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사람들은 왜 행복해요?

덴마크로 이사할 순 없는데,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by 미라지

아이 데리고 놀이터를 전전하던 시절 동네 분들이 그러시더군요. 아이가 중학생쯤 되면 영어, 수학 학원에 다니느라 매일 밤 열 시 넘어 집에 올 거라고요. 저는 "말도 안 돼요. 그럼 숙제는 언제 하고 잠은 언제 자요?"라고 되물으면서 속으로는 '그건 학대 같은데'라고 중얼거렸습니다. 몇 년 후 제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고, 그 분들 예언대로 학원에 다니느라 주 4회 밤 열 시 넘어 귀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1위래요."

"응, 나도 알아. 예전부터 그랬어."

"북유럽 사람들이 제일 행복하대요. 거기선 우리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아마도? 근데 너무 멀다."


밤늦게 돌아와 녹초가 된 아이를 보는 엄마 마음도 편치 않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너무 힘들어 보이는구나. 내일부터 학원 다 그만두자'고 말할 용기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한국식으로,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으니 이웃이 하는 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제가 걱정하는 건 대학 입시만이 아닙니다. 진학 이후 취업, 결혼마저 경쟁의 장처럼 느껴집니다. 나중에 아이가 행여 밥벌이를 못 하거나. 무시를 당하거나, 낙오자라 느낄까 봐 두렵습니다. 아이를 다 키우고 나면 저는 제 노후를 걱정하겠죠.


아이 말대로 북유럽에 가서 살면 우리도 행복해질까요? 수년 전부터 북유럽 사회 행복의 비결을 배우자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선진국에서도 복지와 평등이 강조된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에 관심을 보였지요. 그곳엔 소득 격차와 계층 간 불평등을 줄이고, 경쟁으로 각박해진 사회 분위기를 변화시킬 방법이 있는 걸까요. 우리도 그 비결 좀 배워 올 수 없을까요.




수많은 책 중 제가 고른 건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오마이북) 였습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UN 행복지수 1위 국가라는 덴마크를 찾아가 행복한 일터, 행복한 교실, 행복한 사회란 무엇인지 취재한 책이에요. 공장과 학교, 협동조합과 의회를 다니며 현지인 300명을 인터뷰하여 작성한 '덴마크 행복 견문록'이라 할 수 있어요.


북유럽 학생들은 왜 행복한지부터 찾아봤습니다. 등수도 우열반도 성적우수상도 없고, 학생 40퍼센트 정도는 고등학교 진학 전 1년간 인생 설계 학교인 '애프터스콜레'를 다니며 진짜 원하는 일을 고민한다고 해요. 이 모든 건 대학에 안 가도 무시당하지 않고 밥벌이를 할 수 있기에 가능하겠지요. 사회 복지도 잘 갖춰져 있고요. 평생 병원 진료비 무료, 대학 등록금 무료, 나라에서 대학생에게 용돈을 지급하고, 실직해도 2년 동안 실업 수당을 준다는 것 등이요. 부모가 자식 돌보듯 정부가 국민을 지원하니 덴마크인들은 남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겁니다.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직원을 소중히 대하는 모습입니다. 덴마크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라는 '로슈 덴마크'에서는 직원들 빨래를 해 주고, 일주일에 두 번 직원 가족이 먹을 저녁 도시락도 싸 준다니 놀라웠어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바탕에 있는 '누구도 특별하지 않고, 누구나 소중하다'(p.49)는 평등 의식이겠지요. 사측이 일방적으로 갑질을 할 수 없는 분위기 말입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노조에 가입해 연대하고 노사는 활발하게 소통한대요. 덴마크 고용의 특징은 '유연안전성'입니다. 회사에 경영상 어려움이 있으면 직원을 합법적으로 해고할 수 있고, 대신 정부는 실직자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며 재교육을 실시해요. 이른바 3각 협력 모델입니다. 이 전통은 이미 115년 전 노동자와 경영자 간 대타협으로 이루어진 '9월 합의'에 따른 것이라는군요. 실직이 곧 실패와 절망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릅니다.


사회 복지와 고용 정책을 실시하려면 구성원 간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정책에는 돈이 드니까요. 덴마크는 국민 1인당 세율은 OECD 국가 중 최고입니다. 고소득자의 경우 소득의 50퍼센트 이상을 세금을 내는데도 조세 저항이 없는 이유는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믿음을 넘어서, 덴마크에는 사회에 높은 수준의 신뢰와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어 있다 합니다. 태어나면 주치의가 정해져 한 의사가 자신의 건강을 수십 년간 지켜봐 주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담임 선생님 한 분이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9년까지 자신을 쭉 돌봐줍니다. 마을이 곧 공동체인 겁니다.



이런 '평등'과 '신뢰'의 공동체 정신은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요? 오연호 대표는 연원을 찾기 위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800년대부터 1100년경까지 바이킹 시대 유럽을 지배했어요. 전성기 덴마크는 지금의 노르웨이, 스웨덴, 북부 독일까지 영토를 넓혔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 때 프랑스 편에 섰다가 영국에게 크게 당하고, 1814년 노르웨이 지역을 스웨덴에 빼앗기고, 1864년 독일 북부를 프로이센에게 빼앗기면서 덴마크는 쪼그라들어요. 인구는 크게 줄고 남은 땅은 황무지와 다름없었습니다. 게다가 한 번 더 전쟁을 치렀다가는 나라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지요.


