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러운 '영월'
다음 날 아침. 온통 안개가 자욱했다.
영월에서 2박을 머무르려던 계획을 변경해서 1박으로 수정하고 짐을 싸서 체크아웃했다. 어제 방문했던 라디오스타 박물관과 금강정 산책길에서 영월에 대한 실망감은 완전히 해소되었지만, 어찌 되었든 1박을 더 할 유인은 없는 상황. 미리 점찍어둔 작은 카페에서 아침 식사 겸 커피 한 잔 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침 8시, 읍내 카페 중에 문을 여는 유일한 카페이기도 했고, 카페 사장님의 운영 철학과 SNS에서 살짝살짝 엿보이는 삶의 지향점에 이끌려서 여기는 꼭 가봐야겠다고 미리부터 계획을 세운 터였다.
남편과 차에서 내리며 "아, 커피가 맛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 영월 여행의 마지막 장소인데,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라는 작은 바람도 있었다.
카페 문을 열자마자, 카페 가득 퍼져있는 커피 향과 나지막이 깔리는 BGM. '아, 잘 왔다. 바로, 여기다.'라고 생각했다. 거짓말 같이 느껴지겠지만, 진짜 그랬다.
그리고 따듯한 환대,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 것이지만, 이곳은 손님이 많건 적건 한 명 한 명 충분히 환대해 주는 곳이었다.)
바나나 토스트 + 커피세트 두 개를 주문하면서, "SNS에서 보고 찾아왔어요. 영월에 가면 꼭 한번 들르겠다고 답글 달았던 사람이에요.^^"이라고 대뜸 말을 건넸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원... 언제 다시 영월에 올 지 모르니, 초면이지만 사장님께 아는 체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컸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의 진심이 통했다!)
완성된 토스트와 커피를 받아 들며 자연스럽게 사장님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현지인만 안다는 숨은 산책로를 알려주시며 영월의 숨은 매력을 들려주시는데, 아차, 이대로 영월의 진면목을 못 보고 가는구나…싶었다. 그즈음, 서너 분의 손님이 카페에 들어섰고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시는 친근함에서 엿보건대, 단골도 보통 단골이 아님을 눈치채고 낯선 이방인인 우리는 잠시 침묵모드로(그 사이, 남은 토스트를 야무지게 잘 먹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무리 중 한 분이 집에서 가져오신 찐 고구마를 불쑥 내어 주시는 것이 아닌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도심 카페에서는 상상할 수 조차 없는 낯선 이에 대한 무해한 관심과 호의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바로 이때, 아침 산책 길에 들른 듯한 복장의 손님과 뒤를 이어 성큼 따라 들어온 순딩 순딩한 대형견 J. 일순간 모든 관심은 J에게 집중되었고, 뒤 이어 또 다른 단골 분들이 등장하자 J를 중심으로 대형을 이루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단 10분여 만에 벌어진 일. 누가 주인이고, 누가 단골이고, 누가 이방인인지 분간이 안 되는 다소 소란스러운 이 순간이 왠지 모르게 좋았다.
누군가를 반갑게 맞이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모모씨커피'는 단순히 커피만 파는 카페가 아니었다. 기대고 싶은 누군가가 있고, 기꺼이 내 옆자리를 내어주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이곳을 영월에 온 첫날 왔더라면, 여기를 진작에 알았더라면, 어쩌면 우리 부부는 서울로 복귀하지 못할 수 있었겠다. 진심.
무엇보다, 모모씨가 정성 가득한 마음으로 내어주시는 바나나 토스트와 커피는 '따로 또 같이' 잘 어울리고 무척이나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