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더 문제다)
‘말이 칼이 될 때’ 이후 7년
왜 이제야 오셨나이까(?)
그저 독자로서 작은 투정이다.
그동안 정권이 바뀌고, 사회의 주류 목소리도 변하고, 차별금지법과 다양성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치열하게 오갔다. 그 과정에서 이런 책이 필요했는데. 일찍부터 ‘혐오’에 대해서 이야기해 온 사람이 더 눈에 띄었어야 했는데. 차별이 어떻게 혐오가 되며, 혐오가 어떻게 차별을 낳으며, 이것이 왜 피해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문제가 되는지, 그 화두를 힘 있게 던지고 주도해 줄 사람이 있었어야 했는데.
사실 책 출간이 오랜만인 거지, 홍성수 교수는 본인 계정과 언론 기고를 통해서 계속 목소리를 내오기는 했다. 그러니까 뭐, 반갑다는 소리예요. 소식을 접했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책 & 북토크 통합 구입을 눌렀다.
공간의 정체성이 주는 안도감
청계천 북살롱 오티움
11월 7일. 북토크 장소는 청계천 북살롱 오티움(Otium). 진행자는 책방언니 마냐 정혜승님. 이 조합에서 오는 ‘안전한 감각’이 있다. 이태원 참사에서 정부의 부재를 꼬집고 꾸중하는 글, 소수자를 향한 시선, 검찰 권력에 대한 감시의 시선,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틀이자 공간이니까.
때로는 내가 잘 모르는 책, 작가, 영화, 뮤지션이라 해도 ‘오티움에서 책방언니가 기획하고 진행하는 거니까’ 무지성으로라도 일단 가보면 멋지고 새로운 것에 눈을 뜰 수도 있겠지 -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래서 삶의 도처에 좋은 큐레이터들을 둬야 한다니까.
책이 괜찮다 싶어서 출판사를 보면
어째 어크로스일 때가 허다하더라
삶 속에서 내 경험과 취향의 저변을 넓혀가기. 취향이 맞는 친구를 가까이 두거나, 작가나 배우를 따라가도 되고, 결이 맞는 출판사를 면밀히 지켜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어크로스에서 나오는 신간을 무조건 보거나 추종하는 건 아니지만 ‘오호라, 이 책 괜찮아 보이는데’ 싶으면 - 그게 어크로스 작품인 경우가 종종 있다. 적어도 유의미한 표본 정도는 나온다고.
‘논문적 뇌‘로 사고하는 교수의 글을 이렇게 ’독자의 시선‘에 맞게 잘 만들어낸 것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원래 저자가 생각해던 제목은 ’차별이란 무엇인가‘ 또는 ’차별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이런 계열이었다는 후문.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이라니, 편집자의 감각 만만세입니다.
When words hurt
The invisible hurdle
여담인데 전작인 ‘말이 칼이 될 때‘는 영어로 ‘when words hurt'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난 이게 그렇게 마음에 들었더랬지. 간결하다. 원제를 많이 틀지도 않았다. 그런데 힘이 있어. 북토크 마치고 저자 사인 받을 때에 그 말을 했더니 -
‘아, 그건 제가 지은 거예요 (빵끗)‘
그렇군요. 책 제목은 출판사에게, 책의 정수를 담아내는 부제는 저자에게. 멋진 팀플레이네.
이번 책에도 영문 제목 내지는 부제를 붙인다면 뭐가 될까. The invisible hurdle? 너무 glass ceiling 과 비슷한가;
기승전
차별금지법
이 책, 제법 쉽게 읽힌다. 왜냐하면, 저자의 목표 지점이 아주 뚜렷해서.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서 한 길로 내달린다. (교수 저자들이 흔히 그러듯이) 설명을 과도하게 하거나 다른 주제로 새지도 않아. 주제를 던지고, 필수적 사례만 붙이고, 필요한 개념 정리만 덧붙인다.
결론은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왜냐면 - 의 구조.
그래, 그 어떤 글도 책도 세상에 뚜렷하게 무언가를 던져놓기 위해서는 ‘그래서 하려는 말이 뭔데’가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어야 해.
안심이 됐다
누군가가 계속
이런 이야기를 내놓아서
나로서는 관심 있는 주제와 톤앤매너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막상 이 책이 바꾸고자 하는 세상, 설득하고자 하는 대상들은 과연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까. (아니겠지. 책 후기 댓글에 별점 테러하는 놈들도 있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주어서 위로가 되고 안도가 되었다. 물론 그런 감정을 넘어서서 나도 무언가가 보탬이 되고 연대를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목소리를 내는 것부터가 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