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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ul 09. 2023

진중한 남자

착하고 성실한 K -장남


이 남자.

가볍지 않고 진중해 보인다.


.

내가 많이 돌아다녀 피곤하다 하니 고속도로를 꽤 빠른 속도로 달려, 곧장 집 앞으로 빠른 시간 안에 안전하게 데려다 준 남자. 그러나 국도에서는 규정 속도를 안전하게 지키고, 답답해서 안전벨트를 풀려고 하는데 벌금 많이 나온다고 다시 안전벨트 하라고 한 이 남자. 그 짧은 순간에 뭔가 돈의 대한 경각심이 있어 보였다. 돈을 아무데나 쓰지 않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꼭 써야 될 때만 야무지게 쓸 것 같은 느낌. 


밥 먹는데 넓은 창문을 통해 바다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배려 하는 마음까지. 또 여름이어서 차 안이 더워 죽을 것 같아서 덥다고 난리쳤는데,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내 성질 다 받아준 이 남자. 덥다고 난리치니까 얼른 차 안에 있는 에어컨을 엄청 빠르게 틀어주었던 그 예민함의 다정까지. 이 남자가 나한테 해줬던 그 노력이 뭔가 그 찰나에, "만약 내가 이 남자한테 '사랑'이라는 감정을 받고 느낄 수 있다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그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한번도 직접적으로 아빠 말고 남자한테 '진짜'사랑이라는 감정을 받아보지 못했던 나에게는 어색한 감정이었지만 이상하게 이 남자가 나한테 주는 감정은 싫지 않았다. 뭔가 신뢰성있는 느낌이랄까. 


사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난 그동안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걸까. 마음 가지고 장난치고, 아무렇지 않게 마음 간보는 남자들의 유형만 보다가 이렇게 너무 확실하게 행동으로 나를 대해주는 남자는 인생 처음이다.


처음 받은 감정이어서 "이게 무슨 감정이지?"라고 생각했고, "내가 이렇게 너무 쉽게 이런 감정을 받아도 되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 찰나가 주는 그 순간 만큼은 안정되고 편안한 감정은 이상하게 진짜 너무 좋았다. 그러니까 혼란스럽지 않았고,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뭔가 아주 짧은 찰나에 극도의 안정감이 생긴 느낌? 잠깐 애기가 된 기분이랄까. 사실 속으로는 엄청 칭얼되고 싶었는데 4년 만에 처음 만난 이 남자 앞에서 너무 대놓고 어리광 부리면 뭔가 진상?같아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동안 살면서 남자들이 대시하거나, 나를 대할 때, 엄청 불안했고 두려웠다. 불안하고 두려운만큼 다시는 다가오지 못하도록 차갑게 대했고, 일부러 더 까칠하고 성격 더러운 사람처럼 대했다. "또 마음 가지고 장난치면 어떡하지." "또 간 보면 어떡하지." "저런 행동과 말이 진정 나한테 진심으로 대하는걸까." "괜찮을까. 어디서 어떻게 사람을 믿는 기준을 어디로 잡아야 되지"라는 생각들 속에서 다가오는 남자들한테 차갑고 뾰족한 얼음처럼 항상 날이 서있었고, 매정할 정도로 전혀 곁도 주지 않았던 지날 날들. 그 덕에? 아무도 나한테 다가오지 못했다. 근데 난 오히려 그게 편했다. 혼자 걱정 안해도 되니까. 불안에 질려 두려움의 감정을 안가져도 되니까.  



 

근데 이 남자는 이상하게 '안정감'이 들었다. 글 쓰면서 또 알게 된다. 

결국 나한테 제일 필요한 요소는 무조건 '확실한 신뢰'와 '심리적 안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신뢰가 없고 불안정한건 머리가 인지하기 전에, 심장이 바로 눈치채는 것 같은 느낌. 


2023년 7월 2일 어느 무더웠던 한여름의 어느날.

