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결정권을 침해하지 말자.
다크패턴이라는 용어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정도로 꽤나 유명해졌다. 하지만 막상 개념을 알아도, 우리가 자주 쓰는 서비스에서 어떤 방식으로 녹아들어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과 그걸 뚜렷하게 체험하게 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1️⃣ 내 결정권, 돌려내라!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쿠팡 와우 구독료 인상 동의'에 본인도 모르게 동의하게 된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일단 나는 당했다. 그야말로 날치기 동의였다.
기존에 와우 멤버십 회원이 아니라서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맥락을 설명 드리자면..
쿠팡은 최근 쿠팡 와우 멤버십 구독료 인상안을 내 놓았고, 구독료 인상안에 동의하도록 유도하는 UXUI를 설계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괜찮은데, 문제는 바로 그 방식에 있다.
쿠팡은 이 동의 유도에 다크패턴, 그것도 완전히 교과서적인 다크패턴을 사용했다. 소비자 기만 그 자체인데 이건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캡쳐본이 더 와닿으리라 생각한다.
언뜻 보면 '잉 이걸 왜 몰라?'할 수도 있지만, 이건 쿠팡 고객들의 사용 행태를 봐야 이 행위가 기만임을 이해할 수 있다.
쿠팡을 한 번이라도 써 본 사람이면 "밀어서 구매" 버튼이 얼마나 편리한지 잘 알 것!
고객들은 결제창에 있는 정보를 심도 있게 확인하기 보다는 최종 가격만 확인하는 습성이 있는데, 쿠팡의 결제창은 이 습성에 아주 잘 맞춰져 있다.
결제 창에 있을 법한 자질구레한 정보를 생략하고 최종가 위계가 가장 중요도 있게 드러나 있는 형태로, 이 방식에 학습되다 보면 종국엔 거의 무지성으로 "밀어서 구매"라는 행위만 하게 된다.
...나 또한 그 학습된 유저고, 쿠팡에서만큼은 결제 시 "밀어서 구매"한다는 멘탈모델이 장착돼 있다.
!!!!이렇게 우릴 길들여 놓고!!!! 이 "밀어서 구매"라는 멘탈모델에 "월회비 변경에 동의하고 밀어서 구매"를 심어 두다니.. 진짜 나빴다..(엉엉 ㅠㅠ)
이런 행태는 "편취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다크 패턴의 4가지 범주에 대한 설명은 아래 정리해 둘 테지만,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소비자가 알아채기 어려운 인터페이스의 작은 조작 등을 통해 비합리적이거나 예상치 못한 지출을 유도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구매 창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소비자의 습성을 활용해서 똑똑한 전략을 펼쳤다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절대 똑똑하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한 철 장사로 끝낼 것도 아니고.. 브랜드 이미지가 어쩐지 구질구질해진다. (워딩이 세서 송구.. 그러나 고객으로서 느끼는 인상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아, 의외로 잘 살펴 보면 위쪽에 고스트 버튼 형태로 "나중에 결정하고 밀어서 구매"라는 버튼도 있기는 하다. 나름대로 선택지를 주기는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버튼의 형태를 살펴보면 '고객들이 이 버튼을 보지 못 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절실히 느껴진다. 폰트 크기, 컬러, 형태 모든 것이 눈에 최대한 덜 띄게 디자인 되어 있다. 나는 솔직히 이 버튼 위쪽에 있는 약관과 버튼이 거의 비슷한 위계로 느껴졌다. 그만큼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럼에도 굳이 굳이 저 버튼을 눌러 잘 피해 다녔는데, 한 날 정신 놓고 "밀어서 구매"해버려서 결국 동의하고 말았다.. ㅠㅠ)
결정적으로 불쾌한 인상을 가지게 된 건 반 강제 동의 후 사후 대처였다.
내 운명(ㅋㅋ) 자기 결정권을 잃은 나는 몹시 기분이 나빠져서 고객센터에 동의 철회 관련하여 문의를 드렸었다. 장황한 답변이 왔지만, 결국 그 요지는 "자발적 동의이므로 철회가 불가능하다"였다. 음.. 이걸 자발적으로 동의했다고 볼 수가 있는 건지 의아하다. 손만 내 손이었지 이 동의에 내 의지가 단 한 톨이라도 들어갔나?
