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주희 Jan 21. 2020

푼크툼과 노에시스

공간감성 #2 동대문아파트+밝은방

동대문아파트에서의 공간적 경험


주말 점심, 여러 사람이 붐비고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정신없는 동묘를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밝은 낮에 낯선 것들의 소리나 모습은 부담스럽게 느껴져 이어폰과 마스크를 끼고 돌아다녔다. 낯설지 않은 간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고 어떤 이끌림 때문에 자연스럽게 건물의 문을 통과하였다. 동대문아파트라고 적힌 세로형 커다란 간판과 만지면 삐그덕 거릴 것 같은 문은 건물에 비해 매우 작은 부분이지만, 두 팔 벌려 오라고 힘 있게 손짓하는 것 같았다. 문을 통과하자마자 보이는 오른편 경비실은 경계가 무색할 만큼 차분했고, 살짝 비추는 안쪽의 중정에 이끌려 또 한 번의 문을 통과하였다


동대문아파트 입구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프레임을 넘어서니 6층까지 뻥 뚫린 장방향의 중정과 정면에 하늘로 시선을 이끄는 계단실, 그 양옆으로 무겁게 레이어링 된 복도와 집들이 한눈에 보였다. 오후 3시에 차가울 정도로 적막했고 중정을 제외한 복도는 어두웠지만 층마다 중정을 가로지르는 빨랫줄과 연결다리, 복도의 화분들, 쓰임이 의심스러운 바닥의 장독대와 어디에 둘지 모르게 쌓인 생활용품들이 그곳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릇 닦는 소리와 티비 소리가 들렸지만 움직이는 것이라곤 빨랫줄에 널린 옷 밖에 없었다. 그 시끄러웠던 동묘를 완전히 잊고 외부로부터 차단된 다른 세계 같았다. 


빨랫대와 중정


건물의 분명한 방향성으로 안쪽 계단실까지 걸었고 한 층씩 올라갈 때마다 완성되는 외부 나무와 건물들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계단실은 빛과 바람이 충만했지만 쇠창살로 인해 외부로 완전히 열려 있지 않았다. 모든 층은 낡아서 허술해 보이지만 정확한 창살이 있었고 한층 한층 올라갈 때마다 보이는 안쪽의 다른 어두움은 미묘한 공기 차이를 나타냈다. 복도는 순환이 가능하도록 반대편 계단실로 이어졌고 중간의 연결다리는 환하게 햇빛을 받으며 하늘과 양옆의 복도와 서로 다른 대문들을 보기에 딱 좋게 세팅되었다. 그 중간에 가만히 서서 시선을 돌려가며 주위를 둘러보면 아래층에서 무거웠던 느낌들이 빨랫줄처럼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계단을 내려와서 다시 중정을 거쳐 아파트 대문을 나설 때, 다시 맞이하는 사람들이 반가웠다.



시간성을 부여하는 사진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사진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체험들이 공존하는 가치를 부여해준다고 말한다. 과거의 존재와의 소통을 통해 시간적 공간을 열어준다. 사진은 과거의 대상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부재를 말하기도 한다. 바르트가  밝은 방에서 중요한 핵심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이다. 스투디움은 전통적 현상학의 시간성을 바탕으로 객관적 시간에 따른 비시간적 구성을 지니게 되고 의식 속에 이미 판단된 사태로서 작용한다. 반면 푼크툼은 물리적인 객관적 시간에 대한 현상학적 환원을 수행함으로써 선험적인 내재적 시간을 구성한다. 바르트는 시간의 통용적 개념을 말하는 스투디움이 아닌 푼크툼으로서의 시간으로 사진을 바라보며 존재하고 있음(노에시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루이스 페인의 초상>, 1865

바르트는 위 사진을 죽음과 죽게 될 사나이라고 말한다. 사실은 알 수 없으나 바르트는 사진 속 인물을 통해 죽음의 표정을 본 것이다. 


사진은 찰나의 순간을 찍고 영원히 간직하는 것이다. 공간 역시 사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지만, 그때의 그 '분위기'는 촬영자의 기억에만 남아있다. 실제 우리는 직접 공간을 경험하며 그 시간의 공기를 통해 그 공간을 기억한다. 동대문아파트에서의 공간적 경험과 사진으로의 기억은 사실상 다를 수 있으나 경험한 분위기만큼은 동일했다. 2020년 주제인 '대비'적 감정은 이때부터 시작인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빛과 공간의 현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