나한테 했던 행동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너무 고마웠고 그냥 다 좋았다.


결정적으로 운전하는게 멋.졌.다.

운전하는데 오른손의 초록색 핏줄이 설렜다.



멋졌고, 더 성숙해진 것 같다.



일단. 4년만의 첫 만남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해줄 수 있는 완벽함은 이 남자는 이미 뭐 다 갖춘 느낌이 났다.

4년 전의 24살이었던 풋풋한 대학생이 4년 후의 28살의 어엿한 직장인이 된 것을 보니 예전보다 확실히 더 단단해졌고, 성숙해졌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최소한 여러 여자들한테 마음 흘리고 다니진 않을 것 같다. 사람 마음을 간보지 않는다. 그리고 시답지 않게 마음 흔들고 자기 혼자 토끼처럼 아무 일 없는 듯 팽그르르 도망가진 않을 것 같다. 본인의 사람이 된다면 무슨 일이든 지켜낼 것 같은 든든함이 생긴 것 같다. 한 번 사랑하면 끝까지 책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뭔가 내가 겪어온 남자들 중에 제일 나한테 확실한 느낌을 준 것 같다.


너무 자연스럽고 편하게 가고 싶은 장소와 시간, 맛집을 다 나한테 맞춰준다. 진짜 오랜만에 만난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더치페이를 하지 않고 카페와 밥집의 비용을 100% 본인이 계산했다. 둘이서 바다를 보고 카페를 가고 밥을 먹고 차에서 음악을 틀어놓는 상태로 드라이브를 하면서 대화를 꽤 많이 했다. 다른 것 보다 유독 음악 틀어놓고 드라이브하면서 얘기하는 게 좋았다. 그러면서 또 뭔가 모르게 대화가 잘 통하는 느낌이 든 잃어버린 신발 한짝을 찾은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밥 사주고 카페에서 돈도 쓰고 친절하게 운전까지 해서 집까지 데려다주는 선배의 모습이 꽤 새로웠고 멋져 보였을까.


뭔가 예전보다 더 어른이 돼서 앞에 나타난 느낌. 원래도 나한텐 착하고 배려심의 아이콘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천사 이미지였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근데 또 성격이 아무한테나 돈 쓰는 스타일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햇살이 환하게 비쳤고, 따뜻했던 2023년 7월 2일. 그날은 유독 다른 날보다 날씨도 좋았고 이상하리만큼

수평선 저 너머 기장 앞바다가 더 넓어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이 남자는 밥도 사주고 카페에 가서 딸기라때도 사주었다. 카페가기전 , 바다를 보면서 근처 산책 하는 중에 순간 10cm 이상 큰 이 남자가 내 옆에 서있는게 너무 신기했고 4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돈과 시간을 나한테 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옆에 있는 키큰 이 남자를 쳐다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고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내가 얘기했다.

'아유.. 오늘 하루종일 너무 고마워서 어떡하냐.. 나 때문에 괜히 돈만 쓰러 나온 거 아냐..? 어제까지 비와서 오늘 날씨 안좋으면 어떡하나 걱정 했는데. 오늘 따라 날씨 너무 좋다 그치? ‘ 라고 했더니


이 남자가 하는 말.


'아니다.. 내가 밥 사준다 했잖아. 니 덕분에 오랜만에 휴일 같은 휴일을 보내서 나도 너무 좋은데..? 그러게. 날씨 너무 좋다. 난 맨날 집에 있어가지고. 나도 진짜 오랜만에 밖에 나오네.‘



바라만 봐도 시원한 넓은 바다를 보고 밥을 먹으러 갔다.


선배가 밥을 계산하고 나는 나 때문에 돈을 쓴다는 생각에 또 얘기했다. ‘아유 오늘 진짜 밥에다 카페에다 돈을 너무 쓴 것 같은데 나 진짜 어떡해야되..ㅜㅠ‘라고 했더니


그가 아무렇지 않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사이렇게 답한다. ‘그럼 2년뒤에 연락해~!’라고 분명 말했다.