아무튼 철회는 불가능 하지만 원하면 추후에 멤버십을 해지하는 방법이 있다고 안내를 받긴 했다^^..
아무튼.. 불만이 있으면 멤버십 해지하는 방법 밖엔 없는 듯 하니, 구독료 인상 직전까지만 쓰고 해지하려고 한다. 스스로 고민해 보고 그 가치에 충분히 동의를 한다면 내가 어련히 알아서 동의하고 계속 이용했을텐데. 이런 식은 많이 아쉽고 안타깝다.
(실제로 동의 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고, 동의하는 쪽에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말 하듯이 다른 방법도 충분히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예컨대 구독료 범위를 나눈다던지, 멤버십 가입자와 비가입자간 혜택 차이를 조금 더 준다던지.. 많은 고민 끝에 결정된 게 이 전략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내부 반발도 분명 있었을 거 같은데..
소비자의 결정권을 소비자에게 되돌려 주세요.. ㅠ
개인적으로 쿠팡을 보면 도떼기 시장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복잡성이 짙고 와글 와글, 시각적으로 소리 치는 UI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복잡한 UXUI가 무조건적으로 나쁜 건 절대 아니다. "우리가 가진 상품이 이렇게나 많다"를 내세우고 싶다면 오히려 적합한 형태라고도 생각한다. 마치 테무나 알리 같은 중국 커머스나 일본의 돈키호테 느낌으로. (다만 내 취향은 아님)
이 도떼기 시장 같은 느낌은 곳곳에 숨어 있는 노골적인 다크패턴이 더 강화하는 것 같다.
요즘엔 테무를 좀 자주 쓰게 되는데, 테무를 볼 때 느끼는 감정과 쿠팡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비슷하다.
아무튼, 기왕 이것저것 다크패턴이 들어가 있으니 쿠팡으로 대표적인 다크 패턴에 대해 살펴보고 가면 좋을 것 같아 글을 쭉 이어가 본다.
(** 쿠팡에만 이런 다크패턴이 들어가 있는 건 절대 아니다. 다른 서비스에도 다크 패턴이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서두를 쿠팡으로 끊었기 때문에 쿠팡으로 이어갈 뿐이다!!! 나는 쿠팡 안티가 아니다!!!!! 오히려 헤비 유저다..ㅠㅠ 오해 금지..)
다크패턴은 대표적으로 편취형, 오도형, 방해형, 압박형 이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씩 차례로 살펴보자.
위에서 언급한 '월 구독료 인상 날치기 동의'가 대표적인 편취형이다.
이 외에 쿠팡 리뷰를 보다 보면, "가격이 전에 볼 때 보다 더 비싸졌어요" 또는 "좀 더 저렴해졌네요" 라는 글을 자주 보게 된다.
가격이 실시간이라는 소리도 있을 정도로 공공연한데, 이렇게 소비자 몰래 가격을 싯가로 인상/또는 인하하는 형태도 편취형 다크패턴에 속한다.
물론 그 목적 자체가 단순히 소비자들의 "금전 갈취"에 있진 않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을 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저가로 판매하여 매출 증대와 더불어 소비자 이익을 지향하는 바일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잦은 구매가 조정은 결코 고객 입장에서 좋은 경험이 아닐 뿐더러(심지어 개인별로 금액이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시장 생태계에 불균형을 일으킬 수도 있다.
개인적으론 이렇게 실시간 가격 정책을 편다면, 소비자에게 고지를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테무처럼 이렇게 한 줄이라도 고지를 해 준다면 실시간 가격 정책의 좋은 면이 더 부각될 수 있을 듯.
쿠팡에 들어가면 들어갈 때 마다 다른 팝업/바텀 시트가 뜬다. 그것도 거대하고 화려한 팝업으로, 오클릭이 유도될만큼 크고 화려하다. (닫기 버튼은 작고 콘텐츠 클릭 영역이 넓은 걸로 봐서는 방해형이라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그 광고를 보고 무언가 구매해본 적이 있나, 생각해 보면 나는 없다. 처음 몇 번은 혹해서 들어갔는데 결국 광고 하고 있는 그만큼의 가치는 아니었다던지, 나에게만 국한되는 혜택이 아니었다던지. 대체로 '속았다'는 생각이 드는 광고 팝업들이 많았다.
