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내리지 못하고 핀 꽃들
“요즘 목적 없이 순수하게 좋아서 만나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다 필요에 의해서 사람 만나는 거지. 더구나 이 나이 되면 다 자기 이익 위해서 사람들 사귀는 거야.”
얼마 전에 잠깐 스쳐 지나간 사람에게 들었던 말이다. 나는 40대 중반이 되도록 사람을 그런 마음으로 대해본 적이 없었기에 너무 깜짝 놀랐다. 하지만 곰곰이 내가 그 동안의 인간관계에서 고민했던 경우들을 회상해 보니 그 사람이 해준 말이 사실이고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말을 해준 사람조차 나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얻지 못하자 가차없이 연락을 끊고 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목적과 필요에 의해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들만 만난다. 특히 이민 사회는 더욱 그렇다. 나는 이민 사회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숨기고 싶어하고 자신을 과잉 방어하기 위해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을 보곤 한다. 다달이 집값, 식비, 생활비를 벌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고된 이민자들의 생활에서 순수한 우정과 배려가 피어날 여유는 없을 것이다. 고생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더라도, 영원한 이방인의 정체성으로 인해 진정으로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안정감은 갖기 어려운 고독한 삶이기 때문이다.
목적과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이민 생활의 고달픔과 외로움의 틈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달콤하게 파고든다. 그러다가 꽤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거나 원했던 이익을 얻지 못할 것 같으면 가차없이 연락을 끊고 사라진다. 원하는 목적을 이룬다면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이곳에서 사람에게 접근하는 가장 흔한 목적 중 하나는 전도이다. 너무나도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것처럼 애틋한 눈빛으로 다가왔다가 내가 교회에 전혀 관심 없어 보이면 어느 순간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나는 그저 친구와 가끔 함께 하이킹하고, 좋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맛있는 것을 먹고, 산책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친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러 번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목적을 품고 만나는 관계는 시간이 흘러도 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가끔 너무 무방비 상태로 보인다는 말을 듣곤 했다. 그런 말을 해준 사람들은 이곳에서 절대로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조언해줬다.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만 관계를 맺는 사람들 틈에서 마음을 활짝 열고 최고의 진심과 존중으로 사람을 대하는 내가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오히려 상대방을 두렵게 만들기도 하고, 또한 당연히 자주 만만해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내 모습을 버리고 싶지 않다.
나는 사람들을 각자의 예쁨을 간직한 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와 다른 방식으로 계산적인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땅속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불안하게 흔들리며 살아가야 하는 꽃들이다. 끊임없는 불안함 속에서도 자신의 꽃이 시들지 않도록 나름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땅속에 단단히 박혀 있지 않더라도, 당신은 이미 뿌리를 갖고 환하게 피어난 꽃이라고. 그러니 좀더 마음을 열고 순수하게 사랑하며 살아도 별일 없고 괜찮을 거라고. 당신도 꽃이고, 나도 꽃이고, 우리 모두가 흔들림 속에서도 강하게 잘 견디고 있는 눈부시고 아름다운 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