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피 흘리는 따뜻한 우정

by 온지엽

난 애니 <바나나 피시>를 진짜 인상 깊게 봤다. 그 주인공이 정말 한마디로는 단정 지어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아동학대, 성폭행의 피해자로 나와서 보기 끔찍하기는 한데, 그것 말고 그 두 주인공의 관계만 보면 명작이다.

주인공은 17살 애쉬와 그보다 2살 더 많은 에이지다. 애쉬는 녹안에 금발을 한 미소년으로 뉴욕을 거점으로 한 10대 패거리의 리더다. 총 쏘는 재능이 있고 머리도 비상해서 수학, 경제, 세계정제, 해킹실력 등이 대학 수준이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조직폭력배 디노 밑에서 상류층 매너와 고등교육을 받았다. 애쉬는 어려서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와 이복형이랑 살았다. 근데 7살인가 8살에 성인 남성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래서 그 나이에 처음으로 총으로 사람을 쏴 죽였다. 아빠는 애한테 관심이 없고, 형은 전쟁을 나가서 11살에 아까 말한 디노가 거둔다. 하지만 디노는 아동성애자다.


에이지는 일본인인데 동안이고 기자의 조수다. 전직은 장대높이뛰기 선수. 부상으로 방황하다가 뉴욕의 10대 패거리를 취재하려는 기자를 따라 뉴욕으로 왔다. 목소리가 차분하고 눈이 서글서글하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 경계 많은 애쉬에게 안정감을 줘서 둘은 깊은 우정을 쌓는다. 에이지는 여러 번 애쉬에게 함께 총이 없는 일본으로 가자고 한다.


애쉬는 에이지를 집착할 정도로 좋아한다. 애쉬는 자유롭고 싶어 하는데, 막다른 길에 들어섰을 때 에이지는 쇠파이프를 이용해서 새처럼 날아 탈출했다. 애쉬가 악몽에 자다 말고 깨어나서 덜덜 떨 때에도 에이지가 옆에 있어주었다. 애쉬는 자신을 두고 살인자에 남창이라고 했다. 친구를 쏴 죽인 자신이 무섭다고 했다. 그 독립적이고 카리스마 있고 반항기 가득한 애쉬는 흐느껴 울었다. 곁에 있어줘, 영원히는 아니어도 돼. 지금만으로도 좋아하면서 울었다.


둘이 싸운 적이 있기는 하다. 항복하는 상대를 쏴 죽인 애쉬한테 에이지는 꼭 죽여야만 했냐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애쉬는 '네가 뭘 알아. 힘이 다야. 그게 내 세상이야.' 하고 언성을 높였다. 에이지가 '넌 재능이 있어. 넌 재능 없는 사람의 처지를 몰라', '지금의 넌 나와 쇼타(아마도 쇼타였을 거다. 기억이 가물하지만)가 아는 애쉬가 아냐' 하고 말한다. 그러자 애쉬는 '재능? 무슨 재능? 사람 죽이는 것도 재능이야? 재능 없는 사람 기분 아냐고 했지? 그럼 넌 내 기분도 알아? 사람 죽이는 재능 따위 바란 적 한 번도 없어!' 하고 나가버린다. 그리고 도서관으로 가서 혼자서 책을 읽는다. 애쉬는 똑똑한 아이니까.


애쉬는 에이지의 안전을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희생하고 영-영 디노 밑에서 '양아들'로 살기를 택한다. 하지만 자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물만 마시고 급성 거식증에 걸려버린다. 애쉬의 원래 이름은 아슬란 제이드 칼레리스인데, 길거리에서는 애쉬 링크스로 불린다. 야생동물처럼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고, 자유롭지만 외로운 존재- 이런 의미로 링크스다. 링크스는 스라소니라고 한다.


어찌어찌해서 애쉬는 구출되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피습을 당한다. 에이지가 남긴 도쿄행 티켓을 보고 그를 따라 일본으로 가려 달리던 참이었다. 애쉬는 피를 흘리면서 공항이 아니라 도서관을 향한다. 에이지와 싸우고 나서 도망쳤던 그 도서관, 에이지가 자신을 찾아와서 화해의 말을 건네줬던 그 도서관으로. 그리고 에이지가 준 편지를 읽는다. '너는 나보다 강하고 똑똑하지만 왜 나는 널 지켜주고 싶었던 걸까? 뉴욕에는 사요나라-를 하겠지만 너에게는 사요나라-라고 하지 않을 거야. 너는 내 가장 소중한 친구야' 이런 내용의 편지였다. 애쉬는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편한 웃음을 지은 채로 엎드려서 잠든다.


한편으로는 난 내가 애쉬가 되기를 바랐다. 천재적이고, 싸움도 잘하고, 총도 잘 쏜다. 비록 엄마는 떠나고, 아빠는 무관심하고, 이복형은 전쟁에서 알 수 없는 의문의 약에 중독돼 죽지만, 그리고 어려서부터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하지만. 철 없이 그런 애쉬가 부럽다. 그런 능력, 그런 미모, 그리고 결국엔 어린 나이에 사망.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아니고 남이 죽인 거다. 사랑하는 친구의 따뜻한 말들을 읽으며 추억의 장소에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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