이런 식으로 실제 값어치보다 더 높아보이게 포장하거나, 나만을 위한 혜택인 것 처럼 보이게 하는 등의 패턴을 오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쿠팡 다크패턴 중 가장 유명한 "해지하기"플로우. 해지하기 최종 단계까지 도달하기가 정말 오래 걸린다. 과정 자체도 길지만, 그 과정에서 감정을 흔드는 발언으로 마음을 뒤흔들기도 한다.
이런식으로 기업의 이익을 위해 고객이 원하는 행동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하도록 방해하는 것을 방해형이라고 일컫는다. 사실 쿠팡 말고도 대부분의 서비스가 구독 해지를 하고자 하면 "바짓가랑이 붙잡기"전법을 쓰는 건 사실이다. 매출과 직결되어 있으니 어느정도는 그러려니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열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구독을 유지하면 좋은 이유 / 이탈 하고자 하는 이유에 대한 해결책 / 왜 해지하는 지 정도 선에서 그치되, 긴 플로우로 지쳐떨어져 나가게 하기 전법과 너무 나간(..) 감정 호소는 지양하자.
'해지하기'도 고객에게 전달되는 중요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좋은 이별은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장바구니 내 담긴 물품의 "00:06:57 내 주문 시 새벽 도착"이라는 문구라던지, 품절 임박/잔여 상품 갯수 표시같은 게 이 압박형에 해당한다.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보면 사용성 향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하지만, 시간 제한/갯수 제한 등으로 빨리 사야할 것 같은 압박감을 주는 건 분명하다. 홈쇼핑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전에 쿠팡에서 멤버십을 해지하고자 하면 "해지 즉시 혜택이 모두 사라진다"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이런 류의 문구도 고객의 심리를 압박하여 고객이 하고자 하는 행위를 막는 패턴에 속한다.
* 테무의 경우 n개 판매, '방금 다른 소비자가 이걸 구매했다'라는 것까지 표시하기도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수시로 A/B 테스트를 진행하며 데이터 드리븐 하는 모습이 사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멋져보일 때도 많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공급자 중 고객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는 게 프로덕트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는데, 고객을 이렇게 속이면서까지 하는 게 맞을까? 그럼에도 기업 제 1의 목적은 매출과 그 존속이기에 이게 맞는 걸까? 참 딜레마다.
물론 사기업에서 이익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고 본다. 포기 해서도 안 되고.
손익분기 때문에 분명 내부 목표치가 있을텐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런 무리수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는 짐작 된다.
일단 한 번 동의를 하고 나면 아무래도 멤버십을 이어갈 확률이 조금이나마 더 높아지기 때문에 이런 설계가 나온 걸까? 한 번도 안 쓴 사람은 있어도 한 번 쓴 사람은 없으니까? 모르겠다.
아무튼 회사의 이익과 사용자 경험, 그 절충안을 찾는 건 너무나 어려운 과업이기에 이를 위해 디자이너가 존재하는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디자이너는 숫자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솔직히 이 일도 데이터로만 살펴 보게 된다면 소비자를 기만하든 말든, 결과론적으로는 좋은 지표를 얻을 수 있을테니 완전한 실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엔 숫자 이외의 것들이 더 많다.
내가 지금까지 쓴 건 해당 회사의 내밀한 상황을 알지 못하는 외부인의 시선이기에 막상 그 맥락을 듣게 되면 '그래서 그랬구나'하는 지점이 분명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코 멋진 해결방법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해와 인정은 다른 영역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최하급의 솔루션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사기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일반 사람들보다 똑똑해서일까? 모두 그렇게 사기 치는 방법을 몰라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걸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덜 똑똑해서,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러지 않는 거다.
말이 길었지만 아무튼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행위를 이용해서 동의를 '편취'했음은 자명하다.
적어도 소비자의, 사용자의 자기 결정권을 가로채지는 말자.
- 이상 쿠팡에 실망한 쿠팡 헤비 유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