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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Jan 11. 2022

영어 못하는 한국 아줌마의 미국 취업 도전기

다시 일어서는 하루

팬데믹 전까지는 안정적인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팬데믹 이후 일이 거의 없어졌고, 전남편이 통장의 돈을 모두 빼돌렸기 때문에 나는 말그대로 통장 잔고 0달러의 빈털털이가 되었다. 맨손으로 시작하는 것이 내 인생에서 처음이 아니었기에 두렵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큰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으로 무기력하고 우울한 상태로 누워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이렇게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며 방황하는 내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용기를 내서 바깥 세상에 나가야 했다.


나는 통제적인 전남편의 간섭 때문에 미국 이민 5년차가 되도록 혼자서 외출해본 적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왕년에 유학 생활까지 했었는데, 결혼 후에는 ‘헬로’ 한 마디도 할 기회가 없이 집안에 갇혀 살았던 것이다. 본의 아닌 유사 감금 생활 때문에 실제로 사람 만나는 일도 드물었기에, 처음으로 혼자 마트에 가서 우유를 사는데 ‘땡큐’조차 입을 떼기 어려웠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거나 간단한 상호작용하는 상황 자체가 두려웠다.


내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정말 답답하고 슬펐다.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자신감이 바닥이었고, 수많은 구인 광고를 보면서 이 중에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더더욱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한 한국 업체의 구인 광고를 보게 되었고, 아직 운전도 못하지만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가게라서 용기를 내서 연락을 했다. 더구나 경험이 없어도 기초부터 가르쳐준다는 말에 밖에서 일해볼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가게에 가서 면접을 보고 일자리를 구했다. 비록 최저임금이었지만 처음으로 밖에 나가서 사람들 틈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사장님이 한국분이어도 직원들은 다 미국인들이기 때문에 영어로 의사소통해야 하지만, 그래도 한국인이 경영하는 가게라서 부담이 덜 느껴졌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서투른 일이었기에, 초기에는 좌절도 하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참았다. 이 일을 정말 잘한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버티면서 잘 배워보고 싶어졌다. 프리랜서 시절보다 수입은 훨씬 적지만 그래도 매달 고정 수입이 생기니까 생활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고, 직장 분위기도 따듯하고 좋은 편이라서 사람들과 기분 좋게 소통하면서 나의 밝은 본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미국 취업을 성공적으로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마흔 중반에 머나먼 외국에서 빈털털이로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불안정한 상황이지만 이렇게 하루하루 평온하고 성실하게 살다보면 더 좋은 날이 올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어떤 날은 10시간씩 서서 일하고 집에 와서 말할 기운도 없이 쓰러져 잠들어도 별탈 없이 지나간 하루에 깊이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나를 일어서게 하는 힘은 내 안에 있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아이들에게 받는 무한한 사랑 덕분일 것이다. 희망이 있으니 불행에 덤덤하게 대응하며 따듯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이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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