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벅의 주인공은?- 감자이야기 3
감자범벅.
범벅이 뭔지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어릴 적 툭하면 끼니 대신 먹곤 했던 음식 '범벅'의 뜻을 찾아보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1」 곡식 가루를 된풀처럼 쑨 음식. 늙은 호박이나 콩, 팥 따위를 푹 삶은 다음 거기에 곡식의 가루를 넣어 쑨다"(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View.do)라고 나와있다.
한국문화민족 대백과사전에 '호박범벅은 경기도·충청도·경상도 지방에서 만들고, 옥수수범벅은 강원도·경기도 지방, 고구마범벅은 강원도지방, 밀떡은 전라도지방에서 만든다'라고 되어있다.
강원도는 옥수수나 고구마범벅이 소개되어 있는데,
어릴 적 먹은 범벅은 감자범벅의 기억이다.
감자범벅을 만들기 위해 하는 사전준비는 감자껍질 벗기기와 밀가루 반죽하기다.
감자를 뽀얗게 껍질을 벗긴 후 화덕에 걸린 양은솥에 감자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불을 지핀다.
감자가 웬만큼 익으면 수제비를 만들 때와 비슷한 정도로 밀가루 반죽을 하여 수제비처럼 떼어,
감자 위에 켜켜이 얹고 뚜껑을 닫고 익힌다.
소금과 당원을 녹인 물로 반죽의 간을 맞췄다.
모두 익으면 감자와 위에 얹은 밀가루 반죽을 주걱으로 마구 섞은 후 그릇에 떠서 먹었다.
문제는, 감자에 비해 밀가루 반죽의 양은 매우 적었다는 것이다.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니던 70년대 초반 우리나라는 식량이 부족해서 다른 나라로부터 밀가루를 원조받고 있었다. 쌀이 부족해서 감자, 옥수수, 고구마로 끼니를 자주 때우던 상황에서 식감이 좋은 밀가루 반죽은 엄청 맛있었다. 그래서 감자범벅을 먹을 때는 항상 밀가루 반죽부터 먼저 경쟁적으로 골라먹었다.
밀가루보다 훨씬 많았던 감자는 항상 작은 밀가루반죽 한 조각까지 꼼꼼히 골라먹은 후에야
어쩔 수 없이 먹기 싫은 감자를 끼적거리며 겨우 먹었다.
결국 그릇에는 부서진 감자들만 남아서 지들끼리 뒹굴었다.
감자와 밀가루.
한참 시간이 흐른 요즘에 어떤 것이 더 건강식품인지 물어보면 당연히 감자라고 답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크게 건강에 신경을 쓰거나 별도로 운동도 하지 않은 것에 비해 체력이 괜찮은 편인 거 같다.
가끔 몸살이나 감기 정도를 앓은 거 외에는 크게 아픈 적도 없었다.
고기라고는 명절 때나 겨우 먹을 수 있었던 어려운 어린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정도의 체력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어릴 때 '감자'를 많이 먹어서인가 싶다.
여름이면 고향인 춘천 시골의 밭은 온통 감자밭이 많고
흰색, 자주색 감자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어린 시절 나를 키워준, 고마운 감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