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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ul 03. 2023

오후 1시

4년만이네


"한번 더 보고 싶다."

"대화 했을 때, 뭔가 모르게 이상한 편함함이 뭘 뜻하는거지."

"나중에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운전석에서 든든하게 운전하고 있으면 참 힘이 될 것 같다."


딸기 선배를 4년 만에 만나고 이불 속에 누워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드는 생각.



<4년전>


때는 4년전. 인생에서 감히 제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때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었던 23살의 너무 예뻤던 나이를 가진 시절이 있었다. 피곤하고 힘들고 하기 싫었던 순간들이 겹쳐 겨우 정신줄을 잡아 두 다리로 얼마 없는 힘을 짜내서 에너지를 겨우 쓰면서 걸어다니고 있었는데 갑자기 키 큰 남자가 다가와서 뭘 주었다.


"이거 니 먹어라"

"다른 애들도 먹어야지! 이거 나 혼자 먹으면 안되는거잖아. ㅇㅇ이랑 ㅇㅇ선배는 먹었나?"

"아니, 니만 먹어라. 니만."


말투는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마음이,

눈빛은 떨리고 있었지만 애써 감추려는 그의 모습이,

참 예뻐 보였고, 멋져 보였고, 든든했다.


이 마음을 내가 온전히 괜찮아져서야, 몇 년이 지나서야 깨달았고, 지금도 그의 곁에서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 뿐이다. 2023년 27살의 내가 2019년 24살의 이 남자를 생각하면 너무 멋지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2019년 당시. 24살 어느 남학생의 투박하고 진심어린 '딸기'라는 예쁜 마음이 23살의 여대생은 그 때는 참 뭔지 몰랐지만, 이 예쁜 기억이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더 뚜렷해졌고 색이 깊고 선명해졌으며, 그를 보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딸기 먹어라고 말을 들었을 때는 분명 애정어린 진심이 담겨진 목소리었지만 살짝 신경질적으로 말하는 것도 사실 조금은 느껴졌었다. 근데 몇 년이 지나 가만 생각해보니 이 남자는 나만 먹어라고 줬는데, 내가 자꾸 다른 사람들 먹었냐고 얘기하니까 이 선배가 살짝 짜증이 났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야흐로 2019년. 간호학과 이브닝 실습이었다. 늦은 저녁이라 주변이 고요하고 너무 조용했던 이브닝 실습 때, 그 적막함을 뚫고 그 큰 키에 긴 다리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소리 안나게 종종 걸음으로 나한테 걸어와 약간 떨리는 듯한 눈빛으로 나만 먹어라고 종이컵에 몇 개의 딸기를 가득 담아서 나한테만 '딸기'를 주었던 그 남자. 난 그 이후로 딸기만 보면 이 남자만 생각이 났었고, 지금도 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날 것 같다. 그 놈의 딸기가 뭐라고. 그 빨간 딸기를 보면 다른 생각하다가도 귀신 같이 이 남자가 생각이 났다. 원래도 과일 중에 딸기를 좋아했지만 이 사건 이후로 더 딸기를 사랑하게 되었다.


"딸기 라때, 딸기 쉐이크, 딸기 요거트, 꿀에 찍어먹는 달짝지근한 딸기."



.

 ‘딸기 선배’





학교와 전공을 바꾸고 심신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이 남자가 나한테만 준 딸기가 계속 생각이 났다. 여기서 포인트는 '나한테만 준 딸기'다. 그 때 그 이브닝 실습 때의 적막하고 고요했던 공기, 딱 적당한 습도, 약간 따뜻했던 병원의 나쁘지 않았던 온도까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남자가 나한테 딸기를 준 그 찰나의 순간이 주는 그의 목소리와 표정, 손짓, 행동까지 하나하나 다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딸기 볼 때마다, 시험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을 때, 겁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이 남자가 준 그 놈의 딸기가 계속 생각이 나고 기억이 났다. 힘들 때마다 이 놈의 딸기 준 남자가 계속 머리 속을 꽤나 속도감 있게 휘젖고 다녔다. 마치 꼭 누가 생각나게 만드는 것 처럼 말이다.


가장 힘들 때, 종이컵에 딸기를 담아 나한테만 준 행동의 기억이 이 남자가 ‘딸기 선배’가 된 결정적인 이유다.



<4년후>



카톡에도 연락처가 없고 연락할 방법이 인스타밖에 안 돼서 계정도 없는 인스타를 가입까지 해서 연락처를 찾았다. 근데 그 마저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같은 이름이 3개나 돼서 확실하지 않아 살짝 지쳐서 포기하려는 찰나. 어느 날 갑자기 3개 중의 1개의 인스타 계정의 프사가 바뀌어져 있었다. 캡처해서 사진을 확대해 보니 그토록 찾아 헤맸던 선배였음을. 신기했다. 선배의 인스타 계정을 찾았다는 사실이 말이다. 고민을 진짜 많이 한 끝에 먼저 연락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또 막상 보내려니 너무 긴장이 되고 떨렸다. 인스타 DM에 텍스트를 '선배 나 지은인데 잘 지내..?'라고 적어놓고 진짜 5-6시간을 그 글자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 "보낼까 말까.. 보내면 답장이 올까.. 괜찮을까.. 그냥.. 보내지 말까.. 아.. 근데 뭔가 느낌이 나 이거 안보내면 안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또 어느 순간 갑자기 "아 모르겠다 이제 나도 그냥 보내고 답장 오면 고마운 거고 아님 인연이 아닌 거지 뭐."라는 생각이 들어 오후 1시쯤 적어놓고 6시쯤 DM을 보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고 새벽 12시쯤 병원근무와 회식을 끝내고 선배의 답장이 왔다.


