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능을 보다 신기하다 생각한 대목이 있었다. 서로의 MBTI 결과를 묻는 씬이었는데, 다들 하나같이 본인의 MBTI를 기억하고 바로 대답하는 것이다. 역시나 교수님들 이름도 기억 못 하는 나는 내 MBTI를 한 번에 대답하지 못한다. 대학에서 복수 전공으로 심리학과 Employment Relations (Human Resource 인사과)를 전공할 때 두 전공이 은근히 겹치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사람의 심리를 공부하는 심리학과 인사과에서 다루는 것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직원의 심리나 직장 내의 여러 인간관계를 다루는 내용이 많았다. 아무래도 인사과에서 처음 MBTI를 배우고 테스트해 봤던 것 같다. 어제도 남편과 이 얘기를 하다 급 테스트를 해 봤는데, 내가 기억하던 결과와 달랐다. 나는 내가 아웃고잉 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확실한 I (Introvert) 내성적인 성향으로 나왔다.
어렸을 때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노는걸 더 좋아했고, 인기에 민감하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내가 그 친구에게 인기가 있거나 우리가 친하다는 걸 증명하라고 한다면 저 친구가 나를 믿고 본인의 비밀이나 중요한 얘기를 나에게만 해 줬다고 생각될 때였다. 그런데 여기서 내 이중적인 마음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친구가 '이건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라던지, '내가 이런 고민이 있는데 너를 믿고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라던지 하면 그게 좋으면서도 싫었다. 그 비밀의 무게감이 싫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게, 또는 누가 나에게 의지 한다는 그 느낌이 좋으면서도 싫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이 부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결국 고등학생이 되고 바로 캐나다로 이민 오면서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이나 욕구에 대해 많이 내려놓았던 것 같다. 환경이 바뀌니 의도치 않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왕따는 아니었으나, 언어의 한계로 친구들과의 관계가 한국에서 처럼 형성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깊이 있는 대화가 어려우니 지금은 한국에 살고 있는 친언니와 항상 붙어 다녔고, 한국 친구들도 고등학교 이민 초반에는 많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남편과의 연애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대학 시절 5년 내내 둘이 놀았다. 5년 연애하면서 거의 매일을 붙어 있다시피 했는데, 이상하게 그러면서도 적당한 거리감이 있다는 느낌이 유지됐던 것 같다. 서로가 중요한데, 그래도 '내'가 더 중요하다는 그 느낌.
그게 아마 우리가 이 먼 곳으로 이사와 혼자서도 잘 노는 이유일 것 같기도 하다. 가족도 친구들도 직장 동료들도 없는 이 외딴곳에서 또 적당한 거리의 친구들을 사귀고 또 남편과 24시간 붙어있지만 나름 각자의 영역을 잘 지키면서 잘 사는 이유인 것 같다. 내가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이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면, 마냥 똑같은 자연환경에 둘러싸인 이곳을 지겨워했을 것이다.
오늘 아침 남편과 대화 중,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쓴 조던 피터슨 교수의 어린 시절 얘기가 나왔다. 이곳에서 (비교적) 멀지 않은 에드먼턴이라는 도시에서도 500킬로나 북쪽으로 더 가면 있는 엄청 시골에 엄청 추운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겨울에는 영하 40도가 넘는 날씨가 계속 이어지기도 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 얘기를 하다가 그 교수는 실제 상담을 하면서 환자를 만나는 일을 한 것 같다..라는 얘기로 넘어가다가 결국 우리 둘 다 나는 그런 상담 심리학자는 못할 것 같다로 마무리되었다. 누군가의 마음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괜찮을 자신이 없는 것이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난 누가 나에게 비밀 이야기를 하면 그 무게감에 괜찮을 자신이 없다.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나도 좋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그런 일을 내가 찾을 수 있을까? 지금 내가 1순위로 고민하고 있는 일은 아니지만, 앞으로 천천히 라도 그런 일을 내가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