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스튜디오로 옮기고 나서는 공간과 채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진을 집중적으로 찍은 후에,
다시 이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금 소속사가 처음 설립했을 때 계약하셨고 지안씨도 막 데뷔했을 때라고 하셨는데 그때를 돌아보면 어떤가요?“
“지금은 회사 사옥이 번듯한 빌딩 전체지만 그때는 사무용 건물 지하를 임대했었어요.
그때 그 건물이 좀 오래돼서 비 오면 천장에서 물 새서 양동이 받혀놓고, 문틈으로 비 들어와서 무릎까지 찰 때는 바가지,
쓰레받기 다 동원해서 물을 푸기도 했어요. 대표님이랑은 아직도 그때 얘기해요.
당시엔 고생이었는데 지금은 안줏거리죠, 뭐~“
“뉴욕 활동 당시 인터뷰에서 ‘평생 살면서 시도조차 안 해보고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라고 하셨는데 30대인 지금,
정말 단 한 번도 시도도 안 해본 걸 포기한 적이 없나요?“
“네. 물론 포기할까, 말까 망설인 적은 있어요. 가수와 배우가 대중 앞에 설 땐, 대중이 만족할 수준이어야 하는 것처럼,
모델도 옷을 만든 디자이너와 그 옷을 입는 소비자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잘 표현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 해요.
그리고 그걸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해보지 않은 스타일이라면 일단 시도는 해봐야죠.
시도하기 전엔 모르는 거잖아요. 내가 잘 할 수도 있죠.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 전에 그냥 해요.“
“아직도 많은 디자이너와 저희 같은 잡지사에서 지안씨를 원하고 있어요.”
“모델은 활동 시기가 다른 직업군에 비해 짧고 30이 넘으면 거짓말처럼 일이 뚝 끊기기도 해요.
요즘은 더 오래 활동하는 선배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제가 30살 때는 더 심했어요. 근데 이미 서른이 넘어도
한참 넘은 저를 계속 찾아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죠. 그마저도 언젠가는 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슬슬 내려올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벌써요? 너무 이른걸요.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타투가 총 4개 있다고 들었는데 공개하신 적이 없는 거 같아서요.”
“살이 많이 보이는 옷을 입으면 살짝씩 보이긴 해서 위치는 대충 아실 수도 있는데 올누드 화보는 안 찍다 보니
적나라하게 다 보여드린 적은 없는 거 같아요. 의미가 다 거창하진 않구요. 왼쪽 귀 뒤에 있는 건 북두칠성인데
20살 때 뉴욕에서 데뷔 기념으로 새긴 거고, 왼쪽 갈비뼈 아래에 세로로 Esto también pasará 이라는 레터링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뜻의 스페인어인데 25살 때 파리에서 데뷔 기념으로 새겼구요, 오른쪽 허벅지에 가로로 있는
레터링은 Dawn always and shine 인데 언제나 밝게 빛나라는 뜻이고 26살 때 라디오 DJ로 데뷔하면서
새로운 도전의 의미로 새긴 거, 그리고 여기 오른 손목에 있는 건 제 영문 이름 Jian 인데 20살 때 생일날 한 건데,
이게 제일 처음으로 새긴 거예요.“
“저도 하나쯤은 하고 싶은데 추천할 만한 거 있을까요?”
“저는 하고 싶어서 한 거고, 하나하나 제 과거의 선택이니까 후회한 적도 없고 지우고 싶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요. 근데 하나만 하고 싶다면 절대 바뀌지 않는 거,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는걸
신중하게 생각해서 하는 걸 추천해요. 예를 들면 이름 같은 거요. 죽어서도 남는 게 이름이잖아요.
레터링이나 그림 같은 건 보통 후회하고 지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타투 하나에도 지안씨 삶의 역사가 담겨 있네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지안씨의 삶이 어땠으면 하나요?”
“하아...앞으로의 제 삶이요? 음...안 그래도 요새 저 자신에게 많이 던지는 질문인 거 같아요.
많은 사람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사람, 마지막 숨을 내뱉는 순간까지도 행복한 사람, 그런 삶이었으면 좋겠어요.
어렵겠지만 소소한 행복들이 모이면 가능할 거라고 믿어요.“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답변이네요. 오늘 인터뷰 너무 감사합니다.”
“아, 네~ 사진은 예쁜 걸로 부탁드려요~”
“아유~ 막 찍어도 예쁘신데요, 뭐~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수고하셨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지안은 기자와 포토그래퍼가 나가고 5층에 있는 CEO 실로 올라간다.
CEO실 안으로 들어가자 대표가 앉아 있다.
이름: 강진아
나이: 48세
직업: Awesome8 ENT. CEO
“어, 왔어? 인터뷰 잘했어?”
“난 늘 잘하지~”
“맞는 말이라서 반박을 못 하겠네 ㅋ”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 할 말이 있어서~”
“뭔데?”
“우리 회사 창립 멤버잖아~”
“그치~ 초창기에 같이 개고생 좀 했지~ 왜?”
