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주인, 프리마파시, 그리고 에쿠우스
"그날 나는 분명히 아니라고 말했다." (프리마파시)
"법정에서는 소년에게 종신형을 구형하려고 했어요. 이를 막기 위해서 나는 2시간 동안 열변을 토해야 했죠." (에쿠우스)
"원고는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바로 그날에, 아버지에게 하트 이모티콘을 붙인 문자를 보냈습니다. 왜 그랬죠?" (세계의 주인)
영화 <세계의 주인>
감독 윤가은
주연 서수빈
개봉 2025년 10월 (현재 상영 중)
그곳에서 인간, 즉 재판하는 자와 재판받는 자 모두, 사회가 써놓은 대본에 따라서 주어진 역할을 연기한다. 그 틀 안에서 인간은 자신의 서사를 주도하지 못한다. 다만, 존재하는 대본에 충실히 따라야 인정받는 '배우'가 된다.
핵심은 '진실'이 아니다. 각자가 예측하고 추종하는 바에 따라 상대방을 재단한다. 피해자, 특히 성폭력의 피해자는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보다는 '자신이 얼마나 피해자다운지, 얼마나 사회가 생각하는 피해자상에 부합하는지'를 증명해 낼 것을 요구받는다.
인간의 경험, 그중에서도 피해자의 혼란과 트라우마는 언어로 온전히 치환되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다. 하지만 법정은 이를 '법의 문장'으로 제시할 것을 강요한다. 피해자의 침묵이나 머뭇거림은 거짓말, 위증으로 해석된다. 전형적인 피해자의 프레임을 벗어나는 순간, 피해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람, 다른 꿍꿍이가 있는 사람으로 몰린다.
'성폭행당했다면서 하트 이모티콘 문자 보낸다는 게 말이 돼?'
'성폭행당한 직후에 태권도 시합에 나가고 심지어 메달까지 따고 웃으면서 사진 찍는 게 정상이야?'
가해자가 무서워서 그랬다고, 당시에는 자기가 무슨 일을 당한 지도 몰라서 정신이 없었다고 설명하는 피해자의 말은 그저 변명으로 치부된다.
그렇게, 사회적 대본에서 삭제된다.
연극 <프리마파시>
원작 수지 밀러
주연 이자람 김신록 차지연
2025년 8-11월 (현재 공연 종료)
성공가도를 달리는 변호사 테사. 성폭력 사건 가해자 변호를 맡으면서 늘 증거와 논리로 무장하여 원고인 피해자를 몰아붙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뒤집어진다. 바로 그녀 자신이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법정에 서는 순간에. 자신이 겨누었던 법의 논리, 그 화살이 자기 자신을 겨냥하게 된다.
여태까지 본인이 신봉하고 휘둘러온 법의 언어는 결코 피해자의 경험과 감각을 담아내지 못한다. 피해자의 언어를 법의 언어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왜곡과 오역이 발생한다. 진실이라고 할 법한 것은 그 과정에서 휘발되고 소실된다. (Lost in translation)
전문성의 부족 탓은 결코 아니다. 변호사인 테사는 법의 언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는 법의 체계가 인간의 경험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본질적 결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리마파시, Prima Facie. 라틴어로 '처음 보기에는'이라는 뜻. 반증이 없는 한 진실로 간주하는 사실이나 주장. 하지만 이 간주되는 진실은 진실이 아니라 되려 '진실의 누락'이다. 어찌 보면 '진실에 대한 폭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폭력은, 피해자로서의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테사가 타인에게 가해왔던 폭력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피해자는, 변호사는, 오역자는, 절규한다.
그럼에도 그 절규의 끝에는 다짐한다.
오직 어딘가, 어느 때,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연극 <에쿠우스>
국내 초연 50주년 기념 공연
원작 피터 셰퍼
제작 극단 실험극장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2025년 10월-2026년 2월 (현재 진행 중)
연극 에쿠우스에서는 법정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말 6마리의 눈을 찌른 17세 소년 알런 스트랑을 정신과 의사 마틴 다이사트에게 데려오면서 헤스터 살로먼 판사가 말한다. 법정에서는 소년에게 종신형을 구형하려고 했으며 본인은 이를 막기 위해서 2시간 동안 열변을 토했노라고.
소년 알런 스트랑, 그리고 그의 신 에쿠우스의 세상은 신성의 세계. 법정은 이와 대비를 이루는 인간의 세상, 즉 세속이다. 법정에서 내리는 판단은 신의 것이 아니라 제도의 굴레 속에서 인간이 내리는 것이다.
헤스터는 고통받는 알런에 연민을 품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그녀의 시선도 알런을 이해하거나 그 안의 신성을 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제도에 따른 관용'을 호소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럴 힘과 여유를 가진 자신에게 약간은 도취된 결과이기도 하다.
인간의 역사에서 법정은 신의 심판을 대체하기 위해서 탄생했다. 그러나 이 법정에 신은 없다. 신을 흉내 내며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인간만이 있을 뿐이다. 알런의 신은, 마구간에, 드넓은 '하하의 들판'에 있는 동시에 소년의 내면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