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뭐 별거 아니네!

서른 하고 꼬박 104일

by 지은

서른, 하고 꼬박 104일째 되는 날이다.


20살. 10년. 30살.


나는 앞자리가 서른이 되는 2026년 1월 1일에 소행성이 충돌하고 지구가 멸망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행히. 아주 다행히 소행성이 충돌하지 않았고 지구가 멸망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 다행이었다.




이런 엉뚱한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나에게 크게 다가왔던 서른.

2026년 1월 1일 혼자 침대에 누워 새벽에 제야의 종소리를 들은 나는 "우와 이제 나도 서른이네. 앞자리가 3이네. 대박." "어떻게 살아야되지?" "어떻게 살아야 인생을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20대 초반에 서른에 관한 에세이를 읽었을 때는 진짜 서른이 되는게, 앞자리 3이 되는게 정말 큰 일인 줄 알았고 나는 그 때쯤 돈도 많이 모으고 남들 부럽지 않게 차도 가지고 있고 사고 싶은거 다 사면서 돈 걱정 없이 살 줄 알았다. 내가 꿈꿨던 서른은 멋진 차도 있고 내놓으라하는 집도 있으며 마음껏 여행다니고 부모님이랑 동생이 뭐가 필요하다하면 돈 생각 안하고 마음껏 사줄 수 있는 딸이자, 누나로써 말이다.


하지만 이윽고 10년이 지나 현실이 된 서른은 20대와 별 다르지 않았다. 정말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특별하게 30이 되었다고 해서 막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거나 무지개가 나타나지 않았다. 지극히 현실적인 서른을 맞이한 나는 정말 20대의 나랑 별반 다를게 없어 보여서 한편으로는 참 씁쓸함을 느꼈다. 여전히 생각이 많고, 여전히 꿈꾸고 있는게 많고, 도전하고 싶은게 많고 여전히 겁도 많은 나였다. 내가 20대에 기대했고 꿈꿨던 서른이 아주 조금 근처에 가있을까? 적어도 지금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으니까. 그거라도 위안을 삼아야 될 것 같다. 그래도 묵묵히 내 인생의 길을 열심히 가고 있으니까. 스스로 거북이라고 지칭한다. 거북이는 느리지만 그래도 언젠가 천천히 마무리 지점까지 완주하니까 말이다.


10년전에 나는 10년뒤에 내가 대학원생이 되어있을 줄은 진짜 상상도 못했다. 대학교를 2번가고 직업을 2번이나 바꾸고 어쩌다 도서관에 꽂혀서 감사하게도 교수님들이 합격을 시켜주신 덕분에 대학원생인 지금의 나는 그래도 내가 원하는 길을 잘 가고 있는 듯 하다. 실력보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과제에, 시험에, 학기말 논고에, 논문에, 조교에 사실 매일매일이 정신없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고 생각이 들고 대학원 수업을 들을 때면 더욱이 나는 타과라서 완전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 있는 입장에서 교수님들이 하시는 말씀은 진짜 가끔은 "대체 저 말씀이 무슨 말씀이시지?"라고 생각하면서 교수님 눈동자를 아주 똑바로 쳐다보면서 수업을 듣는다. 높은 산에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 느낌이 들고 매 순간 첼린지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어떡해. 내가 선택했는데. 내가 책임져야지."라는 생각에 그냥 입닫고 오늘도 난 열심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매일 버스를 타고 학교에 올라가서 1시간 일찍 강의실에 들어가 아침 로딩을 한다. 아침에 멍을 좀 때려야 또 다시 앞을 향해 걸을 수 있기에. 특히 이번 학기에는 교육대학원 수업을 듣는데 일주일에 책2권을 읽고 인상깊었던 부분을 매주 제출해야 되는 수업이 있어 이번 학기에는 책을 정말 주구장창 읽는다.


수업 자체는 재밌지만 과제를 해야되는 부분이 약간 좀 그런데, 그래도 난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느낌이 드는 이 과제가 꽤나 괜찮은 느낌이다. 그런데.. 사실 조금 힘들 때도 있는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막상 도전하고 실패했던 찬란했던 20대를 지나 서른이 되니까 그렇게 도전하고 실패했던 그 시절들이 많이 힘들었지만 돌이켜 지나보니 성취할려고 했던 그 과정과 시간들이, 목표를 향해서 아등바등 노력했던 시간들이 너무 빛나보였다. 그것도 아주 아주 빛나고 반짝거리게 말이다. "비록 그 시간들은 너무 힘들고 지쳤고 진짜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말 나 열심히 살았구나."라고 생각이 드는 서른살 하고 104일째 되는 이 시기.


작가 되서 메인 작가님한테 지랄 소리를 들어도 꿋꿋히 일을 하고, 기분 나쁜 말을 들어서 다 때려치우고 서울에서 모르는 아파트에 들어가 엉엉 울면서 회사를 박차고 나왔을 때도, 출판사가 가고 싶어서 이력서를 100장 넘게 넣었을 때도, 출판사 가서 일못한다고 계단, 1층, 옥상에서도 엉엉 울었던 기억, 서울에 면접을 보려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시간을 맞춰서 죽어라 공항에 뛰어갔는데 코앞에서 비행기를 놓치고 공항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난 진짜 왜 이렇게 바보같지.. 정말 힘들다.. 언제까지 해야되냐 이 짓을.."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 수많은 좌절과 실패의 경험들이 시간이 지나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그 시간들이 나를 위해 더 반짝거렸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 뭔가..위로가 되는 시기였던 것 같다.


