니 당당하게, "잠들기 전, 무거운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오기 전까지 책을 읽어요."라고.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따스한 이불속이 그리워지는 즈음(좀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슬며시 침실로 들어가서, 읽다 만 여러 권의 책 또는 잡지 중에 손 길이 닿는 한 권을 펼친다.
대개 나의 손이 향하는 곳은 책 더미보다는 '샘터'라는 월간 잡지다. 매월 말, 다음 달 잡지가 배달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아끼고 아껴서 며칠에 걸쳐서 읽는다.
한 때, 책을 책장에 꽂아두거나 서점을 둘러보는 행위 자체로 헛헛한 마음을 채우려는 시도를 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하면 어떤 연유로 공허해진 마음이 채워지는 듯한 신기한 체험을 하곤 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하등 쓸데없는 뽐내기 시전 내지 바닥까지 떨어져 있는 자존감의 표식이었다.
줄곧, 그래 왔다. 스산한 가을날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특별히 할 일 없는 주말 시간을 채워준 곳은 책으로 가득 찬 시내 대형서점이었다. 한 바퀴 둘러보며 이런 책, 저런 책, 만져보고, 열어보고, 서문 정도 읽어보고, 그렇게 두어 시간 보내고 몇 권 집어 들고 나서면 뭔가 뿌듯했던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대형서점을 배회하지 않는다. '샘터'덕분에.
어린 시절 기억 속 저편에 자리 잡고 있던 '샘터'가 불현듯 뇌리에 스친 것은 '샘터' 잡지를 발행하는 출판사가 경영난으로 인해 잡지 발행을 중단할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를 보고 나서였다. 아, '샘터'가 있었지!
일반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면을 빌어 담담하게 공유하는 형식이 좋았다. 무엇보다 생활수필의 특성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쉽게 쓰인 이해가 너무 잘 되는 일상 이야기가 가득했다. 어른 손바닥만 한 이 잡지는 (주)샘터사 홈페이지에 무려 '월간 교양지'로 소개가 되고 있는데, 받아보면 의외로 이런 고전적인 명칭이 꽤나 잘 어울린다. 1970년에 창간하였다고 하니 80년대 키즈인 내가 어린 시절 어디선가 이 잡지를 봤을 법한 게 맞는구나.
그렇게, 한 번도 읽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잡지를 우연히 구독하게 되었고, 벌써 4년째 함께하고 있다.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중심을 잃지 않도록 나의 신념과 의지를 굳건히 다지고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인문/역사 책자도 좋지만,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염탐하는 느낌마저 선사하는 이 월간 교양지를 더 자주 찾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알고 보면, 누구나에게 공평한 양의 슬픔, 기쁨, 불행, 행복이 존재하는데, 각자 감당하거나 또는 수용할 수 있을 만큼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내가 아는 누군가와 또는 모르는 사람과 적당히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차고 넘치는 가운데 당신도 있고, 나도 있고, 서로 간에 통하는 정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샘터'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