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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Jan 05. 2022

드디어 탈출 성공한 그날

가정폭력은 절대로 참는 것이 정답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염원하던 브런치 작가가 되어 첫 글을 무엇에 대해 쓸지 한참 고민했다.

어둡고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사실 힘겨운 고통의 터널 안에서도 은근한 빛을 볼 수 있듯이 나의 일상은 생각처럼 그렇게 어둡고 힘들지만은 않기에 나의 이야기를 솔직히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처음 발행하는 글은 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유학 생활 중 나에게 끈질기게 구애한 교포 총각과 결혼했다가 힘들게 탈출한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사실 이번 결혼이 나에게는 두 번째 결혼이었기 때문에 절대로 이혼하지 않으려고 결심했고, 멀쩡한(연애 초반 겉보기엔 멀쩡해 보였던) 교포 총각이 아이가 셋이나 있는 가난한 유학생인 나와 결혼한 것이 고마워서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남편의 폭언과 폭행을 몇 년 동안 꾹 참았다.


내가 어떤 조건이었든 오랜 기간 서로 좋아서 사귀었고 결혼까지 했다면 동등한 배우자로서 스스로가 당당했어야 하는데, 전남편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선을 넘기 시작할 때에 나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며 스스로 을의 입장을 고수했다. 이런 납작 엎드린 태도가 미성숙한 인격이었던 전남편이 더 당당하게 악행을 저지르도록 만든 것 같다.


나는 세 아이를 훌륭하게 잘 키우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도 모두 잘하면서 싱글맘으로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한국에 있을 때 싱글맘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았던 기분 나쁜 수모와 선을 넘는 못된 말들 때문에 남편이라는 울타리가 생겨서 너무 좋았고 그 울타리를 계속 지키면서 이제는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살고 싶었다. 하지만 폭력은 아주 작은 씨앗도 결코 그냥 넘겨서는 안된다는 진리를 피눈물을 대가로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 그날 폭력의 원인은 김밥이었다. 전남편과 오랜만에 훈훈한 분위기에서 김밥을 함께 만들었는데 갑자기 소금을 가져와서 그릇에 듬뿍 담더니 김밥을 소금에 푹푹 찍어먹는 것이 아닌가. 이미 김밥에 간이 다 되어있는데 소금을 또 그렇게 많이 찍어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또 주먹질이 시작되었다. 그 소리를 듣고 방에 있던 큰아들이 뛰어나와서 나를 보호하려고 내 몸을 감쌌는데, 그놈이 내 아들의 목을 조르고 구타를 시작했다. 급하게 911에 신고를 했고 미국 경찰들은 정말 느릿느릿 30분 후 도착해서는 자초지종을 듣고 그놈을 체포해갔다.


나는 덜덜 떨면서 서투른 영어로 그동안 있었던 그놈의 폭력들을 말하면서 집안 곳곳의 그놈의 폭력의 흔적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경찰은 내 말을 막으면서 오늘 있었던 일만 말하라고 했다. 한국이었으면 그 동안 이렇게 폭력이 누적된 것을 더 참작해서 들어줄텐데 참 답답했고, 진작에 폭력을 당할 때마다 신고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그리고 나만 참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 아이까지 큰 피해를 입게 되어서 나는 죄책감으로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사실 이미 이혼을 결심하고는 있었는데,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 내년에 큰애 대학을 아주 멀리 있는 지역으로 보내고 큰애를 따라가서 돌봐주겠다는 핑계로 자연스럽게 탈출할 계획이었다. 가정 폭력 때문에 이혼을 결심했으면 하루라도 빨리 실행에 옮겼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안일했던 것 같아서 지금도 생각하면 아이에게 미안하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무튼 그놈이 체포된 후 정신 없는 와중에 다행히 나는 접근금지명령(restraining order)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인터넷을 검색했고, 내가 사는 지역은 법원 웹사이트에서 신청할 수 있어서 바로 신청하고 판사와 전화 통화 후 접근금지명령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후로 그놈은 우리 집에 얼씬도 못하게 되었고 아이들과 나는 점차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쉽지 않은 과정들이 있었는데 미국 가정법의 답답한 제도와 절대로 피해자 편이 아닌 미국 경찰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써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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