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깊은 밤 푸른 달, 차지안 입니다

by 제나랑


녹사평역 근처에 위치한 명성대학병원 앞.

한 여자가 병원 입구 로비를 지나 [암통합진료센터] 안으로 들어간다.

진료실 안 의사 앞에 앉아 담당 주치의의 말을 기다린다.


“차지안님, 췌장암..말기...입니다. 초기에 명치나 복부 통증은 애매해서 진료받지 않고 넘기는 분들이 많아 이렇게 진행되고 나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췌장은 등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요통 통증까지 왔다는 건 이미 많이 진행된 겁니다. 폐, 간 등 비교적 먼 장기들로까지 전이가 됐기 때문에...“

“저 얼마나 남았나요? 그것만 말씀해 주세요...”

“치료하시면 생존율 높일 수 있습니다. 단정 짓고 그렇게 판단하지 마시고...”

“치료...안 합니다. 이미 말기라면서요...초기도 아닌데, 생존이 보장된 것도 아닌데, 고작 며칠 더 살겠다고 치료받으면서 고통받는 거 보다는 그냥...저에게 남은 시간..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다가 가고 싶어요...“

“정확히 얼마나 남았다고 확답을 드리긴 어렵습니다. 하지만...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 정도입니다.”


지안은 병원을 나와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등산 가방을 챙긴다.

다시 집을 나와 차량을 몰고 도착한 곳은 용마산 입구.

차량에서 내린 지안은 능숙하게 산을 오른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땀이 나기 시작했고 벤치에 앉아 가방에서 지퍼백 하나를 꺼낸다.

그 안에는 오이 두 개가 들어 있었고 하나를 꺼내 먹으며 수분 보충을 한다.

절반 정도 먹었을 때 다시 가방에 넣고 산을 마저 오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또 한참을 올라 정상에 도착했고 숨을 몰아쉬며 그 경치를 만끽한다.


“이제 이거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았네...”


용마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절경은 그녀의 아픔도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람에 치이고 상처받아도 이렇게 산에 올라 절경을 내려다보면 다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등산을 했고 운동이 되니까 아픈 것도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한다고 나아질 만한 것이 아니었던 거다.

처음엔 소화불량이 잦아서 소화제를 먹고, 소화가 잘 안되니까 끼니도 가볍게 떼우기가 일쑤였으며,

그러다 보니 체중도 줄어들어 자주 보는 친구조차도 살이 많이 빠졌다고 할 정도였다.

소화제를 먹어도 소화불량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사실, 소화불량은 고등학교 때부터 일하면서 늘 달고 산 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아픈 곳이 더 늘어갔다.

명치가 아프기 시작하고 그다음은 허리였다.

하루는 명치와 허리 통증이 동시에 동반되어 고통을 호소하다 쓰러졌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응급실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췌장암을 의심했고 조직 검사로 확진을 받은 것이다.

지안은 평소보다 더 긴 시간 절경을 보다가 내려갔고, 내려가던 중에 보이는 용암사에 들렀다.

마침 마당에 계시던 주지 스님이 지안을 발견하고 반갑게 맞이했고 두 사람은 서로 합장하며 인사를 나눈다.


“보살님, 어디 아픈 곳은 없으시지요? 뵐 때마다 마르시는 것 같아서요.”

“아닙니다. 아픈 곳이 있으면 이렇게 등산도 못하고 기도도 못 오죠.”

“건강관리 잘하셔야 합니다.”

“네, 스님.”

지안은 불상 앞에서 간단히 기도하고 절을 나와 용마산을 내려온다.

다시 집으로 와 샤워를 마치고는 그제야 첫 끼를 해결하려는 듯 냉장고를 연다.

밀봉된 갈빗살을 꺼내 프라이팬에 버터와 함께 굽기 시작한다.

잘 구워진 갈빗살을 프라이팬 채로 아일랜드 식탁에 두고 식사를 한다.


[21:00]

출근 준비를 하는데 누군가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누나, 준비 다 하셨어요?”

“응~ 좀만 기다려~”

출근 준비를 마치자마자 두 사람은 지하 주차장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 입구에 세워둔 스타리아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고 차량은 여의도에 위치한 방송국 중 [JNC]의 간판이 적힌 건물 입구에 멈춘다.

지안은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 빌딩 안으로 들어서면 1층 로비에는 통유리로 볼 수 있도록 한 라디오 오픈 스튜디오와 신나 은행이 있으며,

더 안쪽엔 안내데스크와 카페, 수제버거 가게 그리고 칸막이로 둘러싸인 휴게 의자가 있다.

22층 높이의 사무동과 9층 높이의 스튜디오 동으로 나뉘어 있고, 두 건물이 아트리움으로 연결되어 있다.

9층 스튜디오 동에는 휴식 공간이면서 드라마와 시사교양 예능 촬영을 하는 하늘 정원이 있다.

사옥 옥상과 안테나 조명이 전부 켜져 있으면 초록색, 보라색, 파란색 등 몇 초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켜지는데

이 외관은 날이 어둑해져 깜깜한 밤엔 더욱 야경으로 보기에 좋다.

1층에 있는 라디오 오픈 스튜디오는 비어있는 곳 없이 [ON AIR]에 불이 들어와 있다.

지안은 한 오픈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간다.

지안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서자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녀를 맞이한다.

“안녕하십니까~”

“오셨어요~”

한 여자가 지안에게 대본 여러 장을 주고 지안은 테이블에 앉아 대본을 정독한다.

오픈 스튜디오는 밖으로 향한 벽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누구나 볼 수 있게 되어 있었고

통유리창 앞에는 라디오 방송을 누구나 편히 앉아서 볼 수 있도록 여러 개의 벤치 의자들을 배치해 놓았는데

성비가 6 대 4 정도 되는 사람들이 그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때, 지안을 이곳으로 데려다줬던 남자가 쇼핑백을 양손에 가득 들고 스튜디오로 들어온다.

“누나, 이거 제가 지금 드리면 될까요?”

“아, 그거 그냥 나 줘. 내가 드릴게~”

지안은 그 쇼핑백들을 받아 들고는 밖으로 나가 통유리 밖에 있던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곳에는 그녀의 팬으로 보이는 그들은 그녀의 이름과 응원 문구가 적힌 미니 슬로건을 들고 있었고

밖으로 나온 그녀를 보자 난리가 났다.

“언니, 오늘도 예쁘네요~”

“너도 예뻐~ ㅋ 이거 별건 아니고~”

한 명 한 명에게 쇼핑백을 하나씩 나눠주는 지안

그 쇼핑백 안에는 1월이라 추운 날씨를 걱정해 핫팩 여러 개와 담요, 벤치 의자에 앉을 때 엉덩이 차갑지 말라고

방석까지 지안이 팬들을 위해 준비한 역조공 물품들이 들어있었다.

그들도 지안에게 선물들과 편지들을 그녀에게 전해준다.

양손 가득히 나갔던 그녀의 양손은 더 가득한 채로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21:50]

10시가 가까워지자 지안은 대본을 들고 부스 안으로 들어간다.

자리에 앉은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거치대에 걸려 있는 헤드폰을 착용한다.

곧이어 오프닝 BGM과 함께 오프닝 멘트를 한다.

“아침부터 지각하지 않으려고 뛰다가 지친 당신, 시험과 과제에 치인 당신, 상사와 업무의 압박에 시달린 당신, 부모님 잔소리에 영혼이 가출한 당신, 그리고 오늘 하루가 괜히 힘들어 지친 당신, 그런 밤달지기님들을 포근히 안아주는 바디필로우 같은 여기는, 깊은 밤, 푸른 달, 차지안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