“그래서 말인데, 내년에 너 20주년이기도 하고, 우리 신사옥 완공해서 옮기고 나면 회사도 점점 커질 텐데, 이사직 좀 맡아 줄래?“
“갑자기?”
“갑자기 아니야. 신사옥 지을 때부터 생각한 거야~”
“...생각할 시간 좀 줘...”
“그래~ 천천히 생각해도 되~ 급한 거 아니니까~”
“대표님이랑 나도 19년이나 됐네.”
“그치~ 너 데뷔하자마자 우리랑 계약했으니까 그렇게 되겠네~”
“왜 나였어?”
“응? 뭐가?”
“이상봉 선생님 쇼에 나만 섰던 거 아니었잖아. 난 그때 오프닝도 아니었고 피날레도 아니었는데 왜 나한테 명함 줬어?
그때 오프닝, 피날레 했던 건 기주랑 소영이였는데~“
“너 차승원 선배 처음 봤을 때 후광이 보였다고 했지? 난 너 보는데 너한테서 후광이 보이더라~
니 말대로 오프닝도 아니었고, 피날레도 아니었는데 유독 너만 눈에 띄고 빛나더라~ 놓치면 후회할 거 같았어.“
“아, 뭐야~”
“진짜야~ 이거 봐, 내 감은 정확하다니까? 놓치면 어쩔 뻔했어~ 신사옥이 뭐야, 이 회사 벌써 쪽박찼지~”
“알아주니 고맙네~ 나 진짜 열심히 살았다, 그치?”
“알지~ 내가 제일 잘 알지~ 수고했다~ 이제 좀 덜 열심히 살아도 돼~”
“그러려고 했는데...이제 좀 숨통이 트이나 했더니...”
“응? 뭐라고?”
“아냐, 아무것도~ 온 김에 여기서 좀 놀다가 저녁이나 얻어먹고 라디오 가야겠다~”
“그래~ 뭐 먹고 싶은데? 고기 먹을까?”
“고기는 언제나 옳지~”
지안은 한참 동안 강 대표와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고 근처 한우 특수부위 전문점에서 저녁도 함께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오는 두 사람
사옥까지 걸어가는데 인생두컷 스튜디오가 눈에 띈다.
“어? 저기 인생두컷 생겼네? 떡볶이집 없어졌어?”
“진작에 없어졌지~ 맵기만 더럽게 맵고 맛대가리 없는데 당연한 결과지~ 우리도 찍어보까?”
“대표님, 우리가 아직 열일곱, 서른인 줄 아세요? 자중하십쇼~”
“야~! 늙은이는 인생두컷 찍으면 안 되니? 하나 찍자~”
강 대표의 성화에 못 이겨 인생두컷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온 지안
하늘색 배경의 포토 부스 안으로 들어가 다양한 포즈로 인생두컷을 찍는다.
4컷짜리를 선택해 2컷씩 가위로 잘라 나눠 갖고는 스튜디오 밖으로 나온다.
“우리 이거 자주 찍자~ 너무 예쁘다~”
“언제 철들라나, 우리 대표님~”
1층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하나씩 들고 강 대표의 사무실로 돌아온 두 사람
“혁주 이 시키는 뭐하냐, 요즘? 사무실엔 코빼기도 안 비추네.”
“걔 요즘 바이크 타러 다니느라 신났어요~ 제주도 갔을걸요? 오늘 온댔나?”
“으이구~ 지안이 옆에 딱 붙어 있으라니까 왜 망나니처럼 싸돌아댕겨~ 미친놈~”
“으~ 지겨워, 지겨워~ 저도 좀 혼자 있고 싶다구요~”
“오늘 온다 그랬으면 이따 라디오 끝나고 또 술 처먹겠구만~”
“애는 착해요 ㅋㅋ”
그렇게 몇 시간씩 수다를 떨어도 무슨 할 얘기가 남았는지 끊임없이 얘기하다 보니 라디오 방송 시간이 다가왔다.
시간 맞춰 찬이 사무실에 노크하고 문을 열자 지안은 사옥을 나와 방송국으로 향했다.
오늘도 차분하고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깔끔하게 진행을 마친 지안은 찬과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오는데,
스타리아 앞에 한 남자가 비딱하게 서 있다.
이름: 최혁주
나이: 35세
직업: Awesome8 ENT. 소속 모델 겸 배우
“요~”
“서울 왔으면 집에나 가지 왜 여기 있냐?”
혁주는 지안의 어깨에 오른팔을 두른다.
“한잔해야지~”
지안은 혁주의 팔을 쳐낸다.
“넌 예상을 전혀 빗나가질 않는구나?”
“뭐래~”
“너 바이크는?”
“두고 왔지~ 너랑 술 먹을라고~”
“야, 오늘은 그냥 집에서 마시자. 어디 가기 귀찮아~”
찬은 두 사람을 지안의 오피스텔 입구에 내려주고는 사옥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안줏거리를 사러 근처 대형 마트로 걸어간다.
