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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May 20. 2022

시부모님께 일주일간 안방을 내어 드렸다

은퇴 기념 축하파티

우리가 토론토에서 칠리왁으로 이사 오고 처음으로 시부모님이 이곳에 방문하시기로 했다. 22년 전에 이민 와 한 곳에서 20년간 가게를 하시다 2주 전에 은퇴하신 부모님은 드디어 시간의 구애받지 않고 여행을 다니실 수 있게 되었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인 남편과 나는 작년에 시부모님보다 일 년이나 빨리 조기 은퇴를 선언하고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60대 중반인 시부모님은 이런 우리의 결정을 맘에 들어 하진 않으셨으나 더 이상 말리지도 않으셨다. 우리는 이민 오기 전엔 직장생활을 하셨고, 이민 와서는 20년간 성실히 한 곳에서 열심히 일하신 시부모님의 은퇴를 정말 축하해 드리고 싶었다.


나는 시부모님 오시기 한 달 전부터 일주일간 어떤 음식을 먹고 어디를 가야 하는지 남편과 함께 아이디어 회의를 해 왔다. 그렇게 결정된 우리 집에서의 첫 메뉴는 LA양념갈비, 미역국, 대구 생선전, 그리고 최근 만든 포기김치이다. 평상시 같으면 우린 양념갈비+밥, 미역국+밥, 생선전+밥 등으로 나눠서 식사를 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이 음식들을 한 끼에 다 넣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고도 왠지 식탁이 허전해 보일까 걱정이다. 왠지 나물 반찬도 있으면 좋을 것 같고, 잡채도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한 끼에 다 차려내지 않기로 했다. (힘도 들거니와 그다음 메뉴들이 그럼 또 고민이기 때문에 나눠서 하기로 했다)


은근 계속 신경 쓰는 나에게 남편이 평상시대로 하라고 주문한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잘 안된다. 내 음식이 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성의 없다 느끼지 않으시길 바라기 때문이다.


우린 시부모님의 은퇴를 축하하기 위해 은퇴 기념 파티도 하기로 했다. 아이들과 풍선을 불고, 카드를 쓰고, 'Just Retired'라는 싸인도 만들었다. 우리 집 지정 포토 존에서 기념 촬영도 하셔야 한다 ㅎㅎ (싫다고 하실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엄청 좋아하셨다!)





결혼하고 12년 차가 되었는데,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가신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엔 비행기 타고 5시간 떨어진 곳으로 오시기 때문에 우린 안방을 내어 드리고 남편과 난 아이들 방에서 각자 애들 한 명과 자기로 했다.


결혼 전, 나에겐 배우자 이상형보다 좀 더 구체적인 시부모님 이상형 리스트가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점은, 나를 마음에 들어 하셔야 한다는 점이었다. 남편 될 사람을 아무리 사랑해도 남편의 부모님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시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온화한 부모님이길 바랬다. (우리 엄마를 통해 간접 경험한 고부간의 갈등은 나를 비혼 주의자로 만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렇게 나는 타고난 복으로 내가 바라던 시부모님을 만났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서로 서운해하지 않고, 편안한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부모님이시다.


우린 총식구가 6명이 되는 일주일 동안 함께 탈 8인승 벤도 빌렸다.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고 했는데 해가 나는 걸 보고 가까운 와이너리 휴양지 (켈로나 Kelowna)로 일박이일 여행도 다녀왔다. 우리 집에서 운전해서 4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캐나다에서는 와인 생산지로 매우 유명한 곳이다. 여행하는 동안 해가 나고 비는 거의 오지 않아 정말 좋았다.





일주일 동안 야외 활동을 하면서 외식도 중간중간하고, 김밥과 유부초밥 그리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면서 내가 집에서 요리를 할 일은 거의 없었다. 떠나시기 마지막 날 삼겹살 김치찜을 해 드렸고 그렇게 시부모님 방문이 마무리되었다.


한상 딱 부러지게 차려낸 적은 없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손님 초대였다고 생각한다. 결혼생활 12년 차가 되었으니 요리 대접에 대한 기대치는 예전 시어머님이 시 할머님에게 해 드렸던 수준은 될 수 없다는 걸 진작에 아셨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래도 진심은 잘 전달되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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