당시 국가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 시작되었던 혁신 운동이 지금 덴마크 사회의 기초가 되었다고 해요. 저자는 '깨어 있는 농민 되기'운동, 협동조합 운동, 국토 개간 운동 세 가지를 사회 혁신의 씨앗으로 보고 있어요. 덴마크의 아버지라 불리는 니콜라이 그룬트비는 '성인용 자유학교'를 설립해 주체적인 인간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토론식 교육을 시작했다 합니다. 나라에서 정한 교육과정이 아닌 문학과 역사와 시민성을 가르치는, 요즘 말로 '시민 평생 교육 학교'를 만든 것이지요. 당시 덴마크의 주요 시민은 농민이었기 때문에 시민운동은 곧 농민 운동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덴마크 부흥의 움직임은 위에서부터의 지시가 아닌 아래에서부터의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어요.


두 번째 씨앗인 협동조합 운동은 독일과의 전쟁 이후 폐허가 된 땅에서 낙농업을 다시 일으키는 데 큰 힘이 되었대요. 조합을 만들어 함께 낙농 기술을 연구하고 판로를 개척해 나가면서 산업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고, 작은 협동조합이 더 큰 협동조합을 이루면서 '연대'와 '공동체 의식'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세 번째 씨앗인 국토 개간 운동은 국토 3분의 1을 독일에 빼앗긴 후 남아있는 땅을 효율화하기 위한 농민 운동이었습니다. 장교 출신 엔지니어였던 달가스는 이 개간 사업을 정부에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사설 기업을 만들고 비용을 모금했대요. 달가스와 그의 아들, 농민이 함께 밀어붙인 개간 운동은 빼앗긴 땅만큼의 새로운 농지를 만들어냈고 덴마크인 근면성의 상징이 되었다고 해요. 이렇듯 비전을 가진 리더가 시민과 함께했던 사회 개혁 운동은 시민에게 "내 삶의, 내 나라의 주인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되는 것(p.224)"이라는 자존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요컨대 지금 덴마크 사회는 19세기 중후반 '9월 합의'로 대표되는 노동운동과, 아래로부터의 사회 개혁이었던 농민운동에 뿌리가 있다 하겠습니다. 근현대사에 쌓인 신뢰와 연대라는 가치는 정부가 만들어 낸 게 아니라 농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지요. 협동조합을 처음 만들 때도 정해진 법을 따른 게 아니라 조합원들끼리 총회에서 자발적 정관을 만들었다고 하니 이런 합의와 타협의 전통이 사회 전반에 스며들었을 겁니다. 20세기 초 독일, 영국, 미국, 일본 등에서도 덴마크 배우기 열풍이 일어났다고 해요.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도 비슷한 맥락이지만 사회에 정착하는데 실패했지요. 새마을 운동은 정치적 조직 성격이 강한 위에서부터 아래의 운동이었고 정치적 자유와 평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덴마크와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 정당 성향에도 큰 차이가 있어요. 덴마크 우파 정당은 벤스트레, 좌파 정당은 사회민주당이라 합니다. 1870년 대지주 등 특권층에 저항하여 탄생한 벤스트레는 상대적으로 사회민주당에 비해 우파일 뿐, 덴마크의 양 당은 모두 사회복지와 평등의 가치에 동의한대요. 사회민주당이 20세기 내내 장기 집권하며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척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산당이 주장했던 가치를 실현하면서도 노동자들에게 자유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즉 사회민주당은 공산주의와 대결에서 승리하려면 평등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덴마크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정당들은 전반적으로 우파 쪽에 가깝다 하겠습니다.



오연호 대표는 덴마크가 추구하는 가치를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중학생 눈높이에 맞추어 이 책을 썼다 합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으며 행복한 사회란 어떤 모습인지 그려 볼 수 있도록 말이지요. 사실 저는 덴마크에 대한 칭찬 일색의 내용이 처음에는 와 닿지 않았어요. 소위 말하는 복지병, 자살, 우울증 같은 문제는 소개하지 않거든요. 저자는 일부러 배울 점만을 책에 썼다 합니다. 작은 흠이 큰 장점을 가릴 수는 없다면서요. 모든 이가 행복하다 외치는 나라는 세상에 없겠지만 적어도 덴마크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격차가 가장 작고, 불행한 사람이 가장 적은 나라임은 분명합니다.


덴마크 행복 사회는 150년에 걸쳐 이루어진 결과였습니다. 우리나라에 덴마크식 가치를 도입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역사의 분기점에서 한국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따랐으니까요. '경쟁 속 각자도생'인 우리나라에도 '더불어 공동체' 의식이 자리 잡을 날이 올까요. 저부터라도 저자가 고른 키워드 - 자유, 안정, 평등, 신뢰, 이웃, 환경 - 를 기억해야겠어요. 덴마크가 그랬듯, 시민 각자의 깨달음이 변화를 가져오는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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