서울에서 선유도 공원에 혼자 자전거를 타고 저 멀리 있는 여의도를 바라봤을 때,

진짜 너무 내가 지금 여기 서울에 있다는 것 자체가, 서울에서 직장을 잡고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진짜 믿기지가 않았었는데. 대학 2번을 가서 열심히 노력해서 서울에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가 않았다. 선유도 공원에 있는 다리에서 가만히 여의도 빌딩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예뻤던지. 요즘은 한번씩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에 출판사 첫번재 면접을 갔는데 그 때 편집자가 하고 싶어서 서울 강남에 있는 코엑스 건물에 출판사에 면접을 보러갔는데 그 때, 면접관님이 '지은씨는 말씀을 참 잘하시는 것 같아요. 혹시 편집자 말고 마케팅 할 생각은 없으세요?'라고 물었을 때 그 때 내가 한다고 했었음 지금까지 난 반짝거리는 서울에서 아직도 일을 하고 있었을까?"


"만약에 내가 한국기행 말고 인간극장을 갔었으면 지금까지 서울 여의도에서 일을 아직까지 하고 있었을까?"

난 그 때, 인간극장이랑 한국기행이랑 다 붙었었는데 한국기행을 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극장을 그냥 갈껄 .." 이라는 생각도 든다. "최소한 인간극장 작가님은 처음부터 면접 볼 때 나를 좋게 봐줘던 것 같은데.." 하면서 말이다. 사람은 참 '후회'라는 것도 해봐야 깨닫는게 있는 것 같다. 요즘 부쩍 느끼는 '후회'라는 단어.


그래도 난 서울까지 가서 작가라는 걸 해봤고, 출판사 편집자도 해봤다고 생각할 수 밖에.




서른. 2026. 난 지금 대학원을 다니고 있고 최소 10년 뒤쯤에는 도서관을 개관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와 장애인분들과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한 공공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공도서관의 파라다이스를 꿈꾸고 이룰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도서관계의 파라다이스를 나는 과연 만들 수 있을까? 만들고 싶으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한눈팔지 말고 그냥 입 다물고 해야된다. 학술대회랑 도서관대회도 꾸준히 가야될 것 같고 20대에는 미래의 나를 위한 예의는 지금 현재라고 생각했다면 30이 된 지금은 미래에 나를 위한 예의는 어쩌면 과거와 현재가 통용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된다. 어찌됬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고 나아가니까 말이다.


그럴려면 당장에 힘들어도 해야 할 건 해야된다.

우는 소리를 하더라도 당장 해결이 되지 않으면 일단 해야된다.

힘들어도 해야되고, 아파도 견뎌내야 되며, 묵묵히 느린 거북이처럼 꾸준하게 내 길을 향해 걸어가야 된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음을.


서른이 된다는게, 앞자리에 3이 들어간다는 것에 너무 쫄아있었다. 뭔가 이 험한 세상을 나 혼자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을 했었고,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살아가야되는데 내가 너무 나약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싶기도 했고, 괜히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이랑 비교하고 있었다. 괜히 다른 사람들보다 돈도 없는 것 같고 가지고 있는 것도 없는 것 같고. 자신감이 떨어져 혼자 이 생각 저 생각도 많이 했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너무 커보여서. 서른은 뭔가 진짜 어른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인데. 나는 여전히 20대 초반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뭔가 해낸 것도, 아직 자신있게 내세울 것도 없는 나인데 나이값을 해야된다는 생각에 조금 서른이 된다는게 무서웠었던 것 같다. 서른. 앞자리가 3이 된다는게 뭔가 너무 새롭게 느껴졌고 진짜 인생에 대한 책임을 천천히 다하는 연습을 해야되는 나이같은 느낌이 들었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오늘도 꿋꿋히 스스로 밥벌이를 하고 일상을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내가는 서른이들이 힘을 냈으면 한다. 우리는 힘들어도 슬퍼도 우리의 길을 잘 걸어가야되니까. 울창한 숲속에 가시밭길이 있어도 어찌됬든 앞으로 나아가야되니까 말이다.


천천히. 다치지 않게.




근데 한번씩 힘들면 탈출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서른이 된 지금, 20대를 겪어오면서 하나 깨달은 점은,

가끔은 숨을 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저한테 맞게 숨구멍은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숨구멍이 크든 작든 상관없다. 그 공기가 상쾌하진 않더라도 단추가 꽉 끼면 조금 풀어주고 너무 헐렁하면 또 단추를 꿰어주는 방법을 아는 것도 참 중요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남이랑 나랑 비교하지 않는 것.


사실 나에겐 참 여전히 어려운 일이긴 한데 남이랑 비교하는 즉시 내가 한없이 작아진다.

나는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고 묵묵하게 오늘도 내 발걸음을 옮긴다.


하나 둘, 하나 둘,

천천히 가면 언젠가 도착할테니까.


막상 서른이 되니까 뭐, 딱히 별게 없다.

뭐야?! 괜히 쫄았자나 !! 이제 와서 센척하면 뭔 소용이냐 싶겠지만

그래도 나약해보이는 것보다야 서른이 나에게 우쭐대는게 더 좋다.

나는 나에게 충분히 당당하게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현재의 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과거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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