가는 길에 지안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오후에 강 대표와 찍었던 인생두컷이었다.
하지만 간판이 오후에 봤던 인생두컷과는 달랐다.
“어? 저기 원래 배달전문점 뭐 있었는데 없어졌네? 응? 인생컷? 인생두컷 아니야, 원래?”
“그러게~ 뭔가 폰트도 다른 거 같고 인테리어도 뭔가 깔끔한 듯?”
“아! 그게 없네! 그거”
“그게 뭔데?”
“그, 왜, 사진 찍을 때 머리에 쓰고 목에 두르고, 하는 거~”
“아~ 어? 그러게~ 다른 스튜디오엔 다 있던데? 왜 저기만 없어?”
“야, 나 궁금한 거 못 참는 거 알지. 우리 저거 찍자~”
“아니, 오늘따라 강 대표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왜 다들 관심도 없던 인생두컷을 찍재~”
“빨리 와라, 나 궁금해 디져~”
결국 두 사람은 인생컷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간다.
밖에서 봤던 것처럼 아무것도 없이 온통 흰색의 인테리어로 깔끔했고, 포토 부스 또한 달랑 하나였다.
“뭐야, 포토 부스도 이거 하나가 다야? 개 신기하네~”
포토 부스 안으로 들어가자 짙은 파란색과 초록색이 그라데이션을 이루고 있는 밤하늘에 수많은 별을 수놓은 배경이었고,
보통 동전 투입구 주변에 금액이 적혀 있지만 아무런 문구가 없었다.
동전 투입구 옆에 튀어나와 있는 L자형 고리 위에는 게임존에서나 볼 법한 코인이 있었으며, 그 코인에는 기괴한 문양과 인생컷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이거 넣어 보까?”
지안이 코인을 동전 투입구에 넣자 포토 키오스크 화면이 켜졌다.
카메라를 3초간 응시하세요.
지안과 혁주는 어깨동무하고는 카메라를 응시한다.
두 사람이 카메라를 응시하자 화면에 3초 카운트가 시작되고 카운트가 끝나자 플래시가 터지며 사진이 찍힌다.
(찰칵)
플래시 밝기가 너무 밝아서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너무 놀라 뒤로 나자빠진 두 사람
그곳은 지안에게 너무나 익숙한 장소였다.
“지..지안아, 여..기 어디야? 이..거 뭐야?”
“몰라, 나도...근데 여기가 어딘지는 알아...우리 집...나 중학교 때까지 살던 집...”
“부산 서면 거기? 갑자기? 어..어떻게? 이게 가능해?”
“……”
지안은 집 안에서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에 온몸이 얼어붙은 듯 충격에 휩싸였다.
“아, 엄마~~~가자~응? 해운대 가자~~아니, 부산 사는데 해운대 한 번을 못 가봤다는 게 말이 되나~?”
[봄밤 -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그 사람에게 - 신동엽]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말날지라도 먼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해답 - 거트루드 스타인]
해답은 없다
앞으로도 해답이 없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해답이 없었다
이것이 인생의 유일한 해답이다
[하지 않고 남겨둔 일 - 헨리 롱펠로]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려 해도
아직 하지 않은 일이 남아 있다
완성되지 않은 일이 여전히
해뜨기를 기다리고 있다
침대 옆에, 층계에, 현관에, 문가에
위협으로 기도로 탁발승처럼 기다린다
기다리며 결코 사라지지 앟는다
기다리며 결코 거절하지 않느다
어제의 보살핌 때문에
나날의 오늘이 더 힘들다
마침내 그 짐이 우리 힘이
감당하기보다 더 클 때까지
꿈의 무게만큼 무거워 보일 때까지
곳곳에서 우리를 내리 누른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하루를 버틴다
북방의 전설이 말하는 것처럼
어깨에 하늘을 인
옛날의 난쟁이처럼
[비망록 - 문정희]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킴벌리 커버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 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박효신 - 그날]
잔인한 햇살에도 그 봄은 아름다웠어
숨죽인 들판 위로 꽃잎은 붉게 피어나
끝없이 긴 밤에도 나를 덮은 건 푸르름이라
비루한 꿈이라도 다시 떠나리라
모든 바람이 멎는 날
거칠 게 없는 마음으로
널 부르리라
행여 이 삶의 끝에서
어쩌면 오지 못할 그날
잠들지 않는 이름으로
널 부르리라
너와 나의 다름이 또 다른 우리의 아픔이라
서로를 겨눈 운명에 눈을 감으리라
모든 바람이 멎는 날
그리움이 허락될 그날
거칠 게 없는 마음으로
널 부르리라
행여 이 삶의 끝에서
어쩌면 오지 못할 그날
잠들지 않는 이름으로
널 부르리라
메마른 나의 바다에
단 한 번 내린 붉은 태양
닿을 수 없는 머나먼 꿈
못 잊으리라
혹여 이 삶의 끝에서
결국 하나가 되는 그날
내 찬란했던 아픔을 다
푸르름이라 부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