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을 '영월'답게
'영월'을 알게 된 것은 참으로 우연이었다. 영화 ‘라디오스타’의 촬영지라는 것도,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가 있는 곳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9월 중순, 강원도 정선 여행을 갔다가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점심 먹을 곳을 찾다가 들른 곳이었는데 첫눈에 마음을 빼앗겨버렸고, 서울 올라와서 내내 '영월 앓이'를 하다가 결국 작정을 하고 영월을 목적지 삼아 내려갔다.
가을이 한창이던 10월 말, 영월에서만 2박을 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떠난 여행길. 차창 밖에 펼쳐지는 강원도의 준험한 산세에 압도되는 것도 잠시, 사이사이를 메꾼 울긋불긋 단풍 세례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매료되어, "우와, 너무 예뻐!"를 연발하였다.
두어 시간 넘게 쉬엄쉬엄 달려서 도착한 영월읍. 9월 중순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꽤나 덥고 습했는데, 10월 말에 만난 영월은 걷기에 딱 좋은 선선한 가을이었다. 미리 잡아둔 호텔에 차와 짐을 두고 무작정 읍내에서 제일 유명한 시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온 동네가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대개의 지방 소도시가 그렇겠거니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아무리 평일이라고 해도 이렇게 고요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 우리 부부 또래의 연령대는 더더군다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게 아닌데… 우리가 반했던 영월은, 적당히 한적하고 적당히 활기가 도는 곳이었다. 괜히 이 멀리까지 왔나 싶은 후회 막급한 마음으로 터덜터덜 시장 근처를 돌다가 ‘라디오스타 박물관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라디오스타 박물관은 KBS영월방송국이었던 곳으로 ‘라디오스타’ 영화 촬영이 끝나고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대중에 공개한 곳이었다. 영화 촬영지가 뻔하지 뭐 하는 마음으로 동강이 눈 아래 펼쳐지는 길을 따라 박물관에 올라가는 길, 늦은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과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풍경 덕분인지 조금씩 기분이 풀리기 시작했다.
입구에 다다르자 실제 방송하고 있는 것처럼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왔는데, 잠시였지만 마치 KBS영월방송국이 폐지되기 전, 이를테면 1997년 10월의 어느 날 방송국 앞을 찾은 감수성 충만한 소녀 팬이 된 느낌이었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사람은 우리 둘 외에 없었고 그 덕분에 천천히 돌아볼 수 있었다. 어느 폐업한 음반가게 사장님께서 기증하셨다던 카세트테이프 진열장에서 90년대 감성을 소환하고, 라디오 방송국 세트장 장비를 그대로 남겨둔 스튜디오에 앉아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외부에서 틀어둔 라디오 방송을 들어보는 경험은 생경했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낭만적이었다.
박물관을 나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팝송 100선'과 같은 카테고리에 꼭 들어갈 만한 노래가 나왔고, 기분 좋게 흥얼거리며 오색찬연 한 단풍이 한창인 산책길을 오븟이 걸었다.
그리고 ‘금강정’에 다다렀다. 눈앞에, 잔잔하게 흐르는 동강의 줄기를 따라 햇빛이 반사하며 고요하게 반짝거린다.
참 예뻤다. 이게 바로 영월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