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핸드폰을 떨어뜨려 화면에 금이 갔습니다. "손 안 다쳤어?" 라 물으며 '어이구, 화면 교체하려면 또 몇만 원 나가겠네' 생각했습니다. "조심 좀 하지 그랬어!" 라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이 말에 웃음이 났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나는 운 나쁜 사람'이라 진심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충격 방지 케이스 쪽으로 떨어지면 괜찮을 텐데, 떨어뜨리면 꼭 액정화면이 땅에 닿는 방향으로 떨어진다는 겁니다.
이제 겨우 십여 년 산 아이인데 벌써 '난 운이 없다'는 믿음을 갖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어크로스) 를 펼쳤습니다.
"너 버터 바른 토스트 얘기 아니? 빵을 먹다 보면 바닥에 떨어뜨릴 때가 있는데, 토스트는 항상 버터나 잼 바른 부분이 바닥으로 떨어진대. 그래서 사람들은 '나는 참 운도 없지. 반대쪽으로 떨어져도 될 텐데 왜 토스트는 항상 버터 바른 부분이 바닥으로 떨어질까? 주워 먹지도 못하고 바닥까지 닦아야 하잖아.'라고 생각했대."
"그런데 1991년에 한 과학자가 그건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대. 수학적으로 계산해 보면 버터 바른 면이 반드시 바닥을 향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야. 식탁의 높이와 토스트를 잡아당기는 중력을 생각할 때 토스트는 반 바퀴를 돌고 바닥에 닿게 된대."
"엄마는 핸드폰 화면이 깨지는 이유도 비슷할 거라 생각해. 그건 네가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액정이 깨지기 쉬운 방향으로 떨어지기 때문일 거야."
토스트를 핸드폰으로 대체시켜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제 말을 듣고 다행스러워했습니다. 책 읽어 두길 잘했습니다. 2001년 출간 후 2011년 개정증보판이 나왔고 중고등학생 권장도서로 여전히 인기 있는 책입니다. 저자의 관심 분야인 복잡계 물리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과학 연구를 소개합니다. 실험실을 벗어나 현실 세계로 나온 과학은 이제 예술· 경제·금융·의학 등 타 학문과 어우러져 복잡한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쓰인다 합니다.
'카오스와 프랙털' 덕분에 불규칙해 보이는 현상을 조금 덜 복잡하게 볼 수 있다고 하네요.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유사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프랙털은 잭슨 폴록의 추상화, 아프리카인의 땋은 머리, 특정한 음악에서도 발견됩니다. 심장 박동이나 일기 예보에는 '불규칙하지만 질서를 가진' 카오스 이론이 적용되고요. 80/20 법칙, 롱테일 법칙, 천장의 높이가 창의력에 영향을 준다는 조운 메이어스-레비 연구 등 알아두면 쓸모 있을 이야기도 소개됩니다.
과학자들은 별별 연구를 다 했더군요. '나만 운이 없다'는 머피의 법칙, '도로에서 내가 선 차선이 가장 막힌다'는 징크스는 실험 결과 '기분 탓'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여성들이 방을 같이 쓰면 생리 주기가 같아진다는 얘기는 속설이 아니라 연구로 증명된 '주기 운동'의 '동기화' 현상이라 하네요. 산타클로스의 진실을 밝힌 '크리스마스 물리학'은 동심 파괴가 예상되니 아이와 함께 읽을 땐 주의하세요.
명쾌한 설명을 끝마친 저자는 말합니다. 과학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쩌면 환상일지 모른다고요. 저자를 비롯한 물리학자들은 세상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론을 찾는 중이지만, 어쩌면 그 이론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군요.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무엇인가를 발견할 날을 기다리며 다른 학문과 연대하여 고군분투 중인 학자들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지금은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에 희망이 있다 합니다. 여러 학문이 연결된 현대 물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요.
"과학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시대에도 과학은 묵묵히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다른 분야와 만나서 인간적 가치를 높이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p.360)는 말의 여운 때문에, 20주년 개정판이 나올 날을 벌써부터 기다리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