순간 나는 ‘어?’라는 표정으로 선배를 쳐다봤고 이 남자는 내 표정과 반응을 빠르게 보고 이내 빨리 주차장에 있던 차를 빼러갔다.




차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서로 하다가 집 근처 도착할 때쯤 선배한테 종일 느끼고 있었던 마음속 얘기를 또 했다.

 

4년만에 나타나 어느 순간 내 옆에 앉아서 운전하고 있는 그를 보며 '오늘 딱히 뭐 걸어 다니는 것 밖에 안 했는데 너무 피곤하네. 집 가서 바로 자야 되겠다.

오늘 나 때문에 돈만 쓰고 가서 어떡하냐..  너무 고마워서 나 어떡해야 돼..‘라고 말했더니


조수석에 앉아서 많이 돌아다녀 축 쳐진 나를 슬쩍 쳐다보면서 ’많이 피곤한가 보네. 괜찮다. 네가 집에 가서 푹 쉬는 게 내한테 더 고마운 거다.'라고 얘기한다.


(음 ,, 도와주는 거라고 했었나 .. )



세상에 말도 이쁘게 하는 사람인 걸 미처 몰랐네 내가.




"이 남자의 대한 마음을 조금씩 열고 다가가도 될까..?"

"여유를 가지고 시간을 내서 만나도 되는 괜찮은 사람인 것 같은데.."


지나간 남자들의 대한 경험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생긴 두려움과 불안의 여파가 여전히 가시지가 않는다. 아무리 떨쳐낼려해도 이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마음 흔들고 나몰라라 - 쌩 가버렸던 것도 생각도 하기 싫고 마음의 생채기를 너무 심하게 겪었고 남자한테 세게 데였던 과거를 지나 고등어 가시 바르듯 간보듯 여자 마음을 간보고 이 여자 저 여자들한테 찝쩍되는 동시에 본인의 머리 속에 여자 순위를 너무 속보이게 매기는 아주 형편없는 남자를 겪었다. 본의 아니게 겪어도 되지 않아도 될 경험을 했던 터라 남자의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뭐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둘다 진짜 최악의 남자 유형이었는데 ㅎ

진짜 더 이상은. 더 이상은 .. … 남자한테 상처받기 싫다.


난 분명 가만히 있었는데 마음 흔들고 지혼자 칠렐레 팔렐레 도망가버리고 그 감정 받고 감정 컨트롤 못해서 혼자 그 감정 다 소화하고 처리하고. 그건 진짜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어디 그뿐이랴. 가만히 있었는데 살짝살짝 마음 간보는 남자는 도데체 어떤 유형인거야? 그래도 앞전에 마음 흔들고 도망간 남자로 인해 백신을 맞아 그나마? 그 감정을 견딜만 했다 ㅋ (아 생각해보니까 진짜 웃기네 ㅋ)


.


근데 이 남자는 이런 끔찍한 짓은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건 왜지. 근데도 불안하고 두려운건 왜일까. 이 남자는 이전에 받은 상처 따위는 안줄 것 같은 느낌이 아무이유없이 왜 드는거지. 누가 좀 알려주세요.


뭔가 더 분명하고 확실하고 정직한 느낌이다.




그리고 꽤나 새롭고 신기했던 건 시간이 흐른 뒤에 만났는데 진짜 1초 만에 서로를 알아보았던 것. "뭐지.. 원래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오랜만에 만나도 한눈에 알아보는 건가."


이 남자..

한 번 마음의 문을 열면 진짜 엄청 잘해줄 것 같은 느낌.

일단.. 연애하면 진짜 진짜 진짜 잘해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요즘 계속 머릿속에 나도 모르게 이 선배 생각이 난다.

1번 만나니까 1번 더 만나고 싶어 진다.


선배의 대한 내 마음은 지금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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