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자아를 찾지 못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생겼으니 적응을 하느라고 바쁘기는 한데 여전히 게으른 본성은 나를 괴롭힌다. 꽤 사람을 만났다. 연락하는 사람이 늘어난 기분이다. 고작 해봤자 3~4명이지만.
침대를 새로 장만했고 협탁과 무드등을 주문했다. 시선을 확장시키고 싶어서 영화관에 가서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좀 많이 봤다. 팝콘도 멕이고 스프라이트 제로도 멕였다. 돈 나가는 건 신경쓰지 않았다. 일단은 나는 그게 필요한 것 같아서. 내가 본 영화 중에는 <굿 윌 헌팅>도 있었는데 나도 이 모든 것은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윌처럼 나도 바보같은 짓을 많이 하고 인생을 막 살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나의 불행과 비참함은 내 탓이 아니다. 윌이 아직 21살이라는 점이 부럽기는 했다.
<오만과 편견>도 봤는데 나는 오만하고 편견마저 있어서 짝꿍이 없나 보다. 내가 오만할 테니 편견있는 남자가 나타나줬으면 좋겠다. 날 편견 어린 시선으로 내려보는 그 덩치 큰 남자의 코를 납짝하게 할 거다. 그럼 그 남자는 코가 꿰여서 나한테 움짝달싹 못할 테지.
귀가 닳도록 들어봤지만 막상 읽지는 않았던 <위대한 게츠비>도 빌렸다. 빌리려고 책을 꺼내들었는데 조금 망설여지던 걸, 뒷면의 줄거리 요약을 읽고서 바로 빌리기로 마음 먹었다. 주인공 남자에게서 나의 모습을 비쳐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배도 채우고 마음도 채우고 싶다. 아이 나와 작별하기 싫지만 이제는 아주 천천히 어른이 되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