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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Jul 16. 2024

걷는 여행 4-3

무섬마을 ㅎㅎㅎ할아버지

둘째 날, 영주 부석사, 소수서원을 들려 영주 시내로 들어섰다. 여기까지 왔는데 시내도 구경해야지. 근대역사문화거리를 둘러보고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소화도 시킬 겸, 영주 구도심의 관사골을 걷는데 머리 위로 내리쬐는 해가 너무 뜨겁다. 차에 올라타고 눈을 의심케 하는 숫자를 확인했다. 37도… 더 이상의 도보 여행은 무리였다. 서둘러, 두 번째 숙소에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


여기서 영주 여행을 마무리할 것인지에 대해 잠시 고민했지만, 여기저기 매체에 많이 나왔던 ‘무섬마을’을 건너뛰긴 아쉬웠다. 서서히 해가 지고 있으니 뜨거웠던 한낮의 열기는 한풀 꺾이지 않을까?


저녁 7시.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무섬마을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렸는데, 세상에, 관광지인데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우리 세상이다!


그때부터였다. 그와 나는 가장 유명하다는 외나무다리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왜 뛰었는지 미지수인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곳을 우리가 독차지했다는 생각에 달뜬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모래사장에서 시작되는 외나무다리에 가뿐하게 올라 걷기 시작했다. 남편이 먼저 걷고 내가 뒤를 따랐다. 어라? 모래사장이 끝나고 흐르는 물가에 접어들자 갑자기 몰려드는 공포감. 다리가 달달 떨리는 게 아닌가. 여기서 대반전은, 아무리 깊은 곳도 물의 깊이가 무릎 정도 온다는 거. 발을 헛짚어서 떨어진다고 해도 운동화와 바지가 젖어서 낭패일 뿐 무서울 게 뭐가 있냐고 하지만 난 무섭다고. 그때부터 얼굴에 웃음기가 싹 빠지고 완전 진지 모드. 먼저 출발한 그가 중간의 조망 지점에서 내가 다가오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줬는데 나중에 보니 겁에 질린 내 표정이 정말 볼만했다. 문제는 다시 이 외나무다리를 타고 모래사장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 그 옛날에 지금보다 폭이 좁은 외나무다리를 가마꾼이 새색시를 태우고 거뜬히 지나갔다는 무섬마을 어르신의 인터뷰는 혹시 거짓말 아니었을까?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덜덜 떨며, 그 옛날 스카우트 단원으로서 담력 훈련받던 기억을 떠올리며 “헛둘, 헛둘” 간신히 건넜다.


휴~ 모래사장에 두 발로 착지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을 쪽으로 달아났다. 남편은 유유히 흐르는 강 한가운데로 외나무다리가 놓인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이제 해가 거의 떨어졌다.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실제 마을 분들이 거주하는 곳이어서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어르신들은 대개 일찍 주무시니까. 전통가옥 가운데 드물게 섞여 있는 현대식 양옥집이 몇 채 보여서 인상적이네~ 하며 한 양옥집을 지나치는데, 단정하게 차려입으신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님 한 분이 마침 나오셨다. 앞쪽으로 가로질러 가시길래, 그러려니 하고 조용히 뒤따라 걷는데 갑자기 휙~ 돌아서신다.


두 분은 어디서 왔나요?


금요일 저녁에 이 먼 곳까지 온 두 젊은이가 신기하고 기특하셨는지, 그 뒤로도 여러 질문이 이어졌다. 본인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는데 타지 생활을 오래 하다가 퇴직 후 다시 돌아왔고, 그때만 해도 민속 마을로 지정이 되지 않아서 별 고려 없이 새로 집을 지었으니 양해해 달라는 사려 깊은 말씀까지. 그리고, 이렇게 우리 마을을 찾아줘서 고맙고 잘 보고 가라는 친절한 당부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할아버님은 올해 여든아홉이라고 하셨던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건강하신지 비결을 여쭤보니, 할아버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귀에 확 박힌다.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돼.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면, 무슨 일이든 ㅎㅎㅎ 웃어넘기면 돼. 나는 그래서 우리 훈민정음 중에서도 맨 끝에 ㅎ을 좋아해. 흐흐흐, 히히히, 하하하, 이렇게 말이야.”


저녁 드시고 건넛마을 친구네 놀러 가는데, 오늘 아침에도 복지관에 가서 봉사 활동을 하고 왔다고. 이 정도 거리는 슬슬 걸어가신다며, “내가 젊은이들 붙잡고 너무 말이 많았네. 잘 가요~” 하신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어가시는 할아버님 뒷모습을 보며 가뜩이나 피곤했던 몸과 마음이 스르르 풀어진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무섬마을과 외부를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를 지나가는데 아까 그 할아버님이 자신만의 속도로 걷고 계셨다. 태워 드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자칫 그분의 일상을 방해하는 것이 될 것 같아서 마음을 접었다. 괜스레 코끝이 찡.


“할아버님, 부디 지금처럼 건강하고 오래오래 즐겁게 사세요. 다음번에 또 올게요.”

무섬마을에 내려앉은 노을
“무섬마을은 마을의 삼면을 내성천이 감싸듯 휘감아 돌아나가서 육지 속의 섬처럼 보이는 물돌이 마을이다. 풍수로 보면 매화꽃이 떨어진 모습을 닮은 매화낙지 또는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 모양의 지형으로서, 명성과 덕망이 높은 자손이 많이 나온다는 명당으로 꼽히는 곳이다. 마을 이름인 무성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의 우리말이며, 원래 물섬이라고 불리었다.

(중략)

무섬마을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마을과 외부를 이어주는 외나무다리가 폭이 좁아서 긴 장대에 의지하여 건넜다. 과거에는 장마 때마다 다리가 물에 떠내려가서 매년 새로 외나무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상은 자유로웠던 마을이다. 조선 시대에는 양반과 농민이 함께 공부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 운동의 본거지로 양반과 상민,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민족교육을 실시했던 아도서숙이 있었다. 6•25 전쟁 때에는 좌익과 우익이 공존한 마을이었다. 면적 대비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항일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마을로도 유명한데 덕립 유공자만 5명에 이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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