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와 덕혜옹주
아빠는 어려서부터 나를 아가씨, 똥깨씨라고 불렀었다. 어릴 때 나는 정말로 내 막내이모부가 옆나라 왕자님인 줄 알았다. 이모는 어떻게 왕자님이랑 결혼했어? 하고 국제전화로 물었다. 이모는 왕자님이 자신을 끈질기게 따라다녀서 결혼했다고 했다. 이모부는 내가 커서도 '아직도 내가 왕자님이냐' 물으셨다. 나는 '당연하죠- 한번 왕자님은 영원한 왕자님이죠-' 했다.
저번에 몇 년 만에 외가를 봤을 때에도 막내이모부가 날 공주님, 공주님 하면서 챙겨주셨다.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공주님- 하셨다. 많이 먹으라고 하고, 용돈도 챙겨주셨다. 나는 그 돈을 사양 않고 그냥 받았다. 마지막까지 이모부는 공주님 잘 가-! 하셨다.
덕혜옹주는 고종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자랐다고 한다. 고종은 궁 안에 직접 옹주만을 위한 유치원을 만들었다. 옹주는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를 가마 타고 이동했다. 아들부자 고종이 나이 들어 얻은 외동딸이니 그만한 딸바보가 되는 건 호들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기도 일제강점기라서 내 맘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데 꼬물이 공주님이 얼마나 귀여웠을까.
근데 그 공주님은 나중에 정신질환을 얻는다. 어릴 때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갔다가 아빠가 죽는다. 일본에서는 보온병도 따로 들고 다녔다고 한다. 커서는 일본남자랑 결혼한다. 내가 보기엔 꽤 인물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인데 그 당시 조선 신문에서는 그가 애꾸눈이라고 보도했다고 한다. 옹주는 어느 날 밤 갑자기 히스테리컬 하게 깔깔 웃기도 하고 여기저기 배회하기도 했다.
그녀는 나중에 나이가 50 정도 되었을 때 비행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근데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 이런 의심마저도 하지 않는, 멍한 얼굴로 왔다. 그래도 내가 이모부 보고 '한번 왕자님은 영원한 왕자님'이라 했던 것처럼 덕혜옹주도 한번 공주님은 영원한 공주님이다. 덕혜는 조선의 사람이다. 언제나 조선의 사람이었고 언제나 조선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