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산책 | 명지대길

홍은동 또는 남가좌동

by 김젠비




충암고 삼거리에서 명지대로 이어지는 골목길.

가끔 출근길에 내비게이션이 골목길 지름길을 제안할 때면 이곳을 차로 지나가기도 하지만, 같은 장소를 주말에 찬찬히 걸어보면 또 다른 느낌이다. 아늑한 골목길과 왁자지껄한 대학가 사이의 틈바구니.







늘 병목 현상이 생기기 일쑤인 골목 초입.


내가 운전해서 지나갈 때에는 아침에 자녀들을 내려준다고 우측 차로를 가로막는 차량들에도 눈살이 찌푸리게 되고 노후하고 협소한 (혹은 아예 부재한) 주차 공간들에 혹평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같은 길도 주말에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걸어서 지나가면 이게 동네 골목의 분위기겠거니 하고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








아늑하고 커피를 잘 내리는, 제법 내 취향인 카페들도 있다.

이렇게 살살 걸어와야만 내 시야에 들어오고 발길을 붙들어둘 수 있는.


기억해 둘게.

오늘은 운동 가는 길이지만 다음에는 가방에 에세이 한 권 챙겨 들고 커피 마시러 올게. 메이커 그리고 증가로커피공방.


그나저나 이 증가로 커피공방 때문에 난 여태껏 이 길 이름이 증가로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명지대길 커피공방보다는 증가로가 어쩐지 더 마음에 들었던 건가요, 사장님.







어떤 가게는 '이런 위치에, 이런 규모로, 이런 업종으로 장사하는 이의 삶은 과연 어떨까'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어떤 가게 자리는 '어떤 모습으로 버티다가 자리를 뺀 걸까'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현 명지대길, 구 홍은동.


그런데 막상 이 골목은 생활권역으로 보면 남가좌 권역에 가깝다. 그야말로 ‘홍은동’과 ‘남가좌동’의 경계선을 타고 있는 골목이라네.


신주소 체계가 도입된 지가 어언 몇 년이더라. 덕분에 OO로, OO길, 이라는 명칭을 쓰면서 골목길에 대한 상념을 하게 되긴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머릿속의 동네 지도는 ‘OO동’인걸.







'이햐, 이런 게 골목 풍경이지'

라는 생각도 따지고 보면 미묘하다. 우리 대부분이 '이런 골목'에 살아본 기억이 없거나, 설령 있다 해도 이제 추억 속에서 조금 미화된 수십 년 전의 기억의 조각들일 텐데.

막상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버리고 골목의 주택에서 살라고 한다면, 교통의 번거로움에, 집 앞 야외 주차의 불편함에, 오르막길에 몸서리를 칠 거면서.








차 2대 지나가기도 빠듯한 골목은 좁고, 그나마 사람들보다도 온통 배달 오토바이들이 가득하다. 이런 풍경을 보면 배달음식 시켜 먹을 마음이 30% 가량 줄어든다니까. 배달앱을 통해서 주문하고, 내 눈앞에 놓인 음식의 현실.







이러네 저러네 해도 골목길 탐방이 즐겁고 가치로운 이유 중 하나는 역시나 숨은 맛집들이다.


가타쯔무리.

내 기준으로 서울 내에서 일본 사누키식 우동 최고로 잘하는 집이다.


주차도 안 돼. 대기줄도 늘 있어. 영업시간도 짧아. 매장 내부도 좁고 테이블도 몇 없어. 당연히 예약은 애당초 받을 수도 없어. 그나마 재료소진되면 문 닫아. 그러나 이 모든 조건을 압살하는 훌륭함.


그래. 뭐든 잘하려면 이 정도로 해야지. 남들이 아무 소리 못 하게. 아니, 설령 뭐라고 하더라도 그 소리를 상쇄할 만큼의 압도적인, 대체불가한.


아무래도 조만간 붓카게 우동 먹으러 오픈런을 한번 감행해야겠다. 주차도 안 되는 이 골목 맛집이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음에 감사하며.








저공해 전기차 이용자로서 (50% 요금 할인이 제공되는) 공영 주차장을 몹시 사랑하지만, 그것도 자리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이 골목에 거주하거나 근처를 자주 지나다닌다는 것은 매일의 이동을 위해서 마을버스에 의존해야 한다는 뜻일 텐데. 아아, 안 될 거야. 이미 데일리 운전자가 되어버린 나는 마을버스 유저로는 다시금 돌아갈 수 없을 거야.





어린이보호구역, 해제.

속도제한 30km, 해제.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에는 학교 인근 지역의 시속 30km 제한이 참으로 번거롭게 느껴진다. 어디 작은 골목도 아니고 큰길에 저런 제한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나 싶을 때도 있고. 그런데 또 내가 보행자 입장일 때에는 다른 시각, 다른 온도로 보인다는 현실.







차로 지나갈 때에는 보이지 않고, 기웃거리는 보행자의 속도로 다녀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 모르던 옷 수선집. 언제 한번 들러볼까 싶은 스터디카페.







아니, 아무리 속도제한은 해제됐다지만 그렇다 해도 보행자 많은 이 좁은 골목은 쿠팡 트럭들이 이렇게 슝슝 달릴 곳은 아닌 것 같은데...







명지대길의 끝은 바야흐로 명지대.

STOP.




#골목풍경by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