'잘 지내지'

'오프 때 밥 한 끼나 하자'


그 말이 왜 또 좋았을까. 내가 그토록 생각했고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그런 내용으로 답장을 해주니 뭔가 모르게 잊어버렸던 신발 한 짝을 찾은 느낌이랄까. 처음 느껴보는 이 감정.. 묘했다. 그렇게 답장을 주고받고 바로 카톡에도 친구로 추가시키고 약 20분간의 통화도 4년 만에 했다. 선배 목소리를 듣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달까. 또 혼자 생각했다. ".. 음.. 뭐지.. 왜 이 사람에게서 신발 한 짝을 잊어버렸는데 찾은 느낌이 나지.."


선배의 인스타 답장을 12시쯤 받은 후 전화하기 전에 제일 중요한 여자친구의 유무를 물어봤다.

선배의 답장은 '아직;;ㅎㅎ'이었다.





그날 이후에도 그렇게 몇 번의 연락을 한 후 선배 오프날짜에 맞춰서 우리는 4년 만에 얼굴을 보기로 했다.


만나서 들은 얘기인데 선배도 인스타에 프사를 잘 안 올려놓는데 요즘 또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서 혹시나 필요할 일이 생길지 모르니 프사를 해둬야겠다는 생각을 요즘에서야 했단다. 또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선배.. 올려놓길 잘한 것 같아.. 아니었음 나 연락 못했을 수도 있었어.."


그렇게 시간과 어디서 뭘 할 건지의 대한 만나는 약속장소를 정하니 또 이상하게 떨리는 마음이 들었다. 사실 만나기 하루 전에는 너무 떨리고 긴장되고 감정 컨트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잠에 들었다. 선배는 차가 있는 반면 난 차가 없어서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 근처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만나는 시간은 오후 1시.


다행히? 선배보다 빠르게 도착해서 긴장되는 마음을 한껏 억누르고 역 안에 있는 고객 대기실에서 앉아있었다. 그로부터 몇 분 후인가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선배 어디야?'

'왔는데 지하철 1번 출구로 나와'

'차 번호가 뭔데? 무슨 색이야?'


역 앞에서 전화를 하면서 차번호판을 찾고 있었는데 저기 멀리 우뚝 선 키가 큰 한 남자가 서있었다. 선배는 4년 만에 봤는데 나를 한눈에 알아봤다. "오.. 한눈에 알아보네.."라고 혼자 생각했던 찰나에 역시나 나도 선배를 한눈에 알아보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서로가 시간이 꽤나 지났는데도 한눈에 알아본다는 게 뭔가 느낌이 신기했고 새로웠달까.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한결같은 느낌이어서 더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기도. 만나서 차에 음악 틀어 놓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얘기하는 게 좋았다. 그러니까 대화가 잘 통했다. 먼저 말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이 사람은 내가 먼저 말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감정이 들뜨지 않았고 내가 과거에 했던 선택의 대한 존중을 해주었고 자기 주관도 확실하게 있으면서 상대를 전혀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디테일하게 반응하는 면과 상대의 감정을 살피는 온도가 꽤 적절하게 어울리는 느낌. 그래도 아직은 조금 쌀쌀한 면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부분은 어쩌면 상처받지 않기 위한 스스로의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상대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도록 행동을 해주어서 고마웠다.




그런데 또 아직 살짝 마음속의 불안이 있는 느낌. 친한 언니가 얘기해 줬다. '이젠 네가 좋다고 마음을 너무 주지 말고 상대가 너한테 주는 마음 봐가면서 마음 줘. 아니면 네가 또 상처받잖아. 상대가 한걸음 다가오면 너도 한걸음 다가가고 너무 확 그렇게 좋다고 마음은 다 주지는 마. 나중에 또 힘들어진다."


이하동문. 첫 번째는 너무 마음을 앞뒤 안 가리고 확 줘서 탈이 났고 두 번째는 상처받기 싫은 마음이 큰 탓에 너무 마음을 닫아서 탈이 났다. 이번 세 번째는 너무 주지도 말고 닫지도 않는 시작이 되기를.


감정도 컨트롤이다.


선배는 나를 만나고 지금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진짜로 아무 생각이 없는 걸까. 그래도 어느 정도 나의 대한 괜찮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걸까. 참 이 선배는 사람의 대한 궁금증이 1도 없고 인간관계의 대해서 회의감이 있는 나에게 가끔은 꽤 깊이 궁금증을 유발하는 신기한 사람이다.


원래 그냥 지하철 타고 오려고 했는데 선배가 집까지 데려다주고 피곤해서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서 기절했다. 한시간쯤 지났나. 자고 일어나서 카톡을 보냈다.


 '다음에 또 오프 때 시간되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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