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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석맘 지은 Jan 28. 2022

드디어 미국 학위를! 그리고 작가, 번역가를 꿈꾸다

  Congratulations!     

  다음 학기가 마지막이다. 졸업하면 Associate Degree(준학사)를 받게 된다. 미국에서 학위라니!      

  어쩌면, 먹고 논다는 하와이에서 칼리지(2년제) 졸업에 전공은 듣도 보도 못한 Liberal Art라니 별거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외국 대학교 공부는 정말 만만치 않았다. 고3 때도 이 정도로 고생은 안 했는데 싶을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보낸 대학 4년보다 훨씬 더 책상에 많이 앉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글이라면 쓱 보고 읽어 내려가면 되는데, 한 문장마다 모르는 단어가 가득하고 매번 단어를 찾아서 꼬여 있는 문장을 해석하다 보면 앞에 읽었던 내용도 까먹기 일쑤였다. 너무 귀찮아서 번역기를 돌려보면 내용이 더 외계어 같아서 시간만 낭비되었다. 하루 4시간 꼬박 들어야 되는 어학원도 힘에 부쳤지만, 대학은 더 엄격했다. 4과목 이상 듣고 C학점 이상을 유지해야 비자 취소의 위험이 없었다. 좋은 성적은커녕 나가떨어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수업을 따라갔다. 수시로 읽기, 퀴즈, 글쓰기 등의 과제가 쏟아졌다. 졸업을 하려면 필수 과목을 채웠어야 했는데 싫든 좋은 해내야 했다. 만약 아이들 없이 나 혼자 유학을 왔다면 너무 힘들어서 벌써 한국으로 도망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이들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지만 아이들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처음에는 1년만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유학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공무원이라서 공식 교육기관 유학만 인정되었는데 적어도 대학 부설 어학원 또는 학교여야 했다. 그래서 하와이에서 힘든 과정으로 유명한 어학원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비용은 비쌌고 그만큼 힘들었다. 물론 거기서도 점수에 신경 안 쓰고 문제가 안 될 정도로 농땡이를 치면 되었지만 어렵게 온 유학이라 양심상 그럴 수가 없었다. 

  애초에 계획한 1년이 지나고 여전히 영어가 아쉬워 1년만 더 연장해보려고 했는데 어학원으로는 더 휴직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안 그래도 어학원 공부가 힘만 들고 재미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대학으로 옮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와이에서 일정기간 어학원을 다니면 토익, 토플 등 영어 성적 없이도 칼리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리플레이스먼트(Replacement) 시험을 봐서 수준에 따라 에세이 쓰기 과정과 대학의 나머지 수업을 신청하면 되었다. 외국인 학생은 필수로 거쳐야 하는 ESOL 과정(에세이 쓰기 과정)이 있었는데 통과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들었다. 같은 수업에 이미 그 과정을 두 번, 세 번 듣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졸업은 생각하지도 않고 피아노, 음악치료 등 평소 관심 있었던 과목을 신청했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을 들으니 힘들어도 얼마나 재미가 있던지. 어학원에서 너무 재미없는 내용을 꾸역꾸역 듣고 억지로 다닐 때보다 살 맛이 났다. 쓰기 수업 역시 어렵고 숙제가 많았지만 어학원에서보다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니 제대로 된 공부를 한다는 생각에 해나갈 수가 있었다. 대학에서 현지인들과 공부를 하니 수업도 더 진지하고 수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틈에 서 있는 내가 멋있었다. 어느 드라마처럼 다시 젊은 학생으로 사는 기분이 들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캠퍼스도 정말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내가 공부하고 있다니. 정말 행운이었다.

  열심히 했지만 합격은 못하겠지 생각하던 ESOL 과정에 합격을 했다. 차라리 떨어졌다면 1년만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한국으로 갔을 텐데. 합격한 순간, 너무 행복한 나머지 졸업까지 상상해버렸다. 그때부터 새로운 고생길 시작인 줄 모르고!     


  예전에는 유학 자체로 외국에서의 생활에 대한 로망을 가졌다. 외국 대학을 간다는 건 아주 먼 나라의 일이었고, 대학 다닐 때 1년씩 어학연수를 다녀온 친구들이 부러웠다. 부유한 친구들이 부러웠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그저 부러웠다. 하와이에서 아이들과 공부한다고 하면 비슷한 의미로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것 같다. 지나 보니 내가 부러워만 했던 유학 생활은 여유롭고 부유한 생활이 아닌, 참 외롭고 힘들고 청승맞고 고난의 시간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리고 그냥 시간을 보낸다고 그냥 돈만 있다고 다닐 수 있는 유학이 아니었다. 재미있었던 과목들은 줄어들고 졸업 학점에 필수인 제2 외국어와 스피킹 수업, Intensive Writing course 등을 해내기에 급급했다. 마지막 학기로 갈수록 듣기 싫어 미루었던 힘든 과목들이 남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마음 다스리고 그저 내 발만 쳐다보며 한걸음 내딛을 수밖에.       

 아이들과 유학을 나와 있다 보니 나와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을 종종 만나게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 엄마들이 어떤 이유에서건 해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짧든 길든 영어권 국가에서 유학한 경험이 대부분이었고 나처럼 겨우 한 달 유럽여행만 다녀온 영어 무능력자는 없었다. 그래서 내 유학생활이 이렇게 힘들고 남들보다 정보력도 부족한가 싶을 때는 나도 못나 보이고 아이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계속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엄마들도 어렸을 때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혼자서 외롭게 겪었을 고통을 차라리 엄마인 내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럽고 덜 힘들게 외국 생활을 하고 있겠지. 아이들이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있는 자양분으로서의 역할을 맡았으니 이 정도는 힘들지 않다고 다독거릴 수 있었다. 맨 땅에 헤딩하고 있는 엄마의 용기를 높이 사주길. 

     

  그리고 드디어 졸업이 다음 학기 앞으로 다가왔다.

  사람의 일이란 모르는 일, 훗날 혹시라도 퇴직 후에 미국에서 직업을 구한다면 학력 란에 쓸 공식적인 한 줄이 생기게 되었다. 이 학위를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 아무도 모르지만 오십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전문대학 졸업장을 따게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다. 혹시 아는가, 이 학위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석사, 박사를 따고 교수가 될지. 아무도 내 한계를 규정지을 수 없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조금씩 자라고 있는 내 영어가 언젠가는 자유로워질 지도 모르고 영어를 사용하는 번역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 좋은 책을 역으로 미국에 소개하는 번역가가 될지 또 누가 알 수 있을까.      


  나는 작가라는 새로운 분야에도 도전하고 있다. 매일 하소연처럼 하와이 생활에 대해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니 브런치 작가에도 뽑혔다. 나는 매일 힘들다고 투정 부리지만 내 가까운 사람들이 옆에서 응원하고 기대하고 있다. 나보다 그들이 더 나를 잘 알고 나를 믿는다.

  지금도 힘들 때면, 난 이미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토닥인다. 하와이에서 아이들과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고, 지금까지 해 낸 것만으로도 나의 능력이 대단하다. 나는 나와 내 가족을 사랑하고, 긍정적인 말과 생각을 한다. 내 한계는 내가 정하는 것. 내가 한계를 두지 않고 열어둔다면 아무도 내 한계를 함부로 규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깨순에서 배운 것처럼.     


  나는, 앞으로의 내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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