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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walker Apr 30. 2019

두고온 것, 빌려온 것

루앙프라방


루앙 프라방에 두고 온 것, 그리고 빌려온 것



아직 여명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빨간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줄지어 거리를 걸어간다. 길가에 나와 앉은 사람들은 지나는 스님들에게 정성스레 음식이며 준비한 물건들을 스님들의 탁발 그릇에 옮겨 담고, 스님들은 더할 나위없이 공손하게 공양을 받는다.


루앙프라방에 있는 동안 유일하게 나를 새벽에 일어나게 만든 이 의식 아닌 의식은 조금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새벽 네시에 하루를 시작하는 스님들이 유일한 끼니를 이웃으로 부터 공양 받는다. 이렇게 이웃들에게 받은 음식들로 아침과 11시부근의 점심까지 하루의 끼니를 해결한다. 탁발 수행이 진행되는 시간동안 공양을 하는 사람들도 승려들도 아무도 말을 할 수 없다. 승려들에게 접촉을 해서도 안되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운 손길과 정성만이 오간다. 매일 있는 일상같은 수행임에도, 그 엄숙한 분위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서서 사진을 찍기도 조심 스러웠다.


이 긴 행렬의 끝즈음에는 어린 아이들이 나와서 바구니를 들고 앉아 있는 경우가 있는데, 승려들은 맨발로 거리를 한시간여 걸어 이웃들로 부터 받아온 음식과 물건 돈 등을 이 아이들과 나눈다. 아시아의 최빈국 중 하나인 라오스에는 거지가 없다고 한다. 좋은 기후와 잘 자라는 농작물로 먹을 것이 풍부한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더 큰 이유는 이런 나눔의 삶이 이미 그들의 생활 속에 깊이 배어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탁발이 끝나갈 무렵 아침 노을과 함께 떠오르는 해를 보며, 탁발을 단순히 하나의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나눔의 아름다움 그리고, 개인의 영달을 위한 귀의가 아닌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한 종교로서의 가치, 승려로서의 희생을 깨달았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아껴 두끼만 먹는 승려들이 그 음식을 어찌 귀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그런 승려들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어찌 크지 않겠는가.





라오스로 떠나갈 때, 내 마음속은 전쟁터와도 같았다.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으로 가득차 있었고, 터무니 없는 크기의 걱정들을 짐에 잔뜩 싸넣어 짊어지고 들어간 터 였다. 어쩌면 나는 루앙프라방에서 위안이나 희망을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막다른 골목을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디로든 떠나야했고, 그곳이 어디였어도 상관 없을 일이었지만, 왜 나는 그때 루앙프라방을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방송 화면을 통해 스치며 봤던 그곳이 맘에 남았었는지, 번듯한 곳 보다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많은 곳을 찾고 싶었는지 알수 없지만, 그 곳을 택한 것은 두고 두고 잘한 일이라고 생각할 듯 하다.


복잡한 생각을 안고 찾은 루앙 프라방에서 나는 한량 처럼 지냈다.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어느때든 잠들고 싶을때 잠들었다. 걷고 싶은 만큼 걷고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들면 사진을 찍고, 처음 며칠은 글도 썼었는데, 그마저도 귀찮아져서 여행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인터넷에 접속도 하지 않고 지냈다. 매일 같이 잔뜩 쌓이는 이메일도 하나 읽지 않았고, 전화마저도 데이터 로밍을 꺼버려 카톡도 메세지도 받지 못했다.


처음의 며칠은 상투적인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마치 괴로워 하려고 괴로워 하는 사람 처럼 기계적으로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다녔다. 만일 내가 방콕같은 도시를 찾았더라면 괴로운 사람 코스프레 하듯 술에 취해 수쿰빗 뒷골목을 어슬렁 거리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루앙프라방의 거리를 목적없이 걷는 동안 이상하리만치 그런 생각들은 들지 않았다. 37도를 넘어가는 무더운 날씨에 카메라가방을 매고 8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야만 했던 푸시산은 무척 힘들었지만, 옷이 다 젖도록 땀을 흘리며 올라선 산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그 어떤 에어컨 보다도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아침이면 부지런히 자전거로 오토바이로 일터로 나서는 사람들, 탁발을 마치고 아침 예불을 드리는 승려들, 예쁜 교복을 입고 학교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이들. 내가 한달에 버는 돈보다 적은 돈을 일년에 버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그늘을 찾지 못했다. 마땅한 장난감이 없어 엄마의 일터 옆에 비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나뭇가지를 꺾어 가지고 놀던 아이 조차도 바쁜 엄마를 걱정이라도 하듯 보채지도 않고, 이방인의 눈길이 닿을 때면 부끄러운 얼굴로 엄마를 번갈아 보며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새벽 4시 그리고 오후 4시, 강건너 절에서 예불을 위해 울리는 북소리와 종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크고 웅장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지만, 워낙 조용한 곳이어서 강을 넘어 들리는 북소리가 마음을 울렸다. 그곳의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괴로운 사람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내가 갑자기 우스워 졌다.


이들이 사는 모습이 내게 어떤 교훈을 던진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내가 마음속에 어슴프레 가지고 있었지만, 실체를 들여다 보려 애쓰지 않았던 내 인생의 어떤 가치를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자세를 보여준 것 뿐이었다. 그것은 나만 알고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믿으며 살아온 내 스스로에 대한 마음의 경종과도 같았다. 대부분의 문제는 내 안에 있지 내 밖에 있지 않고, 그래서 그 해결책도 밖에 있지 않다. 


여전히 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좀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겠지만, 루앙 프라방에서 보낸 일주일동안 나는 내 욕심의 많은 부분을 그곳에 두고 왔다. 나를 나로서 바라보게 해준 시간을 내게 준 곳이어서 마음도 많이 두고 왔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두고 오지 만은 않고 빌려온 것도 있는데, 그것은 '존중'이다. 존중 받기만을 바래 왔던 내 인생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며 살 수 있도록, 그들이 넘치게 가지고 있는 '존중'하는 마음을 빌려왔다.


언젠가 다시 루앙 프라방을 찾게 되는 그날. 두고온 것과 빌려온 것들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다시 볼수 있을 